본문 바로가기

묵상하는말씀/예레미야묵상

예레미야서묵상 99 - 근거없는 낙관은 믿음이 아닙니다. 예레미야 40:7-16

요즘 저는 하나님께 믿음에 대한 말씀을 많이 듣습니다. 그리고 함께 선포하고 묵상을 나누고 있죠. 그중의 핵심은 감사와 순종입니다. 어떤 일이 벌어지더라고 그 일이 나의 마지막이 아니며 그 끝은 나보다 나를 더 사랑하시는 주님의 선하신 계획이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모든 것을 감사하고, 모든 것을 좋게 보라고 말씀드리고 있습니다. 계속 말씀드리죠. 우리의 앞에 놓인 문제 앞에서 우리는 때론 부정적인 반응을 보일 수도 있습니다. 내 생각과 너무도 다른 현실이 펼쳐지기 때문이죠.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현실에서 새로운 소망을 찾는 사람이 있습니다. 현실은 현실입니다. 그런데 그 현실을 사는 것은 우리들이죠. 그 현실에 묶여 과거를 살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늘 현실을 뚫고 내일을 살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현실에서 소망을 잃지 말아야 하죠. 수요영성예배에서는 두려움에 대한 이야기도 나눴습니다. 두려움을 극복하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죠. 어떤 두려움 앞에서 소망을 품는 것이 그 두려움을 이기는 방법입니다. 두려움은 절망을 먹고 살죠. 그래서 절망할수록 두려움은 더 위력을 발휘합니다. 반대로 우리 안에서 절망을 소망으로 바꾼다면 두려움은 힘을 쓰지 못합니다. 그 소망이 현실에서 나타나야 합니다. 바로 작은 빛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희망을 부여잡는 것이죠.

그런데 이렇게 희망을 잡는 일은 단순한 긍정적 마인드가 아닙니다. 그저 ‘잘 될 거야!’라는 정신승리가 아니에요. 우리의 희망, 우리의 소망에는 근거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이 지금껏 우리를 나쁜 길로 인도하신 적이 없습니다. 비록 출렁이는 파도의 인생이 있었지만 그분의 큰 그림에는 영원한 생명, 영원한 구원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우리가 품은 소망은 그 하나님의 일하심과 능력에 기초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긍정적인 마음을 가져도 근거가 없는 낙관은 결코 믿음이 아닙니다. 그 예가 오늘 본문에서 등장합니다.

느부사라단은 예레미야에게 바빌로니아로 갈 것을 권합니다. 이미 말씀드렸지만 이것은 예우 차원입니다. 지금 이스라엘 사람들은 모두 포로로 끌려가는 중이지만 예레미야에게는 정중히 모셔가겠다는 입장인 것이죠. 그래서 그 초빙은 강제적이지 않습니다. 선택권을 주죠. 갈 마음이 없다면 어디든지 머물러도 좋다고 합니다. 그래서 예레미야는 남기도 정합니다. 그때 남유다는 그달리야라는 사람이 지도자로 세워졌습니다. 그는 바빌로니야가 남유다를 점령하면서 임시로 세운 지도자입니다. 그러니까 총독이 되는 셈이죠. 그는 남은 이스라엘 사람들을 잘 지도했던 모양입니다. 아마도 남아있는 이들은 대부분 빈민이나 아무런 힘이 없었던 일반 백성들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달리야는 그들을 잘 다독여서 이끌었던 것 같아요. 그는 바빌로니야의 점령에 대해 부정적이기보다 긍정적으로 보았습니다. 물론 그들의 손에 지도자가 되었으니 의식이 경도되었을 것은 분명하지만 그래도 그는 그 낙관적인 생각으로 백성들을 하나로 모으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런데 본문은 뜬금없는 문제를 기록하고 있어요. 그것은 그달리야의 암살 계획에 대한 것입니다. 그달리야에게는 요하난이라는 측근이 있었습니다. 그가 첩보를 듣고 그달리야에게 전하는데요. 그것은 암몬 왕이 그달리야를 죽이려는 암살 계획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 때문에 이스마엘이라는 사람을 보냈다는 거예요. 아마도 이 이스마엘은 그달리야 측근으로 활동하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이 말을 듣고 그달리야는 인정을 하지 않습니다. 이스마엘을 믿은 것이죠. 오늘 본문에는 없지만 결과적으로 말한다면 그러나 그 첩보는 사실이었고 그달리야는 이스마엘에게 죽임을 당합니다. 비교적 패망한 이스라엘을 잘 추스르던 그달리야가 죽음으로 이스라엘은 또 다른 고비를 맞이하게 되죠. 

사람을 믿는 것은 좋습니다. 그러나 그 믿는 근거가 필요합니다. 왜 우리가 사랑합니까? 그 근거는 무엇입니까? 나에게 잘해줘서, 혹은 내 감정이 혹해서, 인정에 이끌려서? 우리의 사랑에는 근거가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라고 하시니 우리는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감정이나 기분이 그 사랑보다 앞설 수가 없습니다. 우리의 믿음 또한 근거가 있습니다. 주님의 하시는 일을 믿기에 현실을 믿는 것입니다. 긍정적인 마인드의 근거가 나의 기분이라면, 나의 뜻이라면, 나의 계획이라면 그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잘 될 것이라고 믿는 생각이 그저 습관이라면, 정신승리라면, 그것 또한 믿음이 아닙니다. 우리가 앞의 일을 긍정적으로 보고, 좋은 생각, 좋은 마음을 품는 것은 근거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렇게 인도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믿기 때문이죠. 비록 높은 산이 앞을 가로막아도, 하나님께서 그 산을 넘을 용기와 힘을 주신다는 것을 믿기에 우리는 그 앞에서도 용감하고 편안하고 긍정적일 수 있는 거예요.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감사에는 근거가 있습니다. 우리의 낙관에도 근거가 있어요. 바로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심을 믿기에, 나를 위하여 십자가에 달리시기까지 한 분임을 믿기에 우리의 소망과 낙관이 아름다운 것입니다. 무조건 낙관적이어서는 안 됩니다. 좋은 것이 좋은 것이라고 넘어가는 것, 내 기분 망치지 않으려 묻어 두는 것, 그것은 소망이 아닙니다. 다시 말합니다. 근거 없는 낙관주의자가 되지 마세요. 하나님을 마음에 품은 소망주의자가 되세요. 그분을 알면 더 커지는 희망주의자가 되세요. 우리의 긍정에는 하나님이 계셔야 합니다. 그래야 소망이 진짜 소망 됩니다.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