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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하는말씀/열왕기상묵상

자녀는 엄마의 영성을 먹고 자랍니다

열왕기상 22:41-53 자녀는 엄마의 영성을 먹고 자랍니다.

오늘은 열왕기상의 마지막 본문입니다.
남유다의 왕 여호사밧의 이야기와
북이스라엘의 왕 아하시야의 이야기로 끝을 맺습니다.

제 눈에는 묘하게도
이 두 왕이 대비되어서 기록된 것처럼 보이네요.
여호사밧은 히스시야, 요시야와 함께
남유다의 3대 선한 왕으로 꼽을만한 인물이죠.
그에 비해 아하시야는
자신의 아버지 아합을 능가하는 악한 왕으로 기록됩니다.

물론 완전한 인간이란 있을 수 없겠죠.
여호사밧 또한 그 안에 실수와 실패들이 존재합니다.
오늘 뜬금없어 보이는 다시스 선단 이야기도
어쩌면 그의 약한 부분에 대한 지적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왜냐하면 여호사밧의 화친정책 때문이죠.
우리는 이미 솔로몬에게서 배웠는데요.
그에게 평화는 극히 인간적이었습니다.
소위 정략적 결혼을 통해 평화를 만든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호사밧도 여기서 자유로울 수 없는데요.
여호사밧 시대 남유다는
북이스라엘과 좋은 관계를 유지했습니다.
그 이유가 여호사밧의 아들과 아합의 딸이
정략적인 결혼관계였기 때문이죠.
그런 정략적인 관계를 하나님께서 깨시는데요.
그것이 나시스 선단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는 역대하에 자세히 나오기에
역대하를 읽을 때에 다시 묵상하도록 하죠.

그러니까 여호사밧과 아하시야는
사돈관계인 셈이죠.
암튼 두 왕은 참 대비되는 인물입니다.
그렇다면 이 두 왕의 차이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요?
저는 그것이 궁금했습니다.
그리고 제 눈에 들어온 구절이 있었는데요.
42절 하반절입니다.
“그의 어머니 아수바는 실히의 딸이다.”

아수바라는 인물이 어떤 인물인지 잘 알 수 없습니다.
또한 그의 아버지 실히 또한 누구인지 모릅니다.
다만 추측인데요.
그의 이름이 용사라는 뜻을 가진 것으로 보아서
실히는 이스라엘의 가치를 지키는 자였을지도 모릅니다.
이스라엘의 가치라는 것이 ‘하나님’ 아니겠습니까?
반면 아하시야의 어머니는 잘 아시는 이세벨입니다.
그녀는 페니키아의 공주이고,
이방신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는 사람이죠.

이 두 왕의 차이는 많은 곳에 찾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성품이나 인격들에서 차이가 있을 수도 있고요.
자라온 배경과, 지식의 차이도 있겠죠.
그러나 무엇보다 근본적인 차이는
바로 이 어머니들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지난주에 박상하목사님이 오셨는데요.
박목사님 슬하에 4자녀가 있습니다.
애국자죠.^^
큰 아이가 올해 대학을 졸업하고요.
둘째가 군대에 가 있습니다.
셋째, 넷째가 12살, 11살이니까 늦둥이인 셈이죠.
저도 이 막내들은 처음보았습니다.
파라과이에서 낳고 자란 아이들이죠.
그래서 스페니쉬가 모국어처럼 느낀답니다.
그런데 한국말이 전혀 어색하지 않았어요.
그들이 있는 지역이 파라과이에서도 시골이라서
한국학교도 없데요.
순전히 어머니가 한글교육을 한 겁니다.
쉽지 않았을텐데 사모님이 아이들에게
한국인의 말과 글, 생각과 예의들을 가르친 것이죠.

어머니들의 영향력에 대해 말하면
또 어머니들에게만 자녀교육의 부담을 준다고
힘들어 하시는 분 계실까요?^^
그런데 어쩝니까?
어머니의 영향력이 그토록 큰 걸요.
아이는 모유를 먹고 자라죠?
그 말은 아이는 엄마의 건강을 먹고 자란다는 말입니다.
그 말은 아이는 엄마의 몸을 먹고 자란단 말이죠.
자녀는 엄마의 영성을 먹고 자랍니다.
그러니 어머니들은 건강하셔야 합니다.
몸을 만드셔야 해요.
영성을 만드셔야 하고,
은혜를 간직해야 합니다.
아직 결혼 안하셨다고 안심하지 마세요.
영성은 쉽게, 단기간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자녀가 내 영성, 내 은혜, 내 기도를 먹고 자라도록
아름다운 어머니가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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