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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하는말씀/열왕기상묵상

그리스도인에게는 딱 한 가지 중요한 실력이 필요합니다

열왕기상 22:24-40 그리스도인에게는 딱 한 가지 중요한 실력이 필요합니다.


아합에게는 눈에 가시 같은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엘리야가 그런 사람이었죠.
아합은 엘리야를 두고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자’(왕상18:17)라고 말하기도 했어요.

이번에는 미가야입니다.
미가야에 대한 아합의 인식은 이렇습니다.
왕상22:4, "주님의 뜻을 물어 볼 사람으로서, 이믈라의 아들 미가야라고 하는 예언자가 있기는 합니다만, 나는 그를 싫어합니다. 그는 한 번도 나에게 무엇인가 길한 것을 예언한 적이 없고, 언제나 흉한 것만 예언하곤 합니다."

아합에게 반항하거나 반대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예언자라는 사람들조차
그것도 400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똘똘뭉쳐서 아합의 뜻을 따라 움직였을 정도니까요.
그런데 눈에 가시 같은 사람들이 늘 있었습니다.
아합의 입장에서 보면 정말 싫은 사람들이죠.
입만 열면 옳은 말만하는데
그것이 아합에게는 저주였으니까요.

그런데 하나님 입장에서 보면 어떨까요?
축복 아닐까요?
왜 하나님은 아합에게
그리 싫은 사람, 그리 미운 사람을 붙이실까요?
왜 그리 듣기 싫은 소리를 하실까요?
이유는 하나뿐이지 않을까요?
“너의 악한 길을 떠나 나에게도 돌아오너라”
그 메시지는 저주가 아니라
오히려 축복 아닐까요?

최근에 우리교회 이찬수목사님 설교를 들었습니다.
교회 내 신학생들을 위한 모임을 했데요.
그들을 섬기고 위로하려고 식사도 하고,
장학금도 주었데요.
분위기 좋게 모임이 끝나려는데
한 신학생이 최근 교회 모임에 대한 불만을 제기하더래요.
오해라고 여긴 목사님이 상황설명을 했데요.
그랬더니 이번에는 다른 신학생이
목사님의 설교에 대해서 비판을 하더래요.
여기저기서 건의와 비판이 이어졌데요.
분위기 좋게 10분 만에 끝내려고 했던 모임이
4시간이나 지속되었데요.
집에 오니까 속에서 불화가 치밀어 오르더래요.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하는 마음이죠.
속으로 두 마음이 다투더랍니다.
“다시는 너희에게 봉투 주나봐라!” 하는 마음과,
“어린 신학생들을 통해서도 주시는
메시지를 들어야 해”라는 마음이 충돌하더래요.
그 마음이 오래가더랍니다.
그러다 그 중 제일 많은 비판을 했던 신학생을 따로 불렀데요.
혼이 날까봐 겁에 질려서 왔더래요.
그 신학생에게 목사님이 이렇게 말했답니다.
“혼내려고 부른 것이 아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너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주실 말씀이 계신 것 같아 불렀다.
그러니 너에게 있는 생각들을 나에게 들려주렴”
그랬더니 할 말을 또 다 하더래요.
죄다 쓴소리들이더래요.
그런데 2시간 동안 그 이야기를 들으셨데요.
그것도 녹음하고, 필기까지 하면서 말이죠.

그리스도인에게는 딱 한 가지 중요한 실력이 필요합니다.
어떤 실력이냐 하면,
저주를 축복으로 바꾸는 실력이에요.
아합왕의 입장에서는 저주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입장에서는 축복이잖아요.
내가 아합왕의 입장을 취하면
그 어떤 것도 저주일 뿐입니다.
그러나 내가 주님의 입장을 취하면
그 또한 어떤 것도 축복이 되죠.
이것이 실력입니다.

내가 가만히 있는데
저주가 저절로 축복이 되어 내 귀에 오지는 않습니다.
나의 자세를 바꿔야 됩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인의 실력이에요.

오늘 본문에 보면 참 재미있는 장면이 나와요.
미가야는 아합왕이 전쟁에서 죽게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미가야의 저주를 들은 아합왕이
미가야를 감옥에 가둡니다.
그리고 자신이 돌아올 때까지
죽지 않을 만큼만 괴롭히라고 말하죠.
자신이 죽지 않고 돌아올 것을 예상하는 겁니다.

그런데 막상 전쟁에 나설 때에는
그는 왕의 복장이 아닌 일반 사병의 복장을 하고 나섭니다.
적군이 왕을 집중적으로 겨냥할 것을 대비했는데요.
이 사실은 자신이 죽을지도 모른다는 걸 염두해 둔 것이죠.
물론 결론은 오히려 그 행동이
죽음을 더 재촉했습니다.

참 이상하고 재미있는 것은
자신도 그 메시지가 마음에 걸리면서
왜 그 메시지를 안 듣는지 모르겠다는 거죠.
어떤 메시지를 들으면 강하게 부정하고 귀를 닫습니다.
그런데 마음속에는 그 메시지가 남아있어요.
무엇인가 찜찜하게 내 마음을 건드리죠.
그런 일들이 많죠.
마음으로만 찜찜해 하지 말고,
차라리 그 메시지를 들었다면 어땠을까요?
차라리 그 메시지 앞에 엎드렸다면요?

주님은 죽음을 생명으로 바꾸셨습니다.
그분은 죄인을 의인으로 바꾸시고,
땅의 것을 하늘의 것으로 바꾸셨어요.
그것이 주님의 실력입니다.

그분의 자녀인 우리도 실력이 있어야 합니다.
듣기 싫은 소리를 축복의 소리를 만드는 실력 말입니다.
나를 괴롭히는 소리를 사랑의 소리로 만들고,
나를 귀찮게 하는 소리를 훈련의 소리로 만드는 실력 말이에요.

오늘도 수많은 소리들이 들릴 것입니다.
우리의 나태, 잘못된 습관을 지적하는 소리도 들릴 거예요.
빗나간 영성, 어긋난 신앙의 태도를 저격하는 소리도 있겠죠.
귀찮은 소리, 저주의 소리처럼 들릴 겁니다.
귀를 닫고 싶을 정도로 듣기 싫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 소리를 축복으로 만드는 하루가 되시길 빕니다.
그런 실력을 쌓아가는 하루하루가 되시길 빌어요.

창밖에 비가 많이 오네요.
빗길 늘 조심하시고요.
평화의 하루가 되시길 진심으로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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