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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서묵상25 - 우리에게 권리가 있다면 그것은 주님이 우리를 제자로 삼아주신 것입니다. 요한복음7:1-13 오늘 본문에는 예수님의 형제들이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사실 예수님의 형제들이 누구를 말하는지 명확하지는 않습니다. 형제들로 표현한 것으로 봐서는 12제자들은 아닌 것 같고, 그 외에 예수님을 따라는 이들을 통칭 제자들이라고 칭하는 것으로 보아서는 예수님의 가족들을 말하는 것이 아닌가 싶어요. 다른 복음서에도 예수님의 가족들이 등장하는 것을 보아도 그렇게 해석할 여지가 있고요, 6절의 말씀으로 보아서도 유추가 가능합니다. "내 때는 아직 오지 않았다." 이 말씀은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어머니 마리아에게 하신 말씀과 동일하죠. 그것으로 보아서는 가족이라는 연결관계를 생각해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싶어요. 그래서 많은 이들이 그렇게 해석을 합니다. 그런데 저는 조금 다른 의미로 받아들여기지도 합니다. 그냥 전적으..
요한복음서묵상24 - 믿음은 하나님께서 백지에 그림을 그리실 수 있도록 나를 깨끗하게 내어 드리는 것입니다. 요한복음6:60~71 우스갯소리 가운데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날 아버지는 초코릿이 들어있는 우유를 먹고 싶었답니다. 그래서 아들에게 심부름을 시켰는데요. 그런데 그만 말을 실수하고 말았습니다. '아들아! 슈퍼에 가서 밀크우유 하나만 사오련?' 초코우유가 아니라 밀크우유? 그런데 아무 말 없이 아들은 슈퍼에 가서 초코우유를 사왔답니다. 이런 것을 보고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들었다고 해야 하나요? 그런데 사실은 아버지도 밀크우유라고 말하면서 초코우유를 말했다고 여겼고요. 아들 또한 밀크우유라는 말을 들으면서 초코우유로 알아들었다는 겁니다. 그런 것이 가능한 이유는 서로가 같은 생각, 같은 뜻에 서있기 때문이죠. 같은 맥락에서 이런 실험도 있었다고 하네요. 문장을 적어놓은 시험지를 사람들에게 읽혔는데요. 그 문장에는..
요한복음서묵상23 - 나의 현실을 믿음의 자리로 만드는 능력을 가지세요. 요한복음6:41-59 요한복음 6장은 71절까지 있습니다. 긴 문장이 이어지는 만큼 내용도 길고 어렵습니다. 특히 오늘 본문처럼, ‘생명의 빵’, ‘그 살과 피를 먹지 않고는 생명이 없다’는 식의 말씀은 이해하기가 더욱 어렵지요. 이는 우리뿐 아니라 그 당시 예수님의 말씀을 듣던 이들 또한 이해를 못했던 것 같아요. 그럼에도 예수님은 계속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것에 대해 말씀을 이어갑니다. 어려운 신학적 설명을 하기에는 저의 가방끈이 짧습니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해 보입니다. 예수님께서 먹고 마시는 것에 대해 말씀하고 계시다는 사실 말이죠. 6장은 오천 명을 먹이시는 기적의 장면부터 시작됩니다. 그리고 잠깐 물 위를 걸으시는 장면을 넘어 다시 생명의 빵에 대한 설교가 이어지죠. 그러니까 6장 전체는 거의 먹고 마시는 것에..
요한복음서묵상22 - ‘네가 그리도 바라는 일확천금이 나다.’ 요한복음6:30-40 ‘동행’ 저는 이 단어를 무척 좋아합니다. 함께 걷는다는 의미죠. 성경에는 걷는다는 표현이 많이 등장합니다. 히브리어로 [할라크]라는 단어를 사용하는데요. 이 단어의 쓰임새는 방대합니다. 걷고 놀고 기고 흐르는 등의 모든 움직임을 표현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행하심에 이르기까지 그 쓰임새가 다양합니다. 그중에는 주님께서 우리에게 찾아오시고 구속하신 일에 대한 의미도 포함되죠. 그런데 그 단어에서 파생된 말 중에 동행이라고 표현된 곳은 극히 일부입니다. 대표적인 것이 에녹과 노아죠. 성경은 하나님께서 그들과 동행하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창세기3장을 보면 하나님께서 동산을 거니셨다는 표현이 나옵니다. 아마도 하나님은 당신의 창조물인 사람과 그렇게 동산을 거닐며 도란도란 말씀을 나누고 싶으셨는지도 모릅니다..
요한복음서묵상21 - 우리가 받은 복이 감사의 대상이 아니라 주시는 분의 마음이 대상입니다. 요한복음6:22-29 오늘 본문에서 몇 가지 사실이 확인됩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배를 타고 벳새다로 오셨고, 무리들은 그들을 쫓아 역시 배를 타고 그곳으로 왔다는 사실이죠. 그리고 그곳에서 오병이어의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타고 오셨던 배가 떠났다는 것을 알았고, 또한 그 배에 예수님께서 오르시지 않았다는 사실도 알았죠. 그리고 하루가 지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부분을 기록한 목적이죠. 그러니까 무리들은 예수님의 행적을 열심히 쫓고 있는 것 같아요. 제자들이 떠났다는 것은 그들에게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떠나지 않고 그들 곁에 계신다는 사실이 중요했던 것이죠. 어쩌면 예수님과 함께 하고픈 그들의 마음이 읽힙니다. 어제 묵상처럼 예수님을 두고 떠나는 제자들과는 대비되는 모습입니다. 그들은 예수님..
요한복음서묵상20 - 이제 우리의 삶은 그분의 것입니다. 요한복음6:16-20 오늘 본문은 또 다른 에피소드가 등장합니다. 물 위를 걸어 오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담고 있죠. 제자들은 예수님을 놔둔 채 배를 타고 떠났습니다.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모습이죠. 예수님을 잊고 자신들만 떠났다는 것도 말이 되지 않죠. 이런 행동은 단 한가지 이유뿐입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것이죠. 그들에게 먼저 떠나라고 말씀하시고 제자들과 분리되신 이유는 아마도 홀로 기도하고자 함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가다가 풍랑을 만났습니다. 갈릴리가 사실 바다도 아니고 단지 호수일 뿐인데 뭐 그리 큰 풍랑이 있을까 싶은데요. 사실 갈릴리 호수는 지중해보다 해수면이 200미터나 낮은데다가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갑작스런 돌풍이 이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그때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
요한복음서묵상19 - 오늘 하루가 그 작은 기적의 시작이길 바랍니다. 요한복음6:1-15 오늘 본문은 그 유명한 오병이어의 기적이라고 불리는 내용입니다. 예수께서 행하신 이적 가운데 대표적인 이적의 말씀이죠. 워낙 유명한 본문이라 굳이 내용을 설명드리지 않아도 아실 줄 믿습니다. 다만 저는 오늘 이 본문에서 지금껏 읽어왔던 내용과는 조금은 다른 시각에서 말씀을 나누려고 합니다. 오늘 본문의 행간에는 왠지 복선이 많이 깔려 있는 듯 느껴집니다. 예수께서는 갈릴리 바다(호수지만 유대 사람들은 호수와 바다를 섞어서 불렀습니다) 반대편으로 가셨습니다. 유독 반대편으로 가셨다고 적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리고 큰 무리들이 따랐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다음, 그들이 모인 이유를, 예수께서 많은 병자들을 고치셨기 때문이라고 친절히 설명하죠. 이를 이해하려면 다른 본문들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이 이적에..
요한복음서묵상18 - 하나님께서 나의 증인이 되어주시는 삶을 사세요. 요한복음5:30-47 오늘 본문은 마치 법정드라마 같습니다. 피고는 예수님이고, 원고는 유대인입니다. 죄목은 안식일에 병자를 고쳤다는 것과, 이로인한 율법을 지키지 않았다는 것이죠. 이런 법정의 장면은 드라마에서나 보는 일은 결코 아닙니다. 우리는 수시로 현실에서 법정을 만들고 있습니다. 걸핏하면 고소하고 고발을 합니다. 내 마음에 들지 않았다는 죄목으로, 내 경험과 다르다는 명분으로, 내가 알고 있는 것과 다른, 내가 바라는 것과 다른, 심지어 나의 감정을 건드렸다는 이유로 많은 사람들을 고소고발하는 우리의 모습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여기서 자신의 사명에 대해서 말씀합니다. 자신이 누구이며 무엇을 위해 왔는지, 그리고 누구의 말을 들어야 하는지 밝히십니다. 우리는 누구나 자기 생각과 철학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