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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하는말씀/사무엘서묵상일기

사무엘서묵상일기220 - 분노는 만병의 근원입니다.

삼하 20:11~13  그때에 요압의 부하 한 사람이 아마사의 주검 곁에 서서 외쳤다. "요압을 지지하는 사람과 다윗 쪽에 선 사람은 요압 장군을 따르시오." 그러나 아마사가 큰길의 한가운데서 피투성이가 되어 있었으므로, 지나가는 모든 군인이 멈추어 서는 것을, 요압의 부하가 보고, 아마사를 큰길에서 들판으로 치워 놓았다. 그런데도 그의 곁으로 지나가는 군인마다 멈추어 서는 것을 보고, 요압의 부하가 아마사의 주검을 옷으로 덮어 놓았다. 그가 큰길에서 아마사를 치우자, 군인들이 모두 요압을 따라서, 비그리의 아들 세바를 뒤쫓아 갔다.


어느덧 12월이 되었습니다. 참 시간이 빠르네요. 희망찬 새해를 맞이한 것이 엊그제 같은데 이제 정리할 때가 되었습니다. 언제나 정리하는 시간에 후회가 빠지질 않죠. 아쉽고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왜 없겠습니까? 그러나 그럴 수 없음을 잘 알기에 이번 12월은 후회보다 감사를, 아쉬움보다 칭찬을 하는 시간들이었으면 해요. 그 감사가 오늘을 빛나게 할 테니까요. 어제 비가 온 이후, 날이 차졌습니다. 지금 이 새벽이 영하의 날씨네요. 두툼하게 챙겨 입고 출근하시기 바랍니다.

 

어제 다윗의 조급함이 흉기가 되어 살인의 기초가 되었다는 말씀을 나눴습니다. 그렇다고 요압의 죄가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가 얼마나 잔인하게 아마사를 죽였는지는 오늘 본문이 말해주고 있습니다. 요압은 아마사에게 인사하는 척하면서 칼로 찌르죠. 여기서부터 이미 그의 음흉함이 드러납니다. 얼마나 깊이 찔렀던지 더 이상의 공격이 필요가 없을 정도였다고 하죠. 그리고 오늘 본문이 나옵니다. 요압의 군사 하나가 승리를 선언합니다. 그런데 지나가던 군인들이 아마사의 주검을 보고 멈춰 서죠. 이런 장면은 반복해서 일어납니다. 그래서 요압의 군사는 아마사의 주검을 큰길에서 치우고, 더 나아가 옷으로 덮기까지 하죠. 이유는 그 주검이 보기에 잔인했기 때문입니다. 요압의 군사들은 아마사가 어떤 인물인지 잘 알았을 것입니다. 아마사의 모병활동이 수월하지 않았던 데서 그의 입지가 드러나죠. 그들의 멈춰 섬은 그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한 것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어쩌면 아마사의 최후를 당연하게 여겼을지도 모르죠. 배신자의 최후라고나 할까요? 그럼에도 그들이 멈춰 서서 보게 되었던 이유는 이런 생각 때문이었지 않나 싶어요.

 

'꼭 저렇게까지 해야 했나?' 

 

그러니까 요압의 군사도 이를 가렸던 것이죠.

 

요압은 훌륭한 군인이었습니다. 늘 다윗과 함께 했던 인물이죠. 특별히 다윗이 위험에 처해있을 때 그의 곁을 지켰던 사람입니다. 또한 대단한 지략가였고 용맹한 전사였죠. 그는 싸움터에서는 늘 승리를 가져왔습니다. 충성심이면 충성심, 능력이면 능력을 두루 갖춘 인물임에 틀림없어요. 그럼에도 그가 존경스런 인물로 보이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하는 일마다 모사꾼처럼 비치고, 잔인한 폭군의 이미지를 갖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런 사람 있죠? 언제나 열심히 하고, 앞서 일을 하는데 늘 그 열심은 인정을 못 받고 오히려 오버하는 것처럼, 무리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무엇 하나 빠지지 않는 훌륭한 요압이지만 그는 늘 자아가 강했던 것으로 보여요. 그래서 늘 다윗보다 앞서 가죠. 마치 조폭의 넘버 2처럼 알아서 해치웁니다. 죽이지 말라는 압살롬도 그냥 죽여 버리고, 돌아온 아브넬도, 아마사도 죽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옳은 행동이라고 믿죠. 자신의 판단이 먼저이고 옳다는 자기 확신에 그는 자신의 능력을 써버립니다. 그래서 뭐든 한 발 더 나가버리는 것이죠.

 

그런데 그 자아의 중심에 무엇이 있는 줄 아십니까? 그것은 분노였어요. 자기 동생을 죽인 자에 대한 분노가 결국은 아브넬을 죽이고, 자신의 주군인 다윗을 힘들게 한 분노가 압살롬을 죽입니다. 충성을 다했지만 인정받지 못한 분노가 오늘 아마사를 죽이는데 이르죠. 그 분노가 그의 행동과 생각을 이끄는 인물이 요압이었습니다.

 

우리 안에도 이 분노가 있습니다. 화가 있어요. 종류와 원인은 다를지 모릅니다. 인정받고 싶은 마음일 수도, 남을 돕고 싶은 선한 마음일 수도 있습니다. 때론 믿음으로 인한 확신일 수도 있어요. 그런데 그것이 아무리 선하고 심지어 믿음일지라도 그 안에 분노가 자리 잡으면 비열하고 잔인한 병이 듭니다. 열심히 하고 최선을 다했는데 인정받지 못하는 것이 분노가 되면 그 열심은 오히려 독이 되어 복수로 변하죠. 누군가를 돕고자 하는 선한 마음에 분노가 섞이면 대가를 집요하게 요구하는 공격이 됩니다. 어떤 경우든 일을 망치는 것은 내 안에 자리 잡은 분노입니다.

 

분노는 만병의 근원입니다. 누군가를 돕겠다고 열심히 일하고는 칭찬이 없으면 모든 것이 깨뜨리는 것이 분노죠. 이 분노는 자신만 상하게 하는 병이 아닙니다. 남도 상하게 만들죠. 분노를 일으킬 만큼 일하지 마세요. 화가 날만큼 마음을 쏟지 마세요. 미워할 만큼 사랑하지 마세요. 그것은 온전한 일도, 마음도, 사랑도 아닙니다. 단지 그렇게 가면을 쓴 분노일 뿐입니다. 그 분노를 다스리세요. 화내는 일을 하지 마세요. 속이 상하도록 내버려 두지 마세요. 어떤 일을 하든지 분노가 마음에 조금이라도 남아있지 않도록 기도하세요. 작은 분노가 나를 병들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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