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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하는말씀/사무엘서묵상일기

사무엘서묵상일기222 - 드라마틱한 삶을 꿈꾸지 마세요.

삼하 21:1~2   다윗 시대에 세 해 동안이나 흉년이 들었다. 다윗이 주님 앞에 나아가서 그 곡절을 물으니, 주님께서 대답하셨다. "사울과 그의 집안이 기브온 사람을 죽여 살인죄를 지은 탓이다." 다윗은 기브온 사람을 불러다가 물어보았다. (기브온 사람은 본래 이스라엘 백성의 자손이 아니라, 아모리 사람 가운데서 살아남은 사람들이며, 이미 이스라엘 백성이 그들을 살려 주겠다고 맹세하였는데도, 사울은 이스라엘과 유다 백성을 편파적으로 사랑한 나머지, 할 수 있는 대로 그들을 다 죽이려고 하였다.)


장면이 바뀌어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기근에 관한 이야기죠. 본문은 다윗 시대라고만 적어 놓아서 이때가 언제인지를 정확히 파악하긴 힘듭니다. 다만 시대적인 배경이 이전 장을 따라가는 것은 아닌 듯해요. 아마도 이는 과거의 어느 때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무튼 내용은 이렇습니다. 흉년이 들었던 것이죠. 그것도 3년 씩이나 말이죠. 과거 왕정시대 흉년은 국가의 비상사태였습니다. 우리 역사책에 보면 흉년은 왕의 책임이라는 말이 종종 나오죠. 그래서 기우제를 왕이 직접 행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또 이를 하늘의 벌로 여기기도 했죠. 성경에서도 비슷한 흐름이 있습니다. 단순한 자연재해로 여기기보다는 하나님의 심판에 그 의미를 두는 경향이 짙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이는 과거의 잘못된 일에 대한 것임을 밝히는데요. 그것은 사울 왕이 기브온 사람들을 죽였기 때문이라는 것이죠.

 

일단 기브온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지를 알아봐야겠죠. 그들은 아모리 사람들로 이스라엘에게는 이방인이었습니다. 여호수아가 가나안 정복을 시작할 때 저항했던 가나안 사람들 중 하나였죠. 그런데 그들은 당시 가나안 연합군에서 빠져나와 여호수아의 이스라엘에 투항했습니다. 그래서 여호수아는 이방인임에도 불구하고 그들과 조약을 맺고 함께 살 수 있도록 약속을 했던 것이죠. 그런데 사울 왕은 이 기브온 사람들을 이방인이라는 이유로 학살했습니다. 그 때문에 지금 3년 동안의 기근이 발생했다는 것이죠.

 

자! 그럼 여기서 의문점이 몇 가지 발견되죠. 먼저 '왜 지금일까?'라는 의문이 듭니다. 잘못은 사울의 시대에 있었던 것인데 지금은 다윗의 시대잖습니까? 다윗이 기브온 사람들을 죽인 것도 아닌데 왜 지금 흉년이 들어 심판이 임하는지 이해하기가 힘들죠. 이에 대한 묵상은 하루를 미루겠습니다. 내일 다시 다루기로 하고요. 저는 다른 의문점을 오늘 묵상해 보고자 합니다. 그것은 다윗의 태도예요. 성경은 흉년이 3년씩이나 지속되었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그리고 다윗이 이 흉년의 이유를 하나님께 물었다고 되어 있어요. 그래서 그 이유를 알게 되죠. 그렇다면 왜 다윗은 3년이 지나서야 하나님께 물었을까?라는 의문이 저는 들었어요. 흉년이 한 해 들었을 때는 그저 무시했을까요? 2년째 접어들었을 때는 그저 자연재해라고만 생각했던 것일까요? 3년째가 되어야 비로소 그 심각성을 깨달았을까요?

 

여기서 저는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반복되는 실수를 봅니다. 문제가 무르익고 심각하게 곪아 터질 때까지 그것을 문제로 여기지 않고 쉽게 보는 우리의 태도가 있다는 사실을 말이죠. 이미 말씀드렸지만 흉년은 일반 자연재해가 아니라 하나님의 심판으로 여기는 경향이 이스라엘 역사적으로 계속되어 왔습니다. 그런데 '꼴랑 1년?' 이런 태도로 무시하고, '2년쯤은 견딜 수 있지~'라는 태도로 방관하죠. 그리고 피해와 후유증이 극심해져야 그제서 부랴부랴 하나님을 찾습니다. 내가 손을 쓸 수 없는 상황이 되고서야 그제야 하나님을 부르짖는 버릇은 반복되는 습관처럼 되어 버리죠.

 

건강은 건강할 때 지켜야 합니다. 병이 들고 아픈 이후에 건강을 되찾는 일을 반복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 이유는 큰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이 아니라 문제가 큰 문제로 발전하지 않도록 관리하는 데 있습니다. 우리가 매일 감사로 시작하는 이유, 평상시 우리의 마음을 주님의 마음에 맞추고, 좋은 눈과 생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이유는, 그렇게 실없고 생각 없는 사람처럼 되라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문제가 문제 되지 않게, 외부의 공격이 공격되지 않게, 사탄의 침략이 무력하게 만들려는 것입니다. 속담에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다는 말이 있죠. 마음이 건강하면 다른 사람의 속삭임에 내 마음을 빼앗겨 상처 받고 관계가 틀어지는 일들은 생기지 않을 것입니다. 제가 늘 말씀드리죠? 다른 사람의 입은 내가 막을 수 없지만 듣는 나의 귀는 내가 만들 수 있다고요. 아무리 심한 말이어도 내가 좋게 들을 수 있다면 그 공격은 아무 힘이 없습니다. 내게 튼튼한 자존감이 있으면 다른 사람의 평가에 흔들리지 않아요.

 

우리에게는 작은 사인(sign)들이 있습니다. 건강에도 작은 신호들이 있죠. 그때 이미 움직여야 합니다. 작은 불편함을 해소해야 큰 문제로 번지지 않습니다. 조그마한 불만, 불평이 나중에는 걷잡을 수 없는 화마로 변합니다. 작은 다툼이 큰 전쟁이 되고, 쉽게 고칠 것을 방치하면 큰 병이 되죠. 평상시 주님의 마음을 읽는 훈련을 하세요. 건강할 때 몸을 관리하시고요. 좋을 때 더 나누고 손을 내미세요. 그렇게 관리하며 내 영적 자존감을 세우고 영적 건강을 키우셔야 합니다. 그 작은 움직임이 보이지 않는 큰 문제를 막습니다. 드라마틱한 삶을 꿈꾸지 마세요. 엄청난 역경을 극복하고 기적이 벌어지는 삶을 부러워하지 마세요. 죽음의 고비를 수없이 넘기고 천당과 지옥을 오가는 삶을 멋지다 하지 마세요. 보기에는 좋아 보일지 몰라도 하기에는 괴롭습니다. 오히려 늘 예비하고 준비하며 있는 듯 없는 듯 지나가는 감기처럼 큰 문제들을 비켜가는 삶이 행복한 삶입니다. 아니 지혜로운 삶이에요. 그 평범함 속에 주님의 손길과 인도하심이 가장 많습니다. 그 고요함 속에 일하시는 주님의 기적이 가장 충만해요. 오늘도 그런 삶이 되시길 빕니다.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지난 하루 가운데 가장 많은 주님의 돌보심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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