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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하는말씀/예레미야묵상

예레미야서묵상 117 - 좋은 것을 바라면 좋은 것이 먼저 보입니다. 예레미야 50:1-20

드디어 바빌로니아에 대한 심판의 예언이 등장합니다. 당시 가장 강하고 강력한 국가가 바빌로니아였으니까 예레미야를 통한 심판의 예언도 막바지에 이르렀음을 짐작하게 합니다. 이제 예레미야는 3장이 남았습니다. 마지막 장인 52장은 유다 왕국에 대한 심판의 예언이니까 타국에 대한 심판은 바빌로니아가 끝이 되는 셈이죠. 다른 어떤 나라보다 크고 강대한 나라였던 만큼 바빌로니아에 대한 예언은 두 장을 걸쳐 진행됩니다. 물론 그렇다고 내용이 많은 것은 아닙니다. 조금은 지루하리만큼 반복되는 내용으로 50~51장이 채워졌습니다. 같은 내용이 반복되었다는 것은 그만큼 강조하길 말씀이 있다는 증거겠죠.

오늘은 바빌로니아의 심판에 대한 내용보다 다른 것을 먼저 묵상하도록 하겠습니다. 바빌로니아에 대한 내용은 계속 등장할 테니까요. 다만 눈에 띄는 것은 오늘 본문의 구성입니다. 특이하게도 바빌로니아의 심판에 대한 예언과 멸망의 이야기 가운데 이스라엘 백성의 귀환과 회복을 번갈아 가며 적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마치 대비하듯 글이 구성되어 있는 셈이죠. 어쩌면 바빌로니아의 멸망이 이스라엘의 회복인지도 모르죠. 시소게임을 하듯 그들의 흥함은 이스라엘의 망함이 되고, 그들의 망함은 이스라엘의 흥함이 됩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이스라엘의 실질적인 물리적 지배자였으니까요. 

이는 마치 우리의 영적 모습과도 흡사합니다. 우리에게 욕심이 채워지면 나눔은 자연스레 사라집니다. 우리에게 악이 창궐하면 어느새 선은 자취를 감추죠. 세상의 것에 심취하며 살다 보면 영적인 가치는 안중에도 없어집니다. 비단 영적인 문제에만 속하는 것도 아닙니다. 불평을 많이 하면 불평할 일들만 생깁니다. 감사할 일들은 보이지 않죠. 분노에 사로잡히면 눈에 분노할 일들만 보입니다. 나의 마음을 분노로 채우면 이해와 사랑의 마음은 설 곳이 없어지죠. 그렇게 시소게임이 시작됩니다. 

어떠신가요? 여러분은 그 시소게임에서 승리하고 계신가요? 올해는 우리 교회가 감사의 한 해로 정했습니다. 이제 올 한 해, 감사노트를 매일 적기로 했습니다. 이는 감사로 나의 마음을 채우려는 시도입니다. 그렇다고 감사할 일들만 있어서 감사하는 것은 아닙니다. 어려운 일도, 아픈 일도, 그리고 불평과 불만, 분노를 유발할 일들도 당연히 생기겠죠. 그러나 우리가 그 불평과 분노로 내 마음을 채우면 채울수록 사라지는 것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관성의 법칙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외부에 힘이 주어지지 않을 때 물체는 운동 상태를 유지하려는 성질이죠. 우리의 영성에도 이 법칙이 작용합니다. 우리가 바꾸지 않으면(이것을 회개라고 하죠) 그 상태를 계속 유지하려 하고, 더 나가버리는 습성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생각한 것을 더 생각하고, 품은 것을 더 품게 되는 것입니다. 

나쁜 생각을 하면 나쁜 것만 보입니다. 반대로 좋은 것을 바라면 좋은 것이 먼저 보이죠. 악한 것이 소멸하면 선한 것이 드러나고, 선한 것을 품으면 악한 것이 사라집니다. 이것이 우리의 법칙입니다. 하나님을 붙잡으면 세상이 사라지고, 긍휼을 붙잡으면 이기심이 사라집니다. 용서를 붙잡으면 미움이 사라지고, 감사로 채우면 불평 거리가 어느새 없어집니다. 불평이 저절로 사라지지 않습니다. 악이 저절로 물러가지도 않아요. 내 마음을 감사로 채우고, 선한 행동을 시작할 때 불평도 악도 힘을 쓰지 못하는 것입니다. 

감사를 시작하십시다. 목숨 걸듯 사명과 의지를 가지고 내 심령을 감사로 채우십시다. 그것 이외에 내 안의 불평과 불안을 해소할 수 있는 무기는 없습니다. 어떤 일이 있더라도, 어떤 문제가 있더라도 그것을 감사한 일로 바꾸는 여러분이 되시길 올 한 해, 끝까지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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