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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하는말씀/빌립보서묵상

나의 아픔이 오히려 감동을 주는 인생을 사십시오.

빌립보서묵상02 | 1:8~14

나의 아픔이 오히려 감동을 주는 인생을 사십시오.




 

요즘 강남에 사는 부모들 사이에는 자녀를 성공시키는 5가지 법칙이 존재한다지요?

1. 할아버지의 재력,

2. 아버지의 무관심,

3. 엄마의 정보력,

4. 아이의 체력,

5. 그리고 마지막은 도우미 아줌마의 충성심이라는군요.

 

자녀의 성적은 부모의 경제력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사실은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죠.

작년 서울지역 고등학교 졸업생 가운데

서울대에 입학한 학생의 절반은 강남3구 출신이랍니다.

 

아시다시피 강남3구의 사교육비율은 대단하죠.

통계청의 ‘2013년 연간 가계동향을 보면

우리나라 소득 상위 20% 가구의 월평균 교육비 지출액은 504,300원이었습니다.

하위 20% 가구가 쓰는 76,600원의 6.58배에 달하죠.

그 중 강남구의 월 사교육비 지출 평균이 얼마인지 아십니까?

강남구가 발표한 [2013년 기준 강남구의 사회지표 분석]에 다르면,

가구당 월평균 122만원입니다.

전체 평균보다도 10배에 달하죠.

게다가 이것도 강남구 전체 평균이니 상위그룹은 그보다 더 많은 지출을 하겠죠.

들리는 이야기에 의하면, 500만원이 훌쩍 넘는 가정도 수두룩하다더군요.

 

이에 따라 자라나는 세대의 의식구조도 많이 변했습니다.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사회조사센터가 청년층 1,500명을 대상으로

청년의식조사를 실시한 결과,

청년들이 얼마나 자신감을 가지고 사는지를 묻는 [청년활력지수]에서

부모의 경제적 지수가 중상위층인 청년의 경우,

100점 만점에 54점이 나온 반면,

빈곤층에 해당하는 청년들의 점수는 38.9점에 그쳤습니다.

다시 말하면, 오늘날 청년들은 부모의 경제력에 따라

학업, 결혼, 취업, 생활 등에서의 자신감이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이제 개천에서 용 나는 시대는 끝난 세대입니다.

청년들은 이미 자신의 미래가

부모의 경제력에서부터 결정되었다고 느끼는 세대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래서 무기력하고, 무의미하고, 스스로 포기하는 세대가 된 것이죠.

기울어진 운동장이라고 하죠.

한쪽은 뻥 축구를 해도 쉽게 골을 넣고,

한쪽은 제 아무리 열심히 달리고 뛰고 날아도 한 골을 넣기가 힘듭니다.

이런 상황과 환경 속에 청년들은 주눅 들어 가는 듯합니다.

아니 익숙해져 가고 있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상황과 환경이 주는 무거움은 감내하기 힘든 고통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상황과 환경을 바꾸시겠다고 말씀하시지는 않습니다.

푸른 초장과 맑은 물가는 좋은 상황과 환경이 아닙니다.

우리가 보는 눈이죠.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가나안은 푸른 초장과 맑은 물가가 아닙니다.

그곳은 광야보다 더 치열하게 싸워야 하는 현실이죠.

광야에서는 먹을 것이 거저 주어졌지만

가나안은 먹을 것을 만들어야 했고,

광야에서는 갈 길을 볼 수 있었지만

가나안에서는 내가 그 길을 찾아야 하죠.

그래도 그 곳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었던 이유는,

이미 광야에서 어려움 가운데도 인도하신 주님의 손길을 경험했기에

이제 어떤 어려움도 두렵지 않게 된 것이죠.

바로 믿음이 만든 신비입니다.

하나님은 어두운 상황에서도 우리가 빛을 잃지 않기 원하십니다.

외부의 상황에도 흔들리지 않기를 원하시죠.

예전에는 교회에서 많은 이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간증하곤 했었습니다.

간증의 왕도가 있는 건 아니지만 은혜로운 간증에는 하나의 패턴이 있죠.

바로 자신의 어려움과 어두움을 통과하는 이야기 말입니다.

하나같이 어려운 시절과 어두운 과거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견디고 이긴 눈물겨운 이야기가 주로 간증되었습니다.

 

주위 사람들을 보면, 유독 신뢰와 믿음이 가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서로의 삶이 다 다르고, 저와의 접촉점도 다 다르죠.

그럼에도 그들에게서 느껴지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무엇인가 어렵고 힘든 환경의 동굴을 통과한 경험이 있다는 것이죠.

자신을 쳐서 복종시키고, 남 탓이 아닌 자신의 믿음으로 선 경험 말입니다.

 

바울은 옥중에서 이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그가 옥에 갇혔다는 것은,

그는 지금, 가던 길이 막혔고, 자신의 생각대로 되지 않았으며,

현재는 실패했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그 때,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1:12, 형제자매 여러분, 내게 일어난 일이 도리어 복음을 전파하는 데에 도움을 준 사실을, 여러분이 알아주시기를 바랍니다.

 

오히려 그의 구속과 어려움이 다른 사람에게 동기를 만듭니다.

그의 아픔이 다른 사람에게 결속을 만듭니다.

 

오래전 제가 알던 교회가 있습니다.

작고 조용한 교회였습니다.

한편으로 보면 가족과 같은 교회였지만

다른 한편으로 보면 활력은 없는 교회였죠.

그런데 그 교회 목사님이 강단에서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병원의 검사결과, 암 말기라는 진단이 내려졌습니다.

아직도 한창 일하셔야 할 나이셨던 이 목사님에게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일이었죠.

교회에도 큰 문제가 발생한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교회에 한 사람, 두 사람이 모이더니 매일 기도회가 열렸습니다.

모든 성도들이 자신의 잘못이라며 회개하기 시작했구요.

교회에는 진심어린 사랑과 은혜를 나누는 뜨거운 열정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그 교회는 전혀 다른 교회가 되었습니다.

 

목회를 하면서 장례를 치르게 되죠.

일반적이라고 할 수는 없겠습니다만

장례가 난 가정의 이후 과정을 보면 대충 2가지의 모습을 띕니다.

아버지, 혹은 어머니의 장례 이후,

가족들이 서로 결속하고, 사랑이 회복되고, 관계가 세워지는 가정이 있습니다.

부모님의 빈자리를 통해 가정이 다시 서는 겁니다.

반면, 어떤 가정은 그 죽음으로 말미암아

서로 다투고 싸우는 가정도 있는 것을 봅니다.

그중, 대부분은 재산문제죠.

 

인생을 어떻게 사느냐의 정의를 내리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저는,

나의 어려운 삶이 다른 이에게는 그 삶을 살고 싶게 만드는 동기가 되고,

나의 막힘이 다른 이에게는 오히려 도전하고 싶은 마음을 주며,

나의 죽음이 다른 이들에게는 새로운 시작이 되는 삶이라면 좋겠습니다.

주님의 십자가가 나의 길이 되는 것처럼 말이죠.

 

작은 목회가 기쁘지만은 않습니다.

그러나 나의 목회가 다른 후배들에게는 나도 하고 싶은 목회가 된다면

성패와는 상관없이,

성공한 목회가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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