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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하는말씀/[성숙시리즈01]이시대교회란무엇인가?

교회는 주유소입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소금이 짠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그 짠맛을 되찾게 하겠느냐? 짠맛을 잃은 소금은 아무 데도 쓸 데가 없으므로, 바깥에 내버려서 사람들이 짓밟을 뿐이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산 위에 세운 마을은 숨길 수 없다. 또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다 내려놓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다 놓아둔다. 그래야 등불이 집 안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환히 비친다. 이와 같이, 너희 빛을 사람에게 비추어서,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여라.” (마태복음 5:13~16)

 

잘못된 연료

 

1980년대 신학생 시절, 지금은 이름만 대면 알만한 목사가 된 선배가 아버지 자가용을 가지고 나타났다. 자가용이 귀하던 시절, 게다가 중형 세단의 새 차라 모두 부러워했다. 마침 그 선배와 함께 지방에 볼일이 있었던 나는  그날 그 차를 같이 탈 기회를 얻었다. 고속도로를 달리는 자동차도 좋았지만 면허증이 없었던 나로서는 차보다 운전하는 선배의 모습이 더 멋져 보였다. 장시간 운전을 하다 우리는 주유소에 들리게 되었는데 이곳에서 문제가 생기고 말았다. 주유를 맡기고 화장실에 다녀오던 선배가 갑자기 얼굴이 하얘졌다. 주유하던 분이 그만 경유를 넣어야 할 것을 휘발유를 주입했기 때문이다. 중형 세단이었던 그 차는 특이하게 경유차였고, 그것을 인지하지 못한 직원이 실수로 무심결에 휘발유를 넣고 만 것이다. 새 차에 잘못된 연료, 그날 주유소는 난리가 났다. 

 

우리는 흙(자동차)이라는 하드웨어와 하나님의 영(연료)이라는 소프트웨어가 결합된 존재다. 단지 하드웨어는 새 차인가! 헌 차인가! 혹은 조금 큰가! 작은가!로 나뉠 뿐,  모든 것은 연료로 인해 움직인다. 아무리 새것이어도, 아무리 고급이어도 연료가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연료가 다르면 고장이 난다. 우리 안에 하나님의 영이 아닌 다른 것이 들어가면  고장이 난다. 그것을 우리는 죄라고 부른다.

 

내가 사역했던 중국에는 수많은 비싼 외제차들이 즐비하다. 이름만 들으면 자동차로는 어디 가도 빠지지 않는 제품들이 길거리를 질주한다. 그런데 유독 중국에서는 이런 차들이 1년도 되지 않아 고장이 나고, 심지어 폐차가 되기 십상이란다. 이유는 연료 때문이다. 정제되지 않은, 잘못된 연료들이 많아서 차가 고장이 나는 것이다.

 

‘빛과 소금’이라는 [연료]로 ‘세상’을 달리는 [자동차] 

 

마태복음 5장의 말씀은 잘 알려진 말씀이다. 나 또한 빛과 소금에 대한 말씀을 많이 묵상했고, 설교도 많이 했다. 그러나 오늘, 나는 이 말씀에서 새롭게 중요히 받아들여지는 단어를 발견했다. 바로 ‘세상’이라는 단어다. 이 말씀을 자동차와 연료 관계로 대비시켜 보았다. 빛과 소금은 연료이고, 세상은 자동차로 말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세상에서 멋지게 살아간다. 그러나 그 속에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는 사람을 하나님은 찾으신다. ‘빛과 소금’이라는 [연료]로 ‘세상’을 멋지게 달리는 [자동차] 말이다. 교회는 연료를 주입하는 주유소다. 온전하고 아름다운 연료를 준비하는 곳이다. 그러나 자동차인 우리들의 목표는 교회(주유소)가 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의 목표는 세상이어야 한다. 우리의 행동반경도, 우리의 삶의 자리도, 우리의 사역지도 주유소가 아니다. 우리의 사역지는 바로 세상이다. 교회는 기름을 팔기 위해서 존재하는 곳도 아니다. 교회는 자동차가 많이 들어오게 하기 위한 곳도 아니다. 교회는 많은 자동차들이 세상에서 신나게 달릴 수 있도록 만드는 곳이다. 어느 순간, 주유소가 자동차들을 머물게 만들면 유명함을 자랑하게 될지는 모른다. 어느 순간, 주유소가 대형화된다면 위용을 자랑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주유소는 많은 차를 들이는 주차장이 아니다. 주유소는 채워서 내보내는 곳이다. 그 사명의 이유를 잃는다면, 그 존재의 기능 또한 잃고 말 것이다.  

 

교회는 하나님의 방법인 ‘빛과 소금’으로, ‘세상’에서 경쟁력과 영향력을 가지고 달리는 ‘자동차’에게 연료를 주입하는 주유소다. 주유소는 스스로 빛나서는 안 된다. 주유소(교회)의 본질은 자동차(사람)에게 에너지를 전달하는 것이고, 자동차(사람)는 길(세상) 위에서 운송수단(사역)을 다 하는 데 있다.

 

자녀를 사랑한다고 부모가 자녀를 집안에 가둬 둔다면 그것은 잘못된 사랑이다. 부모는 자녀가 세상에 나가 역할을 다하도록 채워서 내보내야 한다. 마찬가지로 교회도 내어 보내는 사역으로 전환해야 한다. 슬프고 어렵고 힘들지만 그것이 교회의 사명이기에 바꾸어야 한다. 교회의 자랑거리는 몇 명이 모이느냐가 아니다. 교회의 자랑은, 메시지를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연료처럼 쓰며 다니느냐에 있다. 에너지로 표출되지 못하는 연료를 우리는 [가짜]라고 부른다. 선포되었지만 연료로 쓰일 수 없는 메시지가 우리 가운데 허다하다. 티비를 틀어도 나올만한 메시지, 상담학 교수나, 처세 경영 교수들이 더 잘할 만한 메시지가 교회 주위에 융성한 대접을 받으며 세워지는 현상들이 노골적으로 진행되기도 한다. 마치 사원 연수회에서 공동체 단합을 위해 진행할 만한 것 같은 프로그램들, 소위 어록이라는 것들의 잔치가 강단을 점령한 지 오래되었다. 우리는 교회의 메시지를 가짜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 교회의 메시지가 진짜 연료가 되게 하기 위해서는 성도들이 그 메시지를 세상에서 에너지화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이 땅에서 일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만들어갈 진정한 사역자는 성도이지 목사가 아니다. 그들이 험한 세상, 수시로 무시되는 교통법규의 현장, 그래서 난장판이 된 도로를 유능하고 유연하게 질주하며 길을 낼 성도가 되어야 한다. 그것이 오늘날 교회의 존재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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