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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하는말씀/[성숙시리즈01]이시대교회란무엇인가?

교회는 병원입니다

 

그 뒤에 예수께서 나가셔서, 레위라는 세리가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그에게 말씀하셨다. “나를 따라오너라.” 레위는 모든 것을 버려두고, 일어나서 예수를 따라갔다. 레위가 자기 집에서 예수에게 큰 잔치를 베풀었는데, 많은 세리와 그 밖의 사람들이 큰 무리를 이루어서, 그들과 한 자리에 앉아서 먹고 있었다. 바리새파 사람들과 그들의 율법학자들이 예수의 제자들에게 불평하면서 말하였다. “어찌하여 당신들은 세리들과 죄인들과 어울려서 먹고 마시는 거요?”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건강한 사람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사람에게는 필요하다.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불러서 회개시키러 왔다.” (누가복음 5:27~32)

 

이상적인 병원 

 

이상적인 교회는 어떤 것일까? 당신은 대답을 고심해 보라. 다시 묻는다. 당신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교회는 어떤 모습인가? 수많은 대답이 있겠으나 나는 당신의 대답을 듣기 전에 당신의 대답에 확신을 주고자 한 가지를 더 묻겠다. 당신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병원은 어떤 곳인가? 

 

바울은 에베소교회에 편지를 썼다. 그 편지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과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엡 4:25)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엡 4:26) 

“도둑질하는 자는 다시 도둑질하지 말고”(엡 4:28)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엡 4:29) 

 

이 편지는 소위 일반인들에게 쓴 편지가 아니라 에베소 교인들에게 쓴 편지다. 그러니까 정리하자면 에베소 교인들에게는 이런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거짓, 분노, 도둑질, 더러운 말 등...

 

우리는 초대교회 당시 교인들이 모두 선하고 고결한 사람들로 인식하고 싶겠지만 초대교회의 교인들은 모두 구질구질하고, 더러운 사람들이었다. 사도행전 2장에 보면, 사람들이 서로 통용하고, 서로 필요한 대로 나누며 살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에 사람들이 놀라고, 칭송하기까지 하였다 기록되어 있다. [칭송/호감]이라는 말은 헬라어 [카리스]로, 은혜라는 뜻인데, 받을 수 없는 사람이 받게 되는 것을 말한다. 다시 말하면 결코 서로 통용하고, 나누는 삶을 살 수 없던 사람들이 그렇게 사는 것을 본 것이다. 소위 말해서, 거지도 있고, 전직 도둑도 있고, 입에 더러운 말이 붙은 사람도 있었던 것이다. 이 교회를 우리는 돌아가고 싶다고 말하는 초대교회라고 부른다.

 

교회는 천국이 아니다. 교회는 깨끗해야 하는 곳도 아니다. 교회는 그저 병원일 뿐이다. 더럽고 추한 고름이 질질 나는 사람들이 고쳐달라 아우성인 그런 병원 말이다. 그러니 당연히 교회는 냄새나고 문제 많고, 심지어 언제 위험이 터질지 모르는 곳이다. 영적으로 간음한 자들, 굶주리고 배고픈 이들, 갈피를 잡지 못하고 헤매는 이들이 머물 곳이 교회다. 그런데 어느 순간, 교회는 너무도 고결한 곳이 되어버렸다. 정장을 입지 않으면 출입하는데 눈총 받는 곳이 되어버렸다. 깨끗하고, 문제없고, 순한 사람들이 대접받는 곳이 되어버렸다.  정작 병원에서는 환자가 대접받는데도 말이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신 이유는 우리의 죄 때문이다.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가 필요한 이유는 우리 안에 존재하는 죄 때문이다. 하나님의 성전은 그 죄를 씻는 곳이었다. 나의 죄를 고백하는 곳이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우리는 더 이상 교회에서 죄를 말하지 못하게 되었다. 나의 죄를 고백하는 순간, 교회 공동체에서 우리는 손가락질받는 자가 되기 때문이다.

 

당대에 세도가 위치에 속했던 바리새인들과 율법학자들은 예수님께, 노는 물을 정하라고 충고했다. 그러나 예수님은, ‘나의 자리는 가진 자가 아니라 못 가진 자, 건강한 자가 아니라 병든 자와 함께하는 자리’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그는 가난한 자와 병든 자, 문제 많은 창녀와 죄인들의 친구가 되어 주셨다. 그런데 그 주님께서 머리가 되시는 교회는 점점 죄인들을 멀리한다. 문제를 감추려 든다. 스스로 천국이 되고자 한다.

 

개척 이후 우리 교회는 끊임없이 문제가 있었다. 영적으로 도전하는 이들이 들끓었고,  이곳저곳에서 문제들이 터졌다. 케어하고 돌봐야 할 청년들은 왜 이리 많은지, 또 기도해야 할 제목들은 어찌나 많은지... 10년이 넘은 지금은 그 많던 문제들이 많이 잠잠해졌다. 영적으로 도전하는 이들도 적어지고, 특별한 돌봄 없이도 스스로 성장하는 이들도 생겼다. 어떤 이들은 이제 교회가 안정되었다고, 정상화되었다고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오히려 요즘 교회가 죽어가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점점 기도할 제목이 사라진다면, 점점 걱정하고 케어할 영혼들이 사라진다면, 점점 눈물 흘려야 하고, 밤새 무릎을 꿇어야 할 일들이 사라진다면, 이것이 진정한 교회인가?

 

우리는 환자다

 

교회는 병원으로 돌아가야 한다. 악취가 풍기고, 어려움에 피땀을 흘리는 병원으로 말이다. 교회가 지향해야 할 방향은 세련된 호텔이 아니라 소독 내 물씬 나는 병원이다.  나를 내보일 수 있는 교회를 만들어야 한다. 병원에서는 의사에게 자신의 취약한 병세를 모두 보여준다. 나의 치부를 다 드러내어도 병원은 쫓아내지 않는다. 나의 더러움을 다 드러내어도 병원은 손가락질하지 않는다. 오히려 병원은 중한 문제일수록 더 소중히 다룬다.

 

교회가 그래야 한다. 나를 다 드러내고, 있는 모습 그대로 나아올 때 환영받고, 사랑받고, 치유받는 곳이 되어야 한다. 교회에서까지 과장되고, 감추고, 변장하는 세상의 처세가 주류되게 한다면 더 이상 교회는 이 땅의 희망이 될 수 없다. 또한 교회는 서로가 환자임을 인정하고 도와야 한다. 서로 용납하고 용서해 주어야 한다. 같은 환자임을 알 때 우리는 서로를 돕는다. 결코 교인은 의사요, 비교인은 환자의 구도가 아니다. 오직 의사 되시는 분은 주님 한 분이시다. 우리는 모두 환자요, 환자인 입장에서 더 나을 것도 더 못할 것도 없는 존재들이다.

 

환자가 병원에서 환영받지 못하면 더 이상 갈 데가 없다. 마찬가지로 영적 환자들을 교회에서 용납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더 이상 의지할 데가 없다. 교회는 환자가 넘치는 곳이다. 교회는 그래서 문제가 많은 곳이다. 문제 많고, 위험이 많아도 의사 되시는 예수님이 계시기에 걱정하지 않는 곳이다. 교회를 병원이 아닌 호텔로 만들지 말자. 나를 환자가 아닌 멋진 공주로 만들지 말자. 이 땅의 교회는 모든 더러움이 모이는 곳이고, 우리들은 모든 문제가 넘치는 자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주신 십자가로 우리는 더러움을 정화하고, 문제를 이기는 승리의 길로 가게 될 것이다. 거짓 교회를 만들지 말자. 교회가 거룩한 것이 아니라 그곳에 거하시는 주님만이 거룩하시다. 나의 추함과 회개함을 드러내고, 서로 용납과 용서가 존재하는 교회를 세우자. 그것이 주님이 죽으시기까지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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