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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하는말씀/[성숙시리즈01]이시대교회란무엇인가?

교회는 빵입니다.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믿는 사람은 영생을 가지고 있다. 나는 생명의 빵이다. 너희의 조상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어도 죽었다. 그러나 하늘에서 내려오는 빵은 이러하니, 누구든지 그것을 먹으면 죽지 않는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이 빵을 먹는 사람은 누구나 영원히 살 것이다. 내가 줄 빵은 나의 살이다. 그것은 세상에 생명을 준다.(요한복음6:47~51)

슬픔 가운데 끝없는 기쁨


미국 미네아폴리스에 있는 베들레헴 침례교회를 담임했던 존 파이퍼(John Piper) 목사는 내가 가장 존경하는 설교자 중 한 분이다. 그는 2012년을 끝으로 32년 동안 목회하던 교회에서 은퇴했다. 지난 2012년 12월, 그의 마지막 설교가 있었다. 설교의 제목은 “슬픔 가운데 끝없는 기쁨(Sorrowful Yet Always Rejoicing)”이었다.

 

그는 “당신이 예배시간에 그리스도 안의 기쁨을 누리는 체하며, 부와 안락함, 건강, 명랑, 쾌활함과 낙천적이며 흥미를 끄는 피상적인 농담으로 사람들을 유혹한다면 큰 교회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며, “그러나 그 영광 속에서 그리스도는 보이지 않을 것이며, 그리스도인의 삶은 갈보리 길처럼 보이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존 파이퍼 목사는 이어, “세상이 교회로부터 필요한 것은 십자가를 팔아 나의 영화를 누리는 값싼 복음이 아니라, 외롭고 고독한 십자가의 길을 걸으면서도 꺾이지 않는 기쁨”이라고 했다. 

 

2,000년 교회 역사 가운데 복음을 왜곡하고 방해하는 가장 큰 문제는 이단도, 세상도 아니다. 그것은 바로 번영신학이다. 오늘날 교회에서 외치는 십자가는 내게 성공을 가져다주는 도깨비방망이가 되었다. 언제부턴가 복음은 나의 삶을 윤택하게 해 주는 부적이 되었고, 신앙생활은 주님을 따르는 삶이 아니라, 이제는 “7, 8월에는 물가에 가지 말라” 등의 어디서 들은 듯한 종교적 법칙이 되어버렸다. 언제부턴가 교회는 예수 믿으면 잘 된다고 가르쳤다. 예수 믿으면 건강해지고, 예수 믿으면 풍요로워진다고 가르쳤다. 가난한 곳에는 하나님이 안 계시고, 심지어 작은 교회에는 성령님의 역사가 없다고 가르쳤다. 복음이 곧 성장이 되었고, 십자가가 곧 성장이 되었다. 교회의 선포되는 말씀 어느 곳에서도 고난 받는 그리스도인은 없다. 어느 곳에서도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사역하는 성령의 운행하심은 없다. 모든 것이 나의 만족에, 나의 성공에, 세상의 박수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우리 그리스도인이 세상에 보여줘야 할 것은, 잘 되고, 잘 살고, 잘 풀리는 모습이 아니다. 고난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뜻은 꺾이지 않는다는 것, 슬픔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품은 마음은 낙심치 않는다는 것, 아무리 세상이 변하여도 진리는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이 땅에서 실패의 상징이다. 그 십자가는 성공이 아니다. 그러나 그분의 실패가 하나님의 성공을 불렀다. 이 땅에서 그리스도인은 실패하도록 부름 받은 존재다. 실패할까 봐 두려워 떠는 이 세상, 그래서 실패를 무기 삼아 사람들을 조정하려 드는 이 땅에서, 실패를 자임하고 나서는 미련한 사람으로 하나님은 우리를 부르셨다. 내가 죽어야 하나님이 살리시는 능력이 드러나고, 내가 실패해야 하나님이 성공케 하는 역사가 드러남을 믿는 자들로 우리를 부르신 것이다.

 

남을 위해 죽는 것이 성공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자신의 몸을 주셨다. 빵은 부서져야 먹을 수 있다. 빵은 씹혀야 먹을 수 있다. 먹는 이에게는 배부름이지만 빵에게는 살이 뜯기고 상하는 일이다. 나의 살을 파서 남에게 주는 일이다. 예수님은 그렇게 하셨다. 

 

세상의 논리는 약육강식이다. 먹고 먹히는 것이 힘의 논리다. 그러기에 누구도 먹히려 하지 않는다. 누구도 남을 배부르게 하려고 나를 기꺼이 주는 일은 하지 않는다. 남보다 배부르게 먹는 것을 우리는 성공이라 부르지 않는가! 남보다 높은 자리에 가는 것을 우리는 성공이라 부르지 않는가! 그러나 예수님은 남을 위해 죽는 것이 성공이라 부르고 계시지 않는가!
십자가는 모든 이에게 내어주는 빵이다. 누구나 먹고 배부르게 하는 나의 살이다. 그 십자가 정신을 놓치면 우리는 약육강식의 세상 논리와 전혀 다르지 않게 살아가게 된다. 예수님의 미래가 십자가였듯이, 교회의 미래도 십자가여야 한다. 자신을 내어주어 남을 배부르게 하는 십자가 말이다.  빵은 먹을 수 없으면 버려진다. 교회가 모든 이들의 먹을 것이 되지 못하면 버려진다. 빵은 먹혀서 사라진다. 먹혀서 사라지면 살이 되지만, 먹히지 않고 남아있으면 부패 덩어리가 되어버린다. 교회 또한 사회 속에서 녹아 사라져야 한다. 교회가 생명에 녹아 사라져 그 생명의 살이 되지 못하면 교회는 부패한 채 버려질지도 모른다. 교회는 이름을 내는 곳이 아니다. 교회는 유명세로 자라나는 세상적 기관도 아니다. 교회는 보이지 않는 곳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빵이 누군가를 건강하게 세워주듯이 교회도 사회 공동체 속에서 녹아내려 지역과, 사회를 건강하게 만드는 기관이 되어야 한다. 교회는 교회의 이름으로 사역하는 곳이 아니라 누군가를 건강하게 하는 동력으로 존재할 뿐이다.

 

교회는 오늘날 이 세상의 빵이 되어 주어야 한다. 교회는 세상과 반목하는 존재가 아니다. 오히려 세상에 자신을 내어주어 세상을 살찌게 하는 존재여야 한다. 세상이 교회의 생각을 먹고, 교회의 말을 먹고, 교회의 마음을 먹고, 교회의 미래를 먹게 해야 한다. 교회는, 먹히며 점점 작아지고 조용히 사라져야 한다. 그것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유일한 방법이다. 십자가처럼... 그것이 축복이고, 그것이 권세이며 밀알이 되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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