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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하는말씀/에스라서묵상

[에스라묵상08] 내 속에는 내가 아닌 내가 나인척 하며 나를 조종하려 한다.(스4:1~6)



1.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예루살렘에 성전을 재건하기 위해 모인 이스라엘 백성에게 어려움이 닥칩니다.
그 어려움의 시작은 그 당시 사마리아에 살던 이들로부터였습니다.
본래 사마리아는 북이스라엘의 수도였습니다.
북이스라엘은 아시리아에 의해 멸망했는데 호전적인 민족성의 아시리아는 잔인한 민족말살정복정책을 폈습니다.
그러니까 민족교환(혼혈)정책을 사용하며 민족의 개념을 없애버렸던 것입니다.
따라서 이스라엘의 10지파로 구성되어 있던 북이스라엘은 멸망과 함께 민족들도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오늘 본문의 사마리아 사람들은 이스라엘 민족과는 관계가 없는 사람들입니다.
민족 이주 정책에 의해 다른 곳에서 온 사람들이거나 적어도 혼혈로 인해 민족성을 잃어버린 사람들입니다.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의 사마리아인에 대한 저주에 가까운 반응은 이 때문입니다.
남유다가 바벨론에 의해 멸망하고, 70년 후 성전재건을 위해 돌아왔을 때 사마리아에 살고 있던 사람들은 거의 이스라엘과는관계가 없거나 혹은 혼혈로 인해 민족성을 잃어버린 사람들입니다.

2.
그들이 오늘 이스라엘에게 성전 재건을 위한 참여를 제안합니다.
그들은 자신들도 이 땅에 오면서 하나님을 섬기고 있노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거짓입니다.
그들은 그 땅에서 자신의 방법과 습관, 그리고 종교적인 생활을 해왔습니다.
성경에서 유대인과 이방인을 비교하며 기록하고 있는 이유는 단순한 민족 개념이 아닙니다.
모든 것은 혼용하고 서로 융화하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창조주 하나님에 관한한 결코 타협할 수 없는 존재로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을 택하여 사용하고 계십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유일신 사상을 통해 창조주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를 정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에 비해 이방민족들은 자신의 편의에 따라 영적 가치관을 바꾸어 버립니다.
이 땅에 오면 이런 신, 저 땅에 가면 저런 신, 이런 상황에선 이런 가치관, 저런 상황에선 저런 가치관을 갖듯 말입니다.

3. 우리에게도 이 땅에서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가면서 이런 문제에 부딪칩니다.
영적인 세계관을 갖지 못할 때 우리는 상황에 따라 영적 가치관이 변해 버립니다.
마치 산에 가면 산신령, 물에 가면 물신을 쫓듯이 살아갑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오로지 자신이 그 땅에서 살아가야할 기득권 유지의 도구일 뿐입니다.
70년 만에 돌아온 이스라엘백성들 앞에 나서는 이유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오직 자신들의 기득권이 침해당하지 않을까를 두려워한 결과입니다.
 
4. 우리의 옛사람은 언제나 자신의 기득권과 자기 중심의 가치관을 갖도록 우리에게 요구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옛사람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못박은 사람입니다.
옛사람은 이제 내가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사명과 그 나라와 의를 품고 걸어가는 우리 앞에 옛 것은 다 지나가고 새 사람만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사명의 기치를 올라면 올릴 수록 옛사람은 집요하게 우리 주변을 맴돕니다.
영적인 싸움은 바로 이 옛사람과의 싸움입니다.
이 옛사람은 마치 나 인것처럼, 나를 제일 잘 아는 것처럼, 나를 위하는 것처럼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그러나 옛사람은 이제 결코 내가 아닙니다.
절연히 잘라 버려야 합니다.
내 속에 진정한 내가 아닌 옛사람이, 마치 나 인것처럼 다가와 나를 조롱하고 조종하려 하는 것을 묵과하지 마십시오.
그는 결코 내가 아닙니다.
그는 결코 나를 위하지 않습니다.
그는 결코 나를 위해 일하지 않습니다.
무너진 나의 성전을 재건하는 일에 옛사람의 방해를 이겨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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