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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하는말씀/로마서묵상

로마서묵상36] "세상이 나를 속일지라도, 그래도 나는 사랑하는 걸로..." (롬13:8~14)

"세상이 나를 속일지라도, 그래도 나는 사랑하는 걸로..." (롬13:8~14)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에 주신 지역을 사랑하고, 지역을 변화시키는 프로젝트로 진행하고 있는, 균등과 균형의 비영리교육기관 다림교육에서는 다림멘토링이라는 사역을 하고 있다. 이 사역은 한 재능기부자가 그 재능이 필요한 이들과 멘토와 멘티가 되어서 시너지를 이루는 사역이다. 재능을 기부하고, 헌신함으로 자신의 가치를 발견하는 일과 또 도움을 받으므로 성장하는, 멘토와 멘티가 서로가 윈윈하는 전략이 이 사역에 담겨있다. 다림멘토링에는 2가지 중심된 사역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교육적부모사역]이라고 부르는 교육돌봄사역이다. 교육적부모는 부모님이 안 계시거나 한부모 가정, 혹은 조부모 가정에서 나타나는, 가정에서 받아야할 자녀들의 필수적인 교육지원이 없어서 공교육에 적응하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교육적인 부모가 되어주는 사역이다.

 

요즘 초등학교 공교육에서는 ‘ㄱ ㄴ ㄷ ㄹ’ ‘가 갸 거 겨’를 가르쳐주지 않는다. 이미 유치원에서, 가정에서 한글을 다 익히고 들어오기 때문이다. 교육적 열기가 남다른 우리 부모들이 다 교육을 한다. 그러나 ‘설마’하겠지만 그런 교육을 일체 받지 못하는 이들이 아직도 있다. 유치원은커녕 부모와 마주앉을 기회도 못 얻는 이들이 있다. 이 현상은 아이러니하게도 시골보다 도시에 더욱 뚜렷하다. 그들이 학교에 가면 너무도 자연스럽게 학교교육과 멀어진다. 친구에게는 왕따를 당하게 되고, 흥미를 잃은 학교보다는 다른 데 시선을 돌린다. 그렇게 희망을 잃은 골목의 청소년이 만들어진다. 이 불행의 시작은 고작 초등학교 1, 2학년 때 이미 시작되어 버린다. 그런 아이들에게 부모들이 해줘야할 교육적 역할을 대신하는 이들이 필요했다. 그들이 바로 교육적 부모다.

 

이 사역을 위해서 여러 교육적부모 자원자들이 참여 신청을 했다. 한 교회 청년부는 교육적부모되기 멘토단을 만들어 참여할 준비를 하고 있다. 지역 어머니들은 자신의 집을 열어놓겠다고 약속했다. 내 자녀만이 행복할 수 없고, 내 자녀와 교제하는 친구들도 행복해야 진정으로 내 자녀가 행복할 수 있음을 깨달은 부모들이 돕기를 나섰다. 그러나 이 사역을 다림이 준비하고 진행하지만 처음부터 우리의 계획이나 아이디어는 아니었다. 이 사역을 시작하게 된 동기는 한 어머니의 요청에서부터였다. 다림에서 공부하는 어린이의 어머니인 이분은 우리에게 찾아와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 아니 학교 짝꿍이 벌써 초등학교 3학년인데 한글과 구구단을 몰라요. 다림에서 도와주실 수 없나요?” 우리 다림은 교육기관 맞다. 그것도 무료교육기관이고, 교육이 필요한 이들을 위해 일하는 기관 맞다. 그러나 우린 한글이나 구구단을 가르치지는 않는다. 영어면 몰라도... 그리고 다림에서 수업을 받는 학생보다 수업을 받겠다고 대기하고 있는 학생이 더 많은 현실이다. 이는 우리의 인적, 공간적 한계가 많다는 이야기다. 이런 상황에서 그 요청을 들어드릴 수가 없었다. 우리의 한계를 말씀드렸지만 그 어머니는 쉽게 포기하지 않으셨다. 그 열정으로 보아 그 아이를 보면서 가슴이 아프신 것이 틀림없었다. 그리곤 어머니 스스로 결론을 내렸다. “제가라도 그 아이를 봐주면 안 될까요?” 이 사역은 그렇게 해서 시작되었다.

 

언제나 작은 사랑이 큰 물결을 만든다. 언제나 하찮은 일이 놀라운 일을 만든다. 다림멘토링의 두 번째 중심된 사역의 시작은 더 기가 막히다. 우리 스스로 [세대간의 대화]라고 부른 이 사역은 한 고등학생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어느 외국인고등학교에 다니는 고등학생 하나가 다림에서 봉사를 하고 싶다고 찾아왔다. 일찍이 약간의 외국생활로 영어를 구사하고 현재 외국인고등학교를 다니기에 영어학습 봉사를 꿈꾸고 온 것이다. 우리 다림은 영어교육기관 맞다. 그런데 고등학생 영어교사는 잘 어울리지 않았다. 다림의 영어선생님들은 쟁쟁하다. 다림교육이 무료교육기관에다가 자원봉사교사라고 허술할 거라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데 천만에 말씀이다. 처음 그렇게 생각했던 부모님들 지금은 다림에 아이들을 넣지 못해서 후회한다는 말도 들을 만큼 훌륭하시다. 미국 유명대학에서 영어교육을 공부한데다 미국교사자격증이 있는 분이 담당실장이다. 자원봉사 선생님들도 영어전문교사 자격증과 함께 오랫동안 한국 유명 영어학원에서 가르친 경험이 있는 분들이시다. 그런데 아무리 영어에 능통해도 고등학생이???

 

그 학생은 봉사하려는 친구들이 여러 명이라고 말해주었고, 그들을 소개해 주었다. 한마디로 훌륭한 학생들이었다. 한 가지만 빼고. 그들은 가난이라는 말을 몰랐다. 홀륭한 인격과 소양을 가졌지만 동시대를 살아가는 이들 가운데는 뼈저리게 가난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지만 이해까지는 힘든 아이들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강남 한복판에서 학력격차와 계층적 차별 때문에 속으로 앓고 있는 다림의 교육대상자들과는 안 어울리는 학생들이었다. 시간도 없을 그들에게, 공부하기도 바쁠 그들에게 힘들겠다고 말했지만 그들의 의지를 꺾을 수 없었다. “목사님, 우리가 받은 은혜를 작게라도 나누고 싶어요.” 그렇게 [세대간의 대화]가 시작되었다. 일주일에 한 번, 금요일 저녁에는 다림에서 초, 중, 고등학생들의 한바탕 씨름이 벌어진다. 고등학생이 초등생 영어를 가르치고, 중등생 수학을 가르친다. 되지 않을 것 같던 모임이 이루어진다. 오지 않을 것 같던 초, 중등생들이 - 이들은 과외는 고사하고 학원에도 한번 가보지 못했던 이들이다. - 점점 늘어난다. 어울리지 않을 것 같던 이들이 한 세대로 서로 부대끼며 공부하는 모습은 마치 균등과 균형이 이루어지는 다림의 꿈꾸는 모습과도 같다.

 

작은 사랑이 큰 불을 일으킨다. 작은 소망이 큰 꿈을 이룬다. 우리의 인생에는 여러 문제가 있다. 여러 괴로움과 아픔이 있고, 고민해야할 문제가 산적해 있다. 마음과 같지 않게 세상은 우리를 속이고 괴롭힌다. 좋은 마음으로 시작한 일이 결국 다른 마음 때문에 좌절하고, 좋은 뜻으로 출발한 사역이 결국 다른 문제로 주저앉는다. 첫 사랑이 이렇게 식는다. 첫 은혜가 이렇게 변한다. 첫 율법이 이렇게 의미를 잃는다. 오직 그 율법을 완성하는 비결은 사랑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닥치고 사랑이다. 세상이 나를 속일지라도 나는 사랑을 한다. 속이고, 아프고, 염려되는 것에 나의 관심을 빼앗기지 않고 오직 나는 사랑이다. 죄는 과녁을 빗나가는 것이다. 아무리 염려하고, 애쓰고, 걱정을 해도, 사랑이라는 과녁을 빗나가면 거기에는 죄 밖에 안 남는다. 그리스도인은 어떤 다른 문제도 내 안의 사랑보다 크지 않음을 선언하는 사람들이다. 하나님이 사랑이시기에 나에게 주어지는 어떤 도전도 하나님보다 크지 않음을 선언하는 것이다.

 

다림멘토링에 문제가 생겼다. 매주 열심히 봉사하는 고등학생들의 마음에 문제가 생겼다. 점점 참여하는 중학생들이 늘어나 이제 통제가 잘 되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공부도 잘 따라와 주지 않고, 말도 잘 듣지를 않는다. 그래서 헌신한 고등학생들이 힘들어하고 있다. 때로는 우리는 열심히 하는데, 봉사하는데, 헌신하는데 받는 이들은 따라와 주기는커녕 오히려 우리를 힐난하고 비난하고 욕한다. 헌신하는 자들에게는, 최선을 다해 도와주었지만 오히려 배신을 당하고, 귀한 것을 주었지만 오히려 빼앗아갔다는 누명을 쓴다. 자신을 주었지만 사람들은 오히려 십자가에 못 박고, 사랑을 주었지만 사람들은 오히려 하나님 곁을 떠난다. 그들을 위해 복음의 비밀을 전하지만 사람들은 오히려 칼과 창으로 보답한다. 그런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예수님은 사람들의 반응과는 상관없이 사람들을 사랑하는 걸로 결정하셨다. 예수님은 사람들의 보답과는 상관없이 사람들을 용서하는 걸로 결정하셨다. 아무리 떠들어도, 무슨 일을 얼마나 열심히 하여도, 정말 위대하고 놀라운 일을 하여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다. 그냥 우리는 오늘 세상이 우리를 속일지라도, 그래도 사랑하는 걸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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