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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하는말씀/성경인물에서배우는영적원리

헌신이란 단지 받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결단을 끌어내는 것입니다.

헌신이란 단지 받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결단을 끌어내는 것입니다. - 뵈뵈


로마서16:1~2

1    겐그레아 교회의 일꾼이요 우리의 자매인 뵈뵈를 여러분에게 추천합니다. 

2    여러분은 성도의 합당한 예절로 주님 안에서 그를 영접하고, 그가 여러분에게 어떤 도움을 원하든지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그는 많은 사람을 도와주었고, 나도 그에게 신세를 많이 졌습니다. 






1. 

뵈뵈라는 인물은 이방여인으로 겐그레아교회의 교인이었습니다.

겐그레아(Cenchrea)는 고린도에서 남동쪽으로 10Km정도 떨어진, 샤로니코스만(Saronic Gulf)을 끼고 있는 그리스도의 항구도시입니다.


2.

겐그레아는 바울이 머리를 깎은 곳으로도 알려진 곳입니다.

행18:18,

“바울은 여러 날을 더 머무른 뒤에, 신도들과 작별하고, 배를 타고 시리아로 떠났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그와 동행하였다. 그런데 바울은 서원한 것이 있어서, 겐그레아에서 머리를 깎았다.”


3.

저는 바울이 어떤 서원을 했는지, 왜 머리를 깎았는지 잘 알지 못합니다.

서원이라는 것이 지극히 개인적인 것으로, 하나님과 나 사이에 형성하는 일종의 은밀한 대화와도 같은 것이어서 그것에 대한 궁금증은 접기로 합니다.

머리를 깎는 의미도 저마다 결단의 방법이 다르고, 신분의 전통, 특별히 바울과 같은 나실인에게 내려오는 머리에 대한 전통은 일반적인 것이 아니기에 이 또한 바울만의 독특한 결단 방식으로 이해합니다.  

다만 왜 그가 겐그레아에서 머리를 깎았는가는 저의 관심을 끕니다.

우리 주위에는 나의 마음을 사고, 마음의 결단을 이끌어내는 객체, 즉 분위기, 장소, 사람, 환경, 때가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4.

저는 지난 주간 중국을 다녀왔습니다.

그곳의 교육기관과 연계된 프로그램이 있어서 세미나 인도차 갔습니다.

이곳은 특별한 마음을 가지고 모인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진 학교입니다.

특별한 교육철학과 가치관, 그리고 세계관을 교육하는 것을 기치로 세워진 학교입니다.

학교에 대한 소개는 이쯤 하는 것으로 합니다.

다만 저는 그곳에서 많은 눈물을 흘리고 왔습니다.


5.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자신의 시간과 열정을 드려 먼 이국에서, 한 가지 목적을 가지고 이곳 학생들을 가르치겠다고 온 선생님들을 볼 때 눈물이 났습니다.

그 정도 스펙에, 그 정도 능력이라면 돈 많이 벌 수 있는 직업을 선택할 수 이도 있는 이들이, 자신의 기득권을 다 내려놓고 그 자리에 모였다는 사실이 한없이 감사하고, 또한 부러웠습니다.


6.

제 눈으로 보기에는 어린, 청소년 나이의 학생들이, 공부하는 이유에 대해 잠시의 머뭇거림도 없이 “남 주기 위해 공부한다”고 대답하는 것을 보며 눈물이 났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자신을 드렸듯이 그 은혜를 입은 우리들도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이 세상을 위해 삶을 드리겠다는 이 어린 젊은이들이 저의 마음을 흔들었습니다. 

자신의 미래를 위해, 자신의 부와 명예를 위해 머리 터지게 싸우는 경쟁의 교육풍토에서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을 서슴없이 꿈꾸는 학생들이 대견하고, 든든했습니다. 


7.

특별히 이곳이 중국 땅이어서 눈물이 났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기에 참 척박한 땅에서, 아무런 제약도, 어려움도 없이 자유로이 말씀보고, 기도하고, 듣고 배울 수 있는 이 곳 한국 땅보다 더 그리스도의 복음을 부여잡은 이들이 있다는 것이 감동이었습니다.

 

8.

이곳을 다녀온 이후 저는, “내가 참 많이 교만하고 부르조아였구나”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어느 때는 환경 때문에 불평하고, 어느 때는 상황 때문에 절망도 했습니다.

어느 때는 사람 때문에 실망하고, 어느 때는 예배공간의 부족으로 투덜거렸습니다.

처음 개척할 당시 작은 3평 공간으로 날아갈 듯 기뻐하던 마음은 어느새 사라져 버린지 오래였습니다.

그 사람이 내편이던 아니던 한 사람이 함께 한다는 것이 세상을 얻은 것처럼 행복했던 시절은 먼 옛날이 된지 오래였습니다.

제게 새로운 결단이 필요함을 느꼈습니다.

첫사랑의 회복이 필요함을 느꼈습니다.


9.

바울은 2차 전도여행을 통해 고린도지역의 전도에 힘을 쏟았습니다.

문화와 철학이 융성했던 지역인데다, 항구도시로 여러 가지 도덕적, 영적인 문제들을 안고 있는 지역의 전도는 힘겨웠을 것입니다.

고린도서를 보면 알 듯 교회가 세워진 이후에도 온갖 문제가 다 발행하는 지역이 고린도지역이니 그가 그곳에서 사역할 때 얼마나 힘들었을지는 짐작하고도 남습니다.

겐그레아는 그런 바울이 전도여행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만난 지역입니다.

거기서 바울은 새로운 결단을 합니다. 


10.

이방의 지역, 신전도 많고, 바다의 신 포세이돈의 아들 이름을 빌러 겐그레아라는 지명이 된 것을 보면 분명 고린도만큼 전도하기 힘든 곳일텐데요.

그곳에서 새로운 결단을 했습니다.

그곳에서 처음 마음을 회복했습니다. 

어떻게 그런 사건이 벌어졌을까요?


11.

혹시 그 척박한 땅에서 외로이 헌신한 이들을 보았기 때문은 아닐까요?

누구도 박수쳐 주지 않았지만 자신의 사명을 다하는 이들을 보았기 때문은 아닐까요?

세상의 관습과 방향, 당연함이 판치는 세상에서,

전혀 다른 가치관, 전혀 다른 세계관으로 사는 사람들을 만났기 때문은 아닐까요?


12.

헌신은 나의 몸을 불사르는 것만이 아닙니다.

자신의 모든 정열과 열정을 불태우고도 그것이 쓰임받는 헌신이 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도둑은 도둑질에 헌신하고, 큰 문을 걷는 많은 이들은 세상의 가치에 헌신하며 삽니다.


13.

헌신은 그것을 보는 다른 사람들의 결단을 이끌어내는 것입니다.

나만 불타고, 나만 바쁘고, 나만 좋은 것은 헌신이 아닙니다.

나는 교회 잘 다니는데 가족들에게는 어떤 결단도 이끌어내지 못한다면 그것은 주님께 자신을 드린 헌신이 아닙니다.

주위를 결단으로 이끄는 헌신이 옳은 헌신입니다.


14.

저는 그리스도인입니다.

간절한 기도는 나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가 생각나고, 나를 통해 결단을 부르는, 영적 감동이 있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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