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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하는말씀/미가서묵상

미가서묵상일기 03 - 여러분 생각의 끝은 어디입니까?

미가서1:3~4   주님께서 그 거처에서 나오시어 땅의 높은 곳을 짓밟으시니, 뭇 산이 그 발 밑에서 녹고 평지가 갈라진다. 불 앞의 밀초처럼 녹아내리고, 비탈길로 쏟아져 내리는 급류 같구나.


좋은 아침입니다. 날이 찹니다. 건강에 유의하시고 늘 평안과 기쁨으로 주위를 채우는 우리 공동체 가족 되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미가서가 쓰인 목적에 대해 선지자 미가는 서두에 밝힌 바 있죠. 주님을 떠난 이스라엘을 향해 하나님이 행하시는 심판에 관한 내용이 그것이죠. 그리고 오늘 그 첫 일성으로 하나님이 등장하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당신의 거처에서 나오신다 함은 마치 하늘의 보좌를 버리시고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떠올리게 합니다. 그것만으로도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생각하시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죠. 우리가 무엇이관데 하나님이 친히 움직이시겠습니까?

 

그리고 하나님께서 짓밟으시는 것, 곧 땅의 높은 곳은 무엇일까요? 아마도 본문은 당시 이스라엘에 만연한 우상 숭배를 뜻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들이 가장 신뢰하고 믿는 것이죠. 그곳에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들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이를 보면 그때나 지금이나 별반 다를 것이 없어 보입니다. 우리의 우선순위가 때론 하나님이 아닐 때가 많기 때문이죠. 가장 신뢰하고, 가장 믿는 분이 하나님이 아닌 경우를 보게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먼저 무너뜨리는 것이 바로 이 지점이라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에게 주신 계명 가운데 첫 번째가 바로, '내 앞에서 다른 신들을 섬기지 못한다.'였습니다. 우리의 머리 꼭대기, 우리가 가장 높게 생각하는 것, 우리가 가장 많이 떠올리고 말하고 가까이 두는 것이 바로 우리의 '높은 곳'이죠. 나에게 그것은 무엇일까요?

 

어제도 말씀드렸죠? 나의 혼잣말, 내가 늘 달고 사는 말, 내 생각을 지배하고 있는 것, 그것이 내가 믿고 신뢰하는 '높은 곳'이라면 어떨까요? 수많은 생각 속에서의 결론, 결국 마지막에 서 있는 것, 내 생각의 끝에 무엇이 있습니까? 혹시 절망이나 낙담은 아닙니까? 결국 '다 안 된다'는 아닙니까? '희망이 없고 선함도 없다' 아닌가요? 

 

우상숭배는 비단 어떤 신을 놓고 절하는 것만이 아닙니다. 내 생각의 끝에 주님이 계시지 않으면 우리는 절망이라는 신을 믿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열심히 기도해 놓고 마지막에 '이게 무슨 소용인가?' 하면 그것은 기도가 아니라 화풀이죠. 두려움만큼 큰 우상은 없습니다. 절망만큼 만연한 우상도 없어요. 이는 늘 부정적이고 나쁜 생각으로 우리를 이끌죠.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 생각의 끝은 어디입니까? 아프고 쓰리고 깨진 마음 뒤에 무엇이 존재합니까? 여러분의 그 가장 높은 자리에는 누가 있습니까? 늘 입에 달고 생각을 지배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오늘 주님은 우리에게 그것을 깨뜨리기 원하시는지도 모릅니다. 주님의 생각과 다른 방향성, 주님이 뜻하시지 않는 결론에 도달한 생각들을 버리고, 하나님의 나라, 정의와 공평이 강물처럼 흐르는 그곳을 바라볼 줄 아는 자가 되길 원하시는지도 몰라요.

 

실수하고 넘어질 수 있습니다. 매일 승리의 삶을 살 수 없죠. 그러나 결국 가장 높은 곳에 하나님이 계신 자는 일어섭니다. 생각의 끝에 주님을 둔 자들은 반전의 기적을 만듭니다. 주님께 깃발을 꽂은 자는 반드시 이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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