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서6:46~49 어찌하여 너희는 나더러 '주님, 주님!' 하면서도, 내가 말하는 것은 행하지 않느냐? 내게 와서 내 말을 듣고 그대로 행하는 사람이 어떤 사람과 같은지를 너희에게 보여 주겠다. 그는 땅을 깊이 파고, 반석 위에다 기초를 놓고 집을 짓는 사람과 같다. 홍수가 나서 물살이 그 집에 들이쳐도, 그 집은 흔들리지도 않는다. 잘 지은 집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 말을 듣고서도 그대로 행하지 않는 사람은, 기초 없이 맨 흙 위에다가 집을 지은 사람과 같다. 물살이 그 집에 들이치니, 그 집은 곧 무너져 버렸고, 그 집의 무너짐이 엄청났다."
오늘은 [좋은 눈을 가지세요.]라는 제목으로 우리 공동체에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오늘도 주님의 말씀 앞에 겸손히 마음을 열고 내게 주시는 은혜를 경험하는 시간 되시길 빕니다.
우리는 매일 아침, 누가복음서를 묵상하고 있습니다. 지난 주간은 누가복음 6장을 나눴죠. 6장은 예수님의 주옥같은 말씀들이 펼쳐지는데요. 사실 누가복음 6장은 소위 산상수훈이라고 일컬어지는 마태복음의 말씀과 평행본문을 이루고 있죠. 마치 산상수훈의 핵심만을 골라서 기록해 놓은 것 같습니다. 산상수훈의 미니멀 버전이라고 할까요? 변형된 팔복의 말씀과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 그리고 좋은 나무에서 좋은 열매가 맺는다는 말씀이죠.
복음서는 예수님의 생애를 다루고 있는 기록들이죠. 그런데 신약성경은 4개의 복음서를 담고 있어요. 마태, 마가, 누가, 요한을 각각의 저자로 한 복음서가 그것입니다. 이를 통상 공관복음이라고 부르죠. 공관이라는 한자를 풀이하면 ‘함께 본다'는 뜻입니다. 풀어서 말하면 여러 사람이 서로 다른 각도에서 함께 본다는 의미가 있죠. 그래서 복음서는 서로 같은 듯 다른 느낌을 줍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여러 사람의 시선으로 보는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는 우리에게 다양한 각도에서 하나님의 섭리를 바라보도록 하신 주님의 뜻이 있음을 믿습니다.
그중에서 제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누가의 글 쓰는 스타일입니다. 묵상을 매일 잘 따라온 분들은 느끼셨겠지만 '누가'는 예수님의 말씀을 이분법적 논리로 구성하고 있음을 볼 수 있어요. 복이 있는 사람과 화를 입는 사람, 미워하고 저주하는 사람과 사랑하고 축복하는 사람, 끼리끼리 사랑하는 사람과 모든 이들을 사랑하는 사람, 좋은 나무와 나쁜 나무 등 극명한 차이를 두며 주님의 말씀을 설명하고자 하는 그의 의도를 읽을 수 있죠.
사실 저는 이분법적 사고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모든 상황을 ‘맞다’ ‘아니다'로만 구분할 수 없기 때문이죠. 다양한 이유가 있고 다양한 입장이 존재하는 복잡한 사회와 생각 속에서 어찌 선택의 기준을 두 가지로만 나눌 수 있겠습니까? 그렇게 이분법적 사고는 다양성보다는 획일화에 기초하고 있기에 저는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 편인데요. 그런데 이런 이분법적 구조가 필요한 때가 있습니다. 당시 새로운 가르침으로 인식된 예수님의 말씀을 짧은 시간, 짧은 언어로 전달하기 위해서는 이분법적인 구조가 반드시 필요했을 것으로 여겨지죠. 뿐만 아니라 이미 굳어진 이론, 사회적 통념이 견고하게 버티고 있는 유대 사회에서는 극명한 대비를 통해 강하게 말씀을 선포하는 것이 필요했을지 모릅니다. 그런 의미에서 '누가'는 의사라서 그런지 모르겠는데, 매우 자연과학적 접근방식을 택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죠.
지난 한 주간, 매일 묵상을 통해서 여러분은 어떤 메시지를 들으셨나요? 여러분에게 말씀이 삶에 어떻게 다가왔는지 무척 궁금합니다. 믿기는 당시 유대 사회처럼 나만의 생각으로 견고한 진을 치고 있는 우리들의 마음에 양자택일의 이분법적 메시지가 우리 마음을 좋은 결단으로 인도하였기를 기도합니다.
오늘은 우리가, 왜 예수께서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시는지, 특별히 누가를 통해 이분법적인 구조로 강요하듯 왜 이리 강하게 말씀하셨는지, 그 이유를 만나야 합니다. 왜 마음을 가난하게 해야 하는지, 왜 굳이 원수를 사랑해야 하는지, 왜 남을 축복하고 나의 것을 거저 주어야 하는지를 오늘 본문에서 설명해 주고 있기 때문이죠. 그래서 오늘 본문은 6장에서 주님이 쏟아내신 말씀의 결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누가복음서6:46 어찌하여 너희는 나더러 '주님, 주님!' 하면서도, 내가 말하는 것은 행하지 않느냐?
뭐 그리 특별할 것 없는 본문이죠? 별 해석도 필요 없습니다. 내용은 ‘너희들이 나를 주님, 그러니까 내 삶의 주인이요 가르침을 받아야 할 선생님이라고 말하면서도 왜 내가 말하는 대로 행하지 않느냐?’하는 질책의 말씀이죠. 그런데 저는 이 부분이 좀 이상합니다. 일단 시기적으로 의문이 들죠. 지금 우리는 누가복음 6장을 읽고 있습니다. 누가복음서가 24장으로 이루어진 것을 생각하면 이제 시작에 불과하죠. 6장 서두에는 12명의 제자를 택하시는 장면도 등장합니다. 그러니까 이제 공생애를 막 시작하셨다는 뜻이죠. 만약 그렇다면 오늘 본문이 좀 이상하죠. 이제 막 시작한 공생애, 이제 막 제자들을 세우고 말씀을 가르치시기 시작했는데 ‘너희들은 왜 내가 말하는 대로 행하지 않느냐?’고 다그치시는 장면은 뭔가 너무 급하다는 느낌입니다.
물론 복음서의 기록 순서가 꼭 시간의 순서는 아닙니다. 각 복음서마다 사건의 배열이 다른 것을 보면 더욱 그렇죠. 그래서 오늘 본문을 대할 때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으로 보아, 예수께서 가르치시기 시작한 것이 꽤 시간이 흘렀다는 것이죠. 어쩌면 예수님의 공생애 막바지에 다다른 시간일지도 모르겠어요. 많은 말씀을 하시고 많은 가르침이 이루어진 이후, 어쩌면 이제는 믿을 때도 되었고, 이제는 행동할 때, 삶에 적용할 때도 된 그때 이 말씀을 하고 계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이 본문을 대해야 합니다. 마치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처럼 말이죠. 이제는 믿을 때도 되었는데, 이제는 알만할 때도 되었는데, 이제는 행동할 때도 되었는데 아직도 여전히 아무것도 하지 않는 우리를 향해서 말이죠. 이제는 결단할 때라고 말이죠.
그러시면서 아주 단도직입적으로 이렇게 말씀합니다.
누가복음서6:47 내게 와서 내 말을 듣고 그대로 행하는 사람이 어떤 사람과 같은지를 너희에게 보여 주겠다.
다시 말해 지금까지 한 말들, 원수를 사랑하고, 내가 대접 받고자 하는대로 남을 대접하고, 비판하지 말고 오히려 축복하며, 좋은 씨앗을 뿌려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알려주신다고 하죠.
자 ! 이제부터 왜 우리가 주님의 말씀대로 살아야 하는지 들어보겠습니다. 본문 그래도 다시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누가복음서6:48 그는 땅을 깊이 파고, 반석 위에다 기초를 놓고 집을 짓는 사람과 같다. 홍수가 나서 물살이 그 집에 들이쳐도, 그 집은 흔들리지도 않는다. 잘 지은 집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그’는 주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사람을 뜻하죠. 그런 사람은 반석 위에 집을 짓는 사람과 같다고 합니다. 당연히 잘 지은 집이기에 홍수나 비바람에도 흔들리지 않겠죠. 반면 '누가'는 지금까지처럼 이분법적 구조로 기록을 이어갑니다.
누가복음서6:49 그러나 내 말을 듣고서도 그대로 행하지 않는 사람은, 기초 없이 맨 흙 위에다가 집을 지은 사람과 같다. 물살이 그 집에 들이치니, 그 집은 곧 무너져 버렸고, 그 집의 무너짐이 엄청났다."
그렇지 않은 사람은 모래 위에 지은 집처럼 허술해서 언제든 외부의 충격에 쉽게 무너지고 만다는 거죠.
반석 위에 지은 집은 잘 지은 집이고, 모래 위에 지은 집은 허술한 집이라는 지극히 당연한 말씀을 하시죠. 이는 너무나 상식적이어서 누구도 모래 위에 집을 짓고 싶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의 핵심은 ‘기초를 무엇으로 할 것인가’가 아닙니다. ‘주님의 말씀을 따르는 일이 어떤 결과를 내는가’가 포인트입니다. 주님의 말씀대로 사는 사람의 결과가 어떤지를 보여주시는 말씀이라는 거죠. 예수께서는 우리에게, 왜 좋은 마음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지, 좋은 생각을 해야 하는 이유, 남을 비판하지 않고 남을 낫게 여겨야 하는지를 우리에게 설명하고 계십니다. 바로 그것이 반석 위에 집을 짓는 것과 같기 때문이라고요. 우리가 그렇게 살지 못하면 그 집은 모래 위에 지은 집과 같이 조그만 외부 충격에도 흔들리고 누군가의 말에 쓰러지고 작은 문제에도 넘어진다고 말입니다.
여러분이 아셔야 할 것이 있어요. 예수 믿으면 다 됩니다. 이런 말 있죠. ‘예수로 충분하다’고요. 그런데 이 말이 무슨 뜻인지는 아시나요? 예수 믿는다는 것은 내 집을 반석 위에 짓는 것과 같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제가 좀 삐딱해서 그런지 이런 말을 들으면 이상한 생각이 앞서요. 그게 뭐냐면, ‘왜 반석 위에 집을 꼭 세워야 하지?’라는 질문입니다. 이상한 질문이죠? 집은 본래 반석에 세워야 흔들리지 않으니까요. 그런데 생각을 해 보세요. 왜 집이 쓰러집니까? 왜 꼭 반석에 세워야 해요? 모래 위든, 반석 위든, 예수님만 계시면 된다면서요? 왜 쓰러질 것을 걱정해야 합니까? 성냥개비로 탑을 쌓아 보신 분 계신가요? 아무런 문제가 없으면 거뜬하게 몇십 센티의 높이로 쌓을 수 있어요. 아무도 건드리지 않으면 쓰러지지 않죠. 굳이 기초를 다질 필요도 없죠. 우리는 예수 믿는다는 것을 오해합니다. 아무렇게나 살아도 예수 믿으면 그분이 오셔서 해결해 주실 것처럼 예수를 믿죠. 그런데 오늘 말씀은 다릅니다. 우리더러 반석 위에 집을 지으래요. 아니, 예수 믿는다는 것은, 내가 반석 위에 집을 짓는 것과 같대요. 왜 그래야 하는 줄 아세요? 그래야 우리가 단단해져서 외부의 충격을 이겨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나와 상관없이 오셔서 나를 지켜주시는 것이 아니라 예수가 내 안에 들어오셔서 반석이 되셔야 우리가 죽음을 이기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예수를 믿어야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 그 믿는다는 것이 바로 말씀처럼 사는 것이라고요. 진짜 예수 믿는다는 것은 내가 주님의 이름으로 강건해지는 거예요. 주님의 말씀으로 든든한 집을 짓는 것이죠. 그래서 공부해야 합니다. 국·영·수 공부가 아니라 마음을 든든하게 만드는 공부가 필요합니다.
예수 믿으면 저절로 문제가 해결되는 줄 아는 이들이 있어요. 내가 손대지 않아도 하나님이 다 해결해 주신다고 믿는 이들이 있습니다. 근데 그거 아세요? 하나님이 해결해 주시는 것 맞습니다. 그런데 그 해결책이 무엇인 줄 아세요?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서 반석 위에 지은 집처럼 내 마음과 영을 튼튼하게 하는 것입니다. 모든 문제를 이겨내는 것은 나와 상관없는 주님이 아니라 내 안에 말씀으로 오셔서 반석이 되신 주님, 결국 성육신된 나를 통해 가능하다고요. 그래서 나를 만들어야 한다고요. 매일 좋은 생각을 해야 하고 내 기분을 좋게 만들어야 한다고요. 남들을 비판하는 것보다 축복하는 것에 익숙해져야 한다고요. 수많은 단점보다 한 가지 장점을 응원하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임을 알아야 하고요. 무언가를 바라고 사람을 대하기보다 그 사람을 만나서 행복한 것을 찾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요.
최근에 드라마 하나를 보았습니다. 조립식 가족이라는 드라마에요. 그 중의 한 장면을 제가 가져 왔어요. 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그러지 못한 분들을 위해 상황을 조금 설명드릴께요. 홀로 딸을 키우며 윤씨네 국수집을 운영하는 윤정재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집에 피 한방울 섞이지 않은 아이들이 들어오게 되는데요. 이들이 함께 하는 된 과정이 참 기구합니다. 그 중에 오늘 보실 장면은 해준이라는 남자 아이에요. 그 아이는 미혼모 엄마에게서 태어났습니다. 아이를 키우기 힘들었던 엄마는 이모에게 아들을 맡기고 멀리 떠났죠. 당시 아이를 키울 상황이 되지 못했던 이모는 결국 윤씨네 국수집에 아이를 맡길 수밖에 없었죠. 그래서 해준은 윤씨네서 자랍니다. 그렇게 10년을 자라는데 이모는 늘 미안한 마음을 가졌던 것 같아요. 왜 안 그러겠어요. 친 아들도 아닌데 친 아들처럼 키워주는 윤씨네에 늘 부담을 느끼고 있었던 거죠. 그리고 해준이 생일날 윤씨네를 찾아온 장면부터 동영상은 시작됩니다. 다음 이야기는 보시고 말씀 나누죠.
[동영상] 25:53이후부터입니다.
https://youtu.be/x0z2h3nqQq4?si=Uo-h_JM3Vb0-2r3b
저는 이 부분이 가슴에 와 닿았어요.
‘먹이고 입히고 재우고 다 내 행복이지 애네 행복이야? 나 좋자고 하는 일에 왜 해준이가 눈치를 봐야 해? 애들 덕분에 내가 제대로 사는 데 내가 감사해야지 왜 애들이 감사해야 해’
이 영상에는 감사를 가지고 두 인격이 대비되죠. 하나는 그 감사를 내 것으로 만드는 사람이고 다른 하나는 감사 때문에 전전긍긍 하는 사람이죠. 저는 둘다 감사의 마음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것은 그것이 마음이 튼튼한 사람의 감사와 마음이 연약한 사람의 감사일뿐이에요. 왜 안 힘들겠어요. 육아가 왜 안 힘들겠어요. 그런데 그 힘든 일을 내 행복으로 만드는 것이 건강한 거죠. 누군가를 가족으로 받아들이는 일이 왜 안 힘들겠어요. 나 혼자 사는 것이 편하죠. 그런데 그렇게 남을 내 가족으로 받아들이면서 그 속에서 행복을 찾는 것이 그것이 튼튼한 일이라고요. 그것이 반석 위에 지은 집이라고요. 맨날 문제만 있으면 쓸려가고 넘어지고 부서져 또 모래 위에 집을 지으면 어떡합니까? 그러면서도 반석 위에 지을 생각보다 날씨 탓, 상황 탓, 문제 탓, 이웃 탓만 하고 있으면 어디 그게 그리스도인의 믿음이겠어요?
사랑하는 우리 공동체 가족 여러분,
우리의 마음을 반석 위에 짓기 위해 딱 한 가지만 하세요. 누가복음서 6장을 통해 우리에게 주신 주님의 말씀은 이 하나로 통합니다. 바로 좋은 눈을 갖는 거예요. 좋은 것을 보세요. 사람이든, 사물이든, 상황이든, 어려운 문제든, 그 속에서 좋은 것을 보세요. 장점을 보세요. 우리는 단점을 보는데 익숙하죠. 신기하게도 잘못된 것들이 먼저 보입니다. 그래서 수고가 필요해요. 공부가 어디 척척 됩니까? 책을 읽으면 뭐 단번에 외워져요? 그렇지 않으니까 우리가 계속 하잖아요? 그래서 우리도 매일 조금씩 묵상을 해 나가는 겁니다. 어떤 분들은 똑같은 말 계속한다고 묵상을 안 하시더라고요. 그러면 운동은 어떻게 합니까? 똑같은 것 계속 반복하는 건데요. 그렇게 나의 체질을 만들듯이 나의 생각도 운동을 통해 단련되는 거죠. 매일 묵상의 댓글을 보면 일관된 것이 있어요. 이미 겸손한 분들이 자기가 겸손하지 않다고 고백하더라고요. 사랑이 많은 분들이 사랑 없다고 가슴을 쳐요. 이게 그렇습니다. 운동을 하는 사람이 더 운동을 하죠. 기도를 잘 하지 않는 사람에게 기도가 부족하다고 하면 어떻게 반응하는 줄 아세요? 화를 냅니다. 자기 기도한다고 말하죠. 그런데 늘 기도하는 이에게 기도가 부족하다고 말하면 그것을 인정해요. 더 열심히 기도하려고 하죠. 왜냐면 기도는 해도 해도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사랑이 주어도 주어도 부족한 것처럼 말이죠. 이게 신비입니다. 이게 마음이 튼튼하다는 증거고, 반석 위에 세워진 집 같은 거예요.
오늘, 여러분은 먼저 나에게서 좋은 점을 찾아내세요. 내가 잘 하는 것을 먼저 보세요. 내가 잘 될 것을 먼저 말하세요. 우리는 늘 부족한 것을 먼저 보려고 하죠. 그것을 깨세요. 그거 겸손 아니에요. 잘 될 것을 생각하고 잘 될 것을 말하세요. 그거 자랑 아닙니다. 나는 하나님의 자녀임을 늘 생각하세요. 그거 정신승리 아니에요. 반석 위에 집을 짓는 것입니다. 든든한 집을 짓는 일이에요. 그 집이 모든 문제를 이깁니다. 그 집이 죽음의 권세를 이겨요. 그것만 해보세요. 주님이 보증하신 말씀입니다. 잘 지은 집에 주님의 은혜가 머뭅니다. 우리 공동체 가족들은 모두 반석 위에 집을 세우는 축복의 사람되시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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