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9:1~2 내가 자유인이 아닙니까? 내가 사도가 아닙니까? 내가 우리 주 예수를 뵙지 못하였습니까? 여러분은 주님 안에서 내가 일해서 얻은 열매가 아닙니까? 다른 사람들에게는 내가 사도가 아닐지 몰라도, 여러분에게는 사도입니다. 여러분은 주님 안에서 나의 사도직을 보증하는 표입니다.
바울은 9장에 들어서 자신이 받는 오해에 대해 항변하는 듯 보입니다. 1절, 한 절에서 그의 처지를 다 읽을 수 있는데요. 그는 아마도 몇몇 그리스도인들로부터 율법주의자라는 비난을 받았던 모양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유대인 중의 유대인으로 율법에 관한 한 전문가적 학자였기 때문이고, 이로 인해 그리스도교 초기, 교회를 이단시하며 박해했던 전략이 있기 때문이죠. 뿐만 아니라 사도로서의 권위에 대해서도 도전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죠. 그는 제자 출신이 아니었지 않습니까? 그래서 그의 사도직에 관한 논쟁은 계속 있어왔던 것 같아요. 더 중요한 문제는 바울이 예수님을 만난 적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제자도 아니었지만 실제 예수님을 뵌 적이 없죠. 이 때문에 어떤 이들은 바울의 위상을 폄훼하기도 했습니다.
바울은 참 억울했을 것 같아요. 자신의 배경이 되었던 유대교에서도 배신자 취급을 받고, 초대교회 일부 관계자들에게서는 진심을 의심받는 처지에 놓였을 때 뭐라 할 말이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우리도 그런 경우 있죠? 이전의 잘못된 모습에서 돌이키고 회개하고 새롭게 살려고 마음을 먹었는데 옛 모습만을 바라보는 이들의 차가운 시선을 대할 때는 억울을 넘어 화가 나기도 합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벗어날 수 없는 과거가 발목을 잡고, 나의 노력과 새 출발을 더럽힐 때는 차라리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들 때도 있죠. 예전의 내 모습만 알고 있는 사람들의 오해는 그렇다고 쳐요. 현재 새로운 마음으로, 전심을 다해 헌신하는 일에 온갖 오해와 의심의 눈초리는 견디기 힘들죠. 살아갈 명분과 힘을 잃게 만드는 문제로 다가오기도 합니다.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오늘 본문에서 바울의 울분이 느껴집니다. 억울함도 묻어 나오고, 한탄도 섞여 있는 듯하죠. 심지어 '너희는 그러면 안돼!'라고 하소연하는 듯 보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런 자신의 감정 토로의 이면에서 바울의 귀중한 태도 하나를 발견합니다. 그것은 그 억울함, 속상함, 안타까움과 한탄 속에서도 자신만이 볼 수 있는 열매가 있었다는 점이에요. 많은 사람들이 의심하고 무시하는, 심지어 조롱하는 자신의 사역 속에서 그는 헛되지 않은 것들, 작은 열매들을 보고 있다는 것이 그를 멈추게 하지 않는 동력이자 힘이었다는 사실을 발견합니다.
오늘은 제103주년 3.1절입니다. 일제 강점기가 한창이던 그때, 사람들은 태극기를 손에 들고 독립을 염원했죠. 치밀하지도, 조직적이지도 않은 만세 운동에 사람들은 마치 마음이 서로 통하듯 이심전심으로 나와 하나같이 독립을 외쳤다는 사실이 세계사에 기록될만한 역사적 일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건이 일어나고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런 대단한 자발적 독립선언 사건이 있은 이후 어떤 일이 벌어졌습니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일제 강점은 더욱 악랄해졌고, 오히려 박해는 더 심해졌습니다. 이후로 강점은 굳건히 지속되었죠. 목 터져라 외쳤던 독립만세는 사그라지고 압제와 핍박으로 오히려 숨소리조차 낼 수 없는 지경에 빠졌습니다. 차라리 3.1 운동이 없었다면 그렇게까지 거칠고 강한 압박이 없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끔 할 만큼 그 사건 이후, 모든 것이 달라졌습니다. 안 좋은 쪽으로 말이죠.
그래서 그 만세운동은 의미가 없었을까요? 그래서 그 사건은 가치 없는 역사였을까요? 만약 3.1 운동의 자발적 독립의지가 드러나지 않았더라면 대한민국의 독립은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 국민적 열망을 확인하지 않았다면 목숨을 건 독립투사들이 나타나지 않았을지도 몰라요. 엄혹한 시절을 지내면서도 숨겨진 열매를 보는 이들에 의해 역사는 만들어지고, 미래는 바뀝니다. 사람들은 쓸모없다고 버린 돌이지만 그 돌 위에 멋진 건축물을 꿈꾸고 생각할 수 있는 건축자들에 의해 그 돌은 모퉁이돌이 되기도 하죠.
나의 오늘의 수고는 헛되지 않습니다. 내가 심은 씨는 버려지지 않습니다. 비록 지금 당장은 없는 듯해도, 비록 지금 내 눈에는 보이지 않아도, 뿌린 씨는 헛되지 않습니다. 누구의 평가로 없어지지도, 어떤 권력의 억압으로 사라지지도 않습니다. 나의 선한 의도는 반드시 꽃을 피웁니다. 하나님이 열매를 거두시고, 하나님이 가꾸시기 때문이죠. 그러니 포기하지 마세요. 억울함에 낙담해서 내 수고를 헛되이 하지 마세요. 분노에 폭발해서 내 애쓴 일들을 스스로 망치지 마세요. 99의 안 되는 일보다 1의 되는 일을 바라보세요. 수많은 가시보다 작은 열매, 작은 꽃망울에 물을 주세요. 하늘은 스스로 찾는 자를 돕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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