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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하는말씀/고린도전서묵상

고린도전서 36 - 내 삶의 질을 높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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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7:32~35   나는 여러분이 염려 없이 살기를 바랍니다. 결혼하지 않은 남자는, 어떻게 하면 주님을 기쁘게 해 드릴 수 있을까 하고, 주님의 일에 마음을 씁니다. 그러나 결혼한 남자는, 어떻게 하면 자기 아내를 기쁘게 할 수 있을까 하고, 세상 일에 마음을 쓰게 되므로, 마음이 나뉘어 있습니다. 결혼하지 않은 여자나 처녀는, 몸과 영을 거룩하게 하려고 주님의 일에 마음을 쓰지만, 결혼한 여자는, 어떻게 하면 남편을 기쁘게 할 수 있을까 하고, 세상 일에 마음을 씁니다. 내가 이 말을 하는 것은 여러분을 유익하게 하려고 그러는 것이지, 여러분에게 올가미를 씌우려고 그러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여러분이 품위 있게 살면서, 마음에 헛갈림이 없이, 오직 주님만을 섬기게 하려는 것입니다.


바울의 비혼 주의 주장의 또 다른 이유가 등장합니다. 그것은 보다 주님을 잘 섬기기 위함이라고 주장하죠. 일단 오늘 본문에서 오해할만한 부분들을 바로잡고 넘어가겠습니다. 바울은 결혼한 사람들이 남편 혹은 아내를 기쁘게 하려는 마음에 몰입하여 주님의 일에 소홀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에 대해 해석을 잘해야 합니다. 더욱이 그것을 '세상 일'이라고 못 박은 것에 대해서도 주의가 필요하죠. 이 구절만 발췌해서 읽으면 마치 결혼생활이 거룩하지 않은, 하나님의 일과는 상관없는 일처럼 들릴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문맥을 보면 바울은 결혼생활을 비하할 목적으로 이 글을 쓰지 않았음을 상기시켜야 합니다. 그가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우리에게는 많은 염려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말하기 위함임을 알아야 합니다. 단지 그 염려들의 일단으로 결혼생활을 예로 든 것뿐이죠.

 

이게 무슨 말인고 하니, 결혼을 하면 가정을 이끌고 지키는 일에 심혈을 기울여야 하죠. 이런저런 걱정거리들과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있습니다. 이로 인해 염려와 걱정들이 많아질 수밖에 없죠. 이렇게 신경 쓸 일들이 많아지면서 자연스레 주님을 섬기고 복음을 전하는 일에 소홀해질 수 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는 바울이 고린도교회가 주님의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하는 입장임을 강조하기 위한 것일 뿐, 결혼 생활이 거룩하지 못하다거나 쓸데없는 걱정거리를 가져오는 문제의 근원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알아야 하죠.

 

가끔 결혼을 하지 않거나, 못하거나 하는 일들을 부끄럽게 여기는 이들이 있습니다. 결혼을 하지 않는 것이 마치 어딘가 모자라서 그런 듯 여기는 이들도 있습니다. 명절 때 가장 듣기 싫은 소리 중 하나가 '결혼은 언제 하냐?'라는 사실은 이미 잘 알려져 있죠. 이런 생각 또한 결혼이 우리에게 문제를 가져다준다는 생각만큼 쓸데없고 불필요한 생각입니다. 결혼은 무슨 법칙도 아니고 규율도 아닙니다. 결혼을 해서 인생의 완성도 아니지만 결혼을 안 한다고 나은 인생을 사는 것도 아니죠. 그저 결혼은 선택일 뿐입니다. 다만 누군가를 위해, 무엇인가 인생에 내가 해야 할 일들이 있다는 것, 그것이 중요합니다. 내 가정을 사랑하는 것이 이웃을 사랑하는 것만큼 중요하고, 내가 선택한 사람이 하나님이 주신 사랑이기에 그분을 사랑하는 것과 같은 일이라는 사실도 기억해야 합니다. 결혼을 하지 않고 주님을 섬기는 일이나 결혼을 해서 가정을 섬기는 일이나 모두 하나님의 일이라는 사실에는 변화가 없음을 알아야 하죠. 문제는 내가 결혼을 하느냐 마느냐가 아니라 내가 섬기고 힘쓸 일이 내 인생에서 없다는 것이죠. 그러니 결혼을 가지고 마치 낙오자처럼, 인생의 빈자리처럼 여기는 마음은 버리세요. 결혼을 해서 가정을 지키고 가족에게 헌신하는 것처럼 멋진 일도 없고, 결혼을 하지 않고 자기 직업이나 재능에 헌신하며 인류에 기여하는 일처럼 또한 멋진 일도 없습니다. 

 

다시 본문으로 돌아옵니다. 그렇게 결혼에 대한 여러 입장을 말했지만 정작 바울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하나입니다. 결혼이 어떻고, 세상 일이 어떻고, 많은 이야기를 늘어놓아도 바울이 바라는 삶은 딱 한 가지죠. 바로 염려 없는 삶입니다. 오늘 본문 서두에도, 그리고 마지막에도 그 말을 합니다.

 

'나는 여러분이 염려 없이 살기를 바랍니다.'(32절)

'오히려 여러분이 품위 있게 살면서, 마음에 헛갈림이 없이..'(35절)

 

어쩌면 하고자 하는 말, 바라는 것은 이것이었을지도 몰라요. 그렇다면 이런 말이 될지도 모르겠네요. 결혼생활을 하면서 온갖 염려와 걱정으로 살지 말라는 말, 인생을 살면서 염려와 걱정으로 사는 것은 인간의 품위를 떨어뜨리는 말이라고 말이죠. 제가 목디스크가 있는데 최근 심해져서 병원엘 갔더니 의사 선생님이 그러시더라고요. 목디스크가 죽을병은 아닌데 삶의 질이 떨어져서 힘들다고 말이죠. 그러고 보니 정말 모든 것이 불편하더라고요. 불편하니 짜증도 나고, 생각도 나쁜 쪽으로 기울더라고요. 몸의 문제만 문제가 아니죠. 우리 안에 염려와 걱정들은 우리의 삶의 질을 떨어뜨립니다. 생각의 품위를 떨어뜨리죠. 그래서 온갖 짜증과 불만을 품게 만들고 모든 시선과 생각을 나쁜 방향으로 가게 만듭니다. 

 

우리가 매일 묵상하는 이유, 내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 인지도 몰라요. 내가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해야 하는 이유는, 남을 위해서도, 하나님을 위해서도 아닙니다. 바로 내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죠. 삶의 질을 떨어뜨리지 마세요.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지 마세요. 제가 목디스크 하나 고치려고 매일 꾸준히 운동을 합니다. 내 영적 삶의 질도 그런 운동이 필요합니다. 염려하지 말자? 그래서 염려가 떠나지 않아요. 오늘 화내지 말아야지? 한다고 화가 없어지지 않습니다. 목 안 쓴다고 목 디스크가 낫지 않는 것과 같아요. 운동을 해야 합니다. 주변 근육을 키워야죠. 마찬가지입니다. 좋은 생각을 해야 합니다. 웃어야 하고요. 좋게 생각해야 합니다. 사랑하라는 말씀은 내 삶의 질을 높이라는 말씀이에요. 결혼했든, 안 했든, 문제가 있든 없든, 아프든 안 아프든, 문제는 내 삶의 질을 어떻게 높이는가? 에 있습니다. 오늘도 내 삶의 질이 떨어지지 않게, 품위 있게 사세요. 내 삶의 질을 떨어지지 않으면 우리는 마음도 헛갈리지 않을 거예요. 결정도 잘할 것이고, 판단도 좋아질 겁니다. 마치 분별력이 있는 사람처럼 말이죠. 그렇게 내 삶의 질을 높이는데서 내 능력이 드러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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