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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하는말씀/고린도전서묵상

고린도전서 34 - 너무 인생을 깔끔하게 살려고 하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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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7:25~28 주님께서 처녀들에 대해서 하신 명령을, 나로서는 받은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나는 주님의 자비하심을 힘입어 믿을 만한 사람이 된 사람으로서, 의견을 제시합니다. 지금 닥쳐오는 재난 때문에, 사람이 현재 상태대로 살아가는 것이 좋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아내에게 매였으면, 그에게서 벗어나려고 하지 마십시오. 아내에게서 놓였으면, 아내를 얻으려고 하지 마십시오. 그러나 결혼한다고 할지라도, 죄를 짓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처녀가 결혼을 하더라도, 죄를 짓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들이 살림살이로 몸이 고달플 것이므로, 내가 아껴서 말해 주는 것입니다.


다시 바울은 결혼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를 드러냅니다. 여러 말을 했지만 결론은 결혼하지 않았다면 그냥 그대로 사는 것이 낫다고 강조하죠. 그래도 이 주장에는 자신이 없었던지 미리, 이 주장은 주님의 명령이 아니라 자신의 주장이라는 밑자락을 깔고 이야기하는 모습입니다.

이미 말씀드렸다시피 바울의 결혼관은 당시 바울이 처한 입장을 잘 고려해서 보아야 합니다. 결혼에 관한 자체의 부정적인 입장이라기보다 당시 신앙관에 대한 입장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 같아요. 그에게는 다시 오실 주님에 대한 소망이 있었는데요. 종말론이라고 하죠. 그 강한 바람으로 인해 새로운 결혼생활에 대한 권면을 할 수 없는 입장이었을지도 모릅니다. 머지않은 시간에 재림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죠. 오히려 종말적인 신앙관을 가지고 새로운 가정을 세우는 것에 대해 주장하는 일은 무책임한 행동이었을지도 모릅니다.

다른 한 편으로는 닥쳐올 어려움들을 예측했을지도 모르죠.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한 저항이 강하게 밀려올 것을 대비하는 측면입니다. 이 어려움은 이미 다가오고 있었을지도 몰라요. 개인적인 저항을 넘어서 국가적인 압박과 핍박이 거세지고 있는 것을 느꼈기 때문일지도 모르죠. 28절에 보면, '살림살이로 몸이 고달플 것'이라는 표현이 있는데요. 이 구절은 주로 결혼생활이 쉽지 않다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해석하죠. 저도 그렇게 해석해 왔고요. 그런데 미혼인 바울이 그것은 어떻게 알았을까요? 설령 결혼을 경험하고 아픔을 겪었다고 치더라도 자신의 아픔을 일반화하는 것도 옳지 않은 태도가 아닐까요? 게다가 결혼 생활이 아픔만 있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그런 생각에 이르니 이 구절은 그저 남녀 간의 문제와 갈등을 말하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생각해보면 남편으로, 그리고 가장으로 가장 두려운 것이 가족들이 상하거나 다치는 것이더라고요. 만약 신앙적인 문제로 어려움을 겪거나 극도의 핍박이 닥쳐오면 가장 견디기 힘든 일은 아마도 가족들이 희생을 당하는 것을 보는 일일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바울은 그 부분을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바울의 부정적 결혼관에 대해 너무 너그러운 해석일까요?

아무튼 저는 이 구절을 묵상하며 예전과는 조금 다른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조금은 억측이어도 이해해 주세요. 제게 주신 하나님의 생각이라 믿고 나눕니다. 오늘 바울을 통해 제게는 지금 있는 그대로 그냥 지내도 좋다는 말씀이 들렸습니다. 어제 이미 내 모습 그대로, 주어진 자리에서 꽃을 피우자고 말씀드렸죠. 이와 다르지 않은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적용해 오늘 어떻게 살아야 할까를 묵상하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제가 힘든 상황을 보면 그냥 지나가질 못해요. 누군가 힘든 리어카를 끌고 가면 그냥 못 지나가죠. 한 번은 운전하고 가는데 택시 기사분이 택시를 손으로 밀고 가시더라고요. 고장이 난 모양이더라고요. 저는 그것을 보고 차를 세웠습니다. 급하게 약속 장소에 가던 길이었는데 차를 세우고 목적지까지 그 택시를 같이 밀었어요. 이런 글이 제 자랑하는 것처럼 보이시나요? 혹시 이런 모습을 보고 '우리 목사님 착하다'이러실까요? 저도 제가 착해서 그런 줄 알았어요. 그런데 이런 저의 모습은 착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불안해서 그런 것이라는 사실을 나중에 알았습니다. 어떤 모임에 갔는데 서로 앉아서 아무 말이 없으면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저는 그게 너무 어색하고 불안해서 제가 말을 많이 해요. 일부러 말을 걸고, 웃고, 어떻게든 분위기를 좋게 하려고 애쓰죠. 이것도 괜찮게 보이시나요? 그렇다면 절 좋게 봐주시는 것에 대해 정말 감사드립니다. 그러나 저는 힘이 들어요. 눈치 보고 인위적으로 만들려고 애쓰는 것이 벅차고 어렵습니다. 관계의 즐거움보다 억지로 하는 사역처럼 느껴질 때가 많죠. 왜 그럴까요? 뭔가 내가 자꾸 만들려고 하기 때문이더라고요. 내가 뭘 해야 한다는 강박 때문에, 나로 인해 뭔가 좋은 것이 주어져야 한다는 책임감 때문이라고 할까요? 혹시 잘못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 때문에 그러고 있더라고요.

혹시 하나님이 일하실 시간을 드려본 적이 있으신가요? 어렵고 힘든 시간을 내가 바꾸려고 애쓰지 않고 그 시간 속에 하나님이 일하실 시간을 기대하고 기다려 보신 적 있으신가요? 조금만 어려워도 어떻게 할 줄 몰라 발을 동동 구르고, 이렇게 저렇게 방법을 찾고 조바심에 이성을 잃지는 않으신가요? 사실 아무 일도 아닌 것을 내가 더 큰 일로 만드는 경우가 허다하죠. 그냥 지나갈 일을 내 노파심이 긁어 부스럼 만드는 일도 많습니다.

불편한 시간도 그냥 지내보세요. 그 불편함 속에서도 평안을 찾아보세요. 촛불이 어둠 속에서 가치를 발휘하듯, 우리의 평안도 불편함 속에서 빛을 발하죠. 그러니 가끔 불편함을 즐기세요. 너무 인생을 깔끔하게 살려고 하지 마세요. 힘든 일도 겪고, 어려운 일도 겪지만 그것에 너무 가치를 부여하지 말고, 그냥 지나가게 내버려 두세요. 모두 다 깨끗하게 치르려고 하지 마시고요. 모두 다 완벽하게 하려고도 하지 마시고요. 모든 것을 다 이루려고 하지도 마시고요.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놓친 것은 놓친 것대로, 앞으로 이자가 붙어서 나에게 다가올 것에 기대하며 사시면 어떨까요?

어색한 침묵에도 평안을 즐길 줄 아는 우리였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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