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8:4~7 그런데 우상에게 바친 고기를 먹는 일을 두고 말하면, 우리가 알기로는, 세상에 우상이란 것은 아무것도 아니고, 오직 하나님 한 분 밖에는 신이 없습니다. 이른바 신이라는 것들이 하늘에든 땅에든 있다고 칩시다. 그러면 많은 신과 많은 주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아버지가 되시는 하나님 한 분이 계실 뿐입니다. 만물은 그분에게서 났고, 우리는 그분을 위하여 있습니다. 그리고 한 분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계십니다. 만물이 그분으로 말미암아 있고, 우리도 그분으로 말미암아 있습니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다 지식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사람들은 지금까지 우상을 섬기던 관습에 젖어 있어서, 그들이 먹는 고기가 우상의 것인 줄로 여기면서 먹습니다. 그들의 양심이 약하므로 더럽혀지는 것입니다.
우상에게 바친 음식을 먹어도 되느냐? 는 질문에 바울은 본격적으로 대답을 이어갑니다. 바울은 오직 신이 하나님 한 분이신 것을 말합니다. 사람들이 아무리 이 신, 저 신을 말해도 우리를 창조하신 신은 오직 하나님 밖에는 없다는 것을 상기시키죠.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많은 사람들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는 있어도 나를 낳아주신 아버지는 한 분뿐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하늘에 떠 있는 태양을 여러 이름으로 불러도 오직 그 존재는 하나뿐이죠.
최근 뉴스에서 본 이야기입니다. 음식점 가운데 원조라는 말들 들어보셨죠? 음식 주제로 유튜브를 진행하는 유튜버가 아마도 음식점 원조 찾는 콘텐츠를 한 모양입니다. 그중에 유명하다는 남산 돈가스집을 찾았데요. 남산에 올라가니 원조 타이틀을 단 돈가스집이 여럿 있더랍니다. 그중에는 줄을 서서 먹는 집이 있더래요. 원조라고 알려진 집이었죠. 그런데 조사를 해보니 그곳이 원조가 아니더랍니다. 본래 남산 돈가스라는 이름으로 시작하고 맛집으로 소문을 내기 시작한 집은 다른 집이더래요. 이유를 알아보니 본래 원조집이 장사가 잘되자 건물 주인이었던 사람이 내쫓고 간판과 상호까지 자신이 사용하면서 가로챘다는 거죠. 그래서 본래 원조집은 그곳에서 한 참 떨어진 다른 곳으로 옮겼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곳이 맛집인 줄 알고 간다는 거죠. 문제는 그런 사실을 밝힌 유튜버를 현 주인이 고소를 하면서 일어났어요. 그들은 끝까지 자신들이 원조이고 사실은 주인이었는데 이전에 시작한 이들을 고용해서 장사를 했다고 주장했다는 겁니다. 이미 프랜차이즈로 여러 가게를 각 지역에 오픈한 터라 그들은 명예훼손이라고 주장했다고 해요. 결국 재판까지 가게 된 이 사건은 유튜버의 승리로 끝났다고 하죠.
하나님을 논하는 자리에서 맛집 예를 든 것이 좀 그런가요?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원조 맛집의 맛을 아는 사람들은 이미 이런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거예요. 그래서 그들은 좀 멀고 허름한 원조집을 찾아 이미 옮겼다는 것이죠. 그러나 대부분은 소문만 듣고 원조 타이틀을 베낀 집에서 줄을 서는 기현상이 일어났다는 점입니다. 아는 사람은 원조를 알아보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소문에 따라 움직인다는 점이 닮았습니다. 많은 이들이 여기가 원조, 저기가 원조라고 외치지만 아무리 그래도 원조는 하나뿐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죠.
그런데 이것은 논쟁거리가 아닙니다. 우리가 아무리 어떤 주장을 해도 진실에는 변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내가 아무리 핏대를 올려 사실이라고 말해도 거짓이 사실되는 경우도 없고, 아무리 아무 말하지 않는다 해도 사실이 거짓되는 경우 또한 없기 때문이죠. 이것은 우리가 증명할 사안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의 특권은 어떤 증명이 아니라 진짜가 무엇인지를 아는 지혜에 있으니까요.
다만 오늘 본문에서 바울이 말하고자 하는 핵심적인 사실은 따로 있습니다. 7절을 주목해서 보아야 합니다. 바울은 하나님은 한 분밖에 없다는 사실을 말했어요. 그리고 음식에는 죄가 없다는 사실도 분명히 하죠. 우상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말이 그 말입니다. 다른 신이 존재하지 않는데 그 음식에 무슨 문제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그것을 믿고 먹는 사람이 있다는 겁니다. 아무 문제없는 것을 문제 있는 것으로 만드는 것이 우리 속에 있다는 거죠. [플라시보 효과]라고 하나요? 효과가 없는 약을 처방하면서 이것이 병에 효과가 있다는 신념을 가지면 실제로 병이 호전되는 효과를 말하죠. 반대로 [노시보 효과]라는 것도 있어요. 실제로는 무해하지만 유해하다고 믿고 먹으면 몸에 이상증세를 일으키는 효과입니다. 참 신기하죠? 우리에게는 이런 심리적이고 영적인 힘이 있습니다. 바울은 이것을 말하고 있죠. 음식에는 아무 문제가 없지만 자신이 음식에 의미를 부여하면 우리의 생각과 몸에 그 의미들이 나타난다는 겁니다.
우리가 좋은 생각을 유지해야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의 생각은 실제로 몸과 마음에 작용할 뿐만 아니라 나의 삶의 모든 것에서 현실로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내가 부여한 의미가 현실이 되고, 내가 믿는 바대로 현실이 작동해요. 그러니 늘 좋은 상상을 하고, 좋은 의미를 부여하세요. 즐겁고 감사한 일들을 꿈꾸고 원하는 바를 바라세요. 내가 아프다 아프다 하면 진짜로 아프고, 감사하다 감사하다 하면 감사한 일들이 몰려옵니다. 그렇게 나의 생각은 나뿐만 아니라 내 주위의 사람, 환경, 그리고 다가올 시간에 이르기까지 영향을 미칩니다.
기쁜 일을 하세요. 조금이라고 꺼림칙한 일은 하지 마세요. 마음이 불편한 일은 피하세요. 내가 싫은 일, 누군가 싫어할 일,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을 일처럼 조금이라도 생각되면 멈추시고 버리세요. 그런 일은 안 해도 됩니다. 할 일은 많아요. 내 마음이 편안하고 감사할 일, 기쁜 일만 하세요.
혹시 이런 분 계신가요? 누군가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며칠 전부터 있었던 분 말이죠. 내가 이 말을 꼭 해 주고 싶다고 벼르고 벼른 분 계신가요? 그런 분들은 지금 마음을 한번 들여다보시죠. 만약 이런 생각을 가지고 계시다면 그 말은 멈추고 버리세요. '내가 이런 말 해도 될까?' '이런다고 내가 시원할까?' '막장까지 가면 어쩌지?' 이런 식으로 가슴이 두근거리고 떨린다면 하지 마세요. 우리가 두근거려야 할 말은 좋아서, 기뻐서, 기대돼서 하는 말이어야 합니다. 내가 설레는 마음은 누군가를 기쁘게, 감사하게 만드는 말뿐이에요. 통쾌함에 설레지도, 완벽하게 무찌르는 것에 두근거리는 마음은 우리가 할 일이 아닙니다. 두려움, 찜찜함, 되갚아주고픈 마음으로 가슴을 부르르 떨게 만들지 마세요. 내 가슴은 오직 기쁨과 기대와 감사로 뛰게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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