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7:7~9 나는 모든 사람이 다 나와 같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각 사람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은사가 있어서, 이 사람은 이러하고 저 사람은 저러합니다. 결혼하지 않은 남자들과 과부들에게 말합니다. 나처럼 그냥 지내는 것이 그들에게 좋습니다. 그러나 절제할 수 없거든 결혼하십시오. 욕정에 불타는 것보다는 결혼하는 편이 낫습니다.
이미 말씀드린 바 있는데요. 말씀에는 시대적인 배경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배경 속에서 문자 그대로의 해석을 우리는 조심해야죠. 그래서 우리의 묵상, 우리의 해석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오늘 본문처럼 구체적인 상황에 대한 문제, 그러니까 결혼을 해야 하느냐 말아야 하느냐에 대한 문제에 대한 말씀은 더욱 신중해야 하죠. 아시다시피 바울은 결혼에 매우 부정적입니다. 오늘 본문에도 자신처럼 독신이 좋다고 말하기까지 하니까요.
문제는 바울이 왜 이런 말을 하는지에 대한 것입니다. 사실 바울의 삶을 연구하는 학자들 가운데는 바울의 독신에 관한 사항에 대해 논란적 입장을 취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유대인으로, 그리고 독실한 율법 연구가로 바울이 결혼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사실을 상상할 수 없다는 이들이 많습니다. 심지어 우리나라에서 바울 연구의 권위자로 알려진 김세윤 박사 같은 분은 바울이 결혼을 했다가 그리스도인이 된 이후 가족들로부터 버림을 받았을 것으로 추정하기도 하죠. 이런 아픈 역사 때문일까요? 바울의 결혼에 대한 입장은 유독 비관적입니다. 그렇다고 저는 그런 개인적 상처나 경험이 바울의 메시지에 담겼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새로운 해석이 필요하다는 입장이 저의 생각입니다.
새로운 해석이란, 바울이 왜 결혼보다 비혼을 더 선호하는가? 하는 점이죠. 특별히 그리스도인에게, 특별히 고린도 교회에서 헌신하고 주님의 신부가 되겠다고 공언하는 이들에게 비혼을 추천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하는 점을 살펴보아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왜 바울은 그들에게 비혼을 추천할까요? 결혼이라는 것이 필요 없어서일까요? 문제가 있는 제도여서요? 천만에요. 그의 비혼 주장은 그가 할 일이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아시다시피 바울은 수차례의 전도여행을 다니며 세계 선교에 힘썼죠. 가정이 있었다면 그 자리를 비워야 할 날들이 많았을 거예요. 게다가 그는 가정을 이끌 경제적인 능력도 없었겠죠. 하루 벌어 하루를 살거나 다른 이들의 헌금을 통해 그가 하는 일은 복음을 전하기 위해 돌아다니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니 어디 가정을 경제적으로 돌볼 수 있었겠습니까? 그럼에도 가정을 갖는다면 그것은 온전히 가족과 가정에 상처와 고생을 짐 지우는 일이었을지도 몰라요. 여기에 그가 비혼을 주장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자신이 할 일이 있고, 사명이 있다면, 그 사명에 집중하는 것이 좋다는 의미의 비혼 주장이죠. 결혼제도를 부정하는 의미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자! 그렇다면 우리는 오늘 어떤 묵상을 해야 할까요? 그리고 오늘 어떻게 적용하며 살아야 할까요? 우리에게는 해야 할 일들이 있습니다. 특별히 나에게 주어진 사명들이 있죠. 그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논의는 조금 미루겠습니다. 때론 가정적으로, 때론 사회적으로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일에서부터, 개인적이고 특별한 재능에 의한 사명에 이르기까지 할 일은 다양합니다. 그런데 그 일들이 방해를 받을 때가 있죠. 때론 감정적인 문제로 갈등할 때 우리는 해야 할 일들을 하지 못합니다. 아니 안 한다고 표현하는 것이 더 맞을지도 모르겠네요. 혹은 게으름 때문에, 혹은 이런 핑계 저런 핑계로 할 일들을 미루는 때도 있습니다. 분명히 받은 달란트와 꿈이 있는데, 이런 이유 저런 이유로 미루고 덮고 회피하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오늘도 당장 말씀을 묵상하고 싶은데 바쁘다는 핑계로, 하루쯤 건너뛴들 무슨 일이 있겠냐? 는 마음으로 흘러갈지도 모르죠. 핑계 없는 무덤 없다고 참 우리는 할 말이 많죠.
그런 우리들에게 바울이 이렇게 선포하는지도 모릅니다. 핑계는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많아진다고요. 이유는 찾으면 찾을수록 견고해지고, 거짓은 잡으면 잡을수록 더욱 확실해지는 법입니다. 그래서 단순해지라고 우리에게 말하고 있는지도 몰라요. 사명 앞에서는 단순해지라고요. 그러고 보니 이런 경우들이 허다하더라고요. '사랑해야지' 마음먹고 인사를 건네었는데 뾰로통하게 반응을 합니다. 그러면 사랑하고자 하는 마음은 온데간데없고 갑자기 상한 기분만 몰려오죠. 그리고 오히려 더 감정만 상합니다. 이리 보니 기분 나쁘고, 저리 보니 억울하고, 우리는 처음 가진 사랑의 사명은 사라지고, 분노만이 남는 경우들이 허다하죠.
단순해지세요. 사랑하고자 하면 사랑만 하고요.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이 있다면 그 일만 하세요. 수많은 이유와 변명과 핑계가 줄을 이어도 그냥 내가 할 사명에는 단순해지세요. 심지어 어떤 결과를 낳을지에 대한 걱정에도 단순해지세요. 하나님이 원하시고 주신 사명은 하나님께서 열매 맺는 법입니다. 우리는 그저 물만 주면 되고, 씨만 뿌리면 됩니다. 아주 단순하게 말이죠.
오늘도 많은 일들이 있겠죠? 그래도 우리는 단순해지자고요. 나는 그냥 오늘도 기뻐할 거고, 나는 그냥 오늘도 감사할 것이라고 말이죠. 그렇게 단순하게 오늘을 시작하고 마무리를 지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잘 지내고 싶으시죠? 행복하고 싶으시죠? 그러면 단순하게 그것만 생각하세요. 넘실거리는 검은 파도를 바라보지 마시고 그 위를 걸어오시는 예수님만 바라보자고요. 아주 단순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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