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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하는말씀/고린도전서묵상

고린도전서 29 - 사명에 따라 살아가는 모든 사람은 가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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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7:1~6   여러분이 적어 보낸 문제를 두고 말하겠습니다. 남자는 여자를 가까이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나 음행에 빠질 유혹 때문에, 남자는 저마다 자기 아내를 두고, 여자도 저마다 자기 남편을 두도록 하십시오. 남편은 아내에게 남편으로서의 의무를 다하고, 아내도 그와 같이 남편에게 아내로서의 의무를 다하도록 하십시오. 아내가 자기 몸을 마음대로 주장하지 못하고, 남편이 주장합니다. 마찬가지로, 남편도 자기 몸을 마음대로 주장하지 못하고, 아내가 주장합니다. 서로 물리치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기도에 전념하기 위하여 얼마 동안 떨어져 있기로 합의한 경우에는 예외입니다. 그러나 그 뒤에 다시 합하십시오. 여러분이 절제하는 힘이 없는 틈을 타서 사탄이 여러분을 유혹할까 염려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내가 이것을 말하는 것은 그렇게 해도 좋다는 뜻으로 말하는 것이지, 명령으로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늘 본문은 고린도 교회에 직면한 문제들을 구체적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오늘 다루는 주제는 결혼에 관한 문제죠. 그 내용을 다루기 전에 저는 이 본문을 통해서 우리가 묵상하는 방법과 주의점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매일 묵상하며 그분의 마음을 내 마음에 적용해 살아가기를 소망하고 있죠. 그런 마음으로 이 아침에도 말씀을 대합니다. 매일 누군가 말씀의 가이드를 해 준다면 좋겠지만 사실 묵상의 기본은 내가 말씀을 읽고 해석하고 또 적용하는 스스로의 훈련이 필요하죠. 그런 의미에서 말씀 묵상을 할 때 갖춰야 할 기본적인 훈련이 있습니다. 바로 배경입니다. 말 한마디 속에, 혹은 행동 하나 속에 숨겨진 문화적, 철학적 배경을 읽는 훈련이 필요하죠.

 

오래전 일입니다만 뉴스에서 이런 소식을 전해 들은 적이 있습니다. 미국에 이민을 하여 홀로 아이를 키우며 살았던 한 여성이 있었는데요. 타지에서 홀부모의 역할이 얼마나 어려웠겠습니까? 여러 형편이 되지 않아서 자녀를 홀로 집에 남겨두고 일을 나가야 했던 이 여성은 참변을 당했습니다. 집에 돌아와 보니 아이가 사망했던 거죠. 혼자 놀던 아이가 서랍장에 매달렸다가 그것이 넘어지면서 깔린 것입니다. 일단 이 여성에게 미성년 어린이 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기소가 되었다고 해요. 미국에서는 아이를 혼자 집에 방치할 수 없는 법이 있다고 하죠. 그런데 문제는, 그 여성에게 살인죄가 더해졌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이 여성의 말 때문이었다고 해요. 아이가 사망한 현장에서 아연실색한 이 엄마는 통곡을 하며 이렇게 외쳤다죠. "내가 죽인 거야! 내가 죽였다고!" 우리는 이 말이 어떤 의미인지 다 알 것입니다. 그런데 미국 경찰은 그것을 살인 자백으로 받아들였습니다. 문화의 차이에서 온 오류였던 것이죠. 법정에서도 이를 인정하여 그 엄마는 살인죄로 복역하게 되었다는 기사였습니다.

 

문화적인 차이, 언어의 뒷 배경에 따른 극명한 결과들이 있습니다. 성경을 연구하거나 공부하는 이유들 가운데 가장 핵심이 되는 것이 바로 그 배경을 해석하는 일이기도 하죠. 물론 우리의 묵상이 그렇게까지 깊은 연구의 결과물일 필요까지는 없을지도 모릅니다. 다만 우리와는 다른 시대적인, 그리고 문화적인 인식의 차이를 가져다주는 배경이 있음을 알고 묵상에 임하는 자세가 필요한 것은 사실이죠. 

 

그렇다면 오늘 본문을 통해 우리가 읽어야 할 배경이 무엇인지를 한번 찾아보죠. 일단 오늘 본문을 읽어보면 어떤 마음이 드시는지 생각해 보자고요. 결혼에 문제를 다루는 데 있어서 바울은 결론부터 말하고 시작합니다. 남자는 여자를 가까이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말이죠. 그러면서 마지못해 몇 자를 덧붙이죠. 성관계의 유혹을 뿌리칠 수 없다면 결혼을 하는 편이 낫다고 말입니다. 이런 글을 읽을 때 전체적으로 바울의 결혼관을 우리는 어떻게 읽을 수 있을까요? 소극적이죠? 게다가 바울은 결혼을 하지 않은 사람입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바울은 자신을 닮으라고 말하기도 하지 않습니까? 그런 의미로 본다면 바울은 결혼에 대해 부정적인 이미지를 풍기는 것으로 보이죠. 또 이 본문을 그렇게 해석하는 이들도 많습니다. 

 

그런데 다른 생각을 해 보자고요. 오늘 본문 첫 구절에 보면 이렇게 되어 있죠. "여러분이 적어 보낸 문제를 두고 말하겠습니다."라고요. 이것으로 보아 고린도 교회에서 바울에게 편지를 했던 모양입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문제들을 바울에게서 가르침을 받고자 했던 것이겠죠. 그러니까 바울은 지금 Q&A 중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질문을 받았던 것일까요? 대충 생각하면 "결혼을 꼭 해야 합니까?"라는 질문이었을 가능성이 있죠? 맞습니다. 그런데 왜 이 질문을 했을까요? 혈기 왕성한 20대 청년이 앞날을 생각하면서 '나 미혼으로 살아도 될까요?'라고 질문했을까요? 아니면 고린도 교회에 이런 소문이 돌았기 때문일까요?

 

"결혼은 미친 짓이야! 독신으로 살면서 필요하면 이 여자, 저 여자 만나면 되지 뭐"

 

저는 아마도 후자의 경우였지 않을까 싶습니다. 고린도 교회 내에서 문제가 되는 것을 집어서 바울에게 물었을 테니까요. 복음을 위해서 독신이 되겠습니다~라는 선언을 문제 삼지는 않았을지도 모르니까요. 이런 전제를 깔고 다시 바울의 답변을 생각해 보세요. 그렇다면 바울의 답변이 어떻게 들리시는지 생각해 보시죠. 여자를 가까이하지 않는 것이 좋다는 말이 결론일까요? 결혼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것이 맞는 것일까요? 

 

그래서 결혼은 해야 할까요? 하지 말아야 할까요?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오늘 본문에서 바울의 주장은 결혼 반대는 아닌 것 같아요. 그러니 독신이 바울의 주장이다라고 오해는 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렇다고 꼭 결혼을 하라는 것도 아닌 듯해요. 그러니 결혼을 안 했다고 해서 마치 죄인처럼 살 필요도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각자의 사명에 달려 있을 뿐입니다. 

 

유대인에게 결혼은 전통적으로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바울은 그 문화에서 살았죠. 그런데 그는 독신으로 살았습니다. 이유는 복음을 온전히 전하기 위해서라는 사실을 우리는 알죠. 그는 전 세계를 다니며 복음을 전했습니다.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위험한 상황에도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 사명을 다하기 위해 결혼을 미뤘을지도 모르죠. 그의 인생을 통해서 말해주는 것이 있습니다. 결혼을 하고 안 하고 가 인생의 가치를 만드는 것은 아니라고 말이죠. 결혼이 인생을 성공으로 이끈 종지부도 아니라고 말입니다. 한 생명을 위해 의무와 책임을 다하듯 이 땅에서 세상을 위해 의무와 책임을 다하는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것이 인생의 가장 소중한 가치라는 사실을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한 사람에게 의무와 책임을 다 할 줄 아는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그것이 한 사람과 결혼한 특권이죠. 이웃을 향해 의무와 책임을 다하는 그리스도인은 복음과 결혼한 사람이고, 세상을 향해 의무와 책임을 다하는 사람은 그리스도와 결혼한 사람입니다. 그 사명에 따라 살아가는 모든 사람은 가치 있습니다. 

Ho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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