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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하는말씀/누가복음서묵상일기

누가복음서묵상일기 21 - Why not me?

누가복음서 1:48b~50   이제부터는 모든 세대가 나를 행복하다 할 것입니다. 힘센 분이 나에게 큰 일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의 이름은 거룩하고, 그의 자비하심은, 그를 두려워하는 사람들에게 대대로 있을 것입니다.


좋은 아침입니다. 어제는 여름 같은 날씨더라고요. 날이 너무 좋아서 교회 창문을 활짝 열었습니다. 교회 화단에 꽃들도 만발해서 기분까지 좋아지더군요. 우리의 마음에도 꽃이 피는 한 주 되기를 기도하며 여러분을 응원합니다.

 

지난 금요일부터 마리아의 찬가를 묵상하고 있죠. 첫 부분부터 놀랍고 아름다운 고백을 들었는데 오늘 본문은 더 우리의 가슴을 때립니다. 아시다시피 마리아의 처지는 그리 녹녹지 않습니다. 그를 향한 예언은 이제 그의 인생이 쉽지 않은 소용돌이에 빨려 들어가는 것을 의미하죠. 그런데 그녀는 그런 주님의 계획을 찬양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한발 더 나아가 자신이 행복할 것이라고 말하죠. 그것도 '이제부터'라는 말을 덧붙이면서 말이죠.

 

아마 우리는 '이제부터 큰일 났다'했을지도 모릅니다. '이제부터' 어렵겠다 했을지도 모르죠. 그런데 그녀는 '이제부터' 행복할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더 기막힌 것은 그것이 스스로 자위하는 표현이 아니에요. 모든 세대가, 그러니까 다른 사람들이 나를 행복하다고 말한다는 겁니다. 한 마디로 다른 사람들이 나를 부러워한다는 거죠. 지금까지 우리는 어떤 걱정을 했습니까? 다른 사람들이 오해하고 의심하고 안 믿어 줄 것을 걱정하지 않았습니까? 지금 마리아에게 닥친 문제는 마리아 자신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문제였죠. 그들은 마리아를 비난할 것임이 자명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마리아는 반대로 말하고 있죠.

 

그런 말을 마리아가 무턱대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냥 아무 말 잔치를 하는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녀의 자신감에는 근거가 있는데요. 그것이 바로 뒷 구절에 따라 나옵니다. '힘센 분이 나에게 큰 일을 하셨기 때문'이라고 말이죠. 이게 그녀가 가진 자신감의 근거입니다. 

 

간혹 우리가 주님보다 더 똑똑할 때가 있습니다. 주님의 계획을 우리가 미리 결론지을 때가 있죠. 미래는 아무도 모릅니다. 어떤 일이 벌어질지 누구도 모르죠. 그런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무분별한 예측을 남발하죠. 그것도 아주 그럴싸한 부정적인 예측이 대부분입니다.

 

'이런 허무맹랑한 이야기가 어디 있나?' '이 사실이 알려지면 나는 돌을 맞게 될 거야!' '아무도, 심지어 가족들조차 나를 믿지 못할 거야' '차라리 도망가자'

 

우리가 예측한 결과들은 우리로 하여금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하게 하죠. 결과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시작조차 하지 않는 경우들이 허다합니다. 아무런 꿈을 꾸지 못하는 청년들의 이야기를 듣노라면 가슴이 아플 때가 많습니다. 대부분 해도 안 된다는 이야기가 주류를 이루기 때문이죠.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이미 우리의 인생은 결론이 나 버렸죠. 해도 안 되는 쪽으로 말이죠. 

 

그러나 믿음은 정반대로 흐릅니다. 아무도 알 수 없는 길이기에 더 가능성이 있고, 아직 가보지 않은 길이기에 더 값진 도전이 될 것이라고 말이죠. 새로운 길이기에 지금껏 경험하지 못한 은혜를 경험할 수도 있다고 말입니다. 마리아는 그것을 외치고 있는 것입니다. 누구나 다 안 된다고 말할 때 그래서 가능성이 더 열렸다고 말이죠. 세상은 그렇게 두드리는 자들에 의해 혁신과 변혁을 이루며 지금까지 발전해 왔습니다. 수많은 도전 위에 새로운 길이 열렸죠. 기적은 그 믿음의 도전에서 이루어집니다.

 

다들 안 될 것이라고 말하나요? 그래서 나도 안 되어야 합니까? 다들 실패했으니까 나도 실패해야 합니까? 다들 무서워 가지 않았으니 나도 가지 말아야 합니까? 그곳에는 기적이란 없습니다. 놀라운 주님의 도우심도 없고요. 힘센 주님의 역사하심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아브라함이 있기 전까지 아무도 믿음의 길을 가지 않았고, 모세가 있기 전까지 아무도 이집트를 탈출할 꿈을 꾸지 않았습니다. 왜요? 안 되었으니까요. 아브라함이나 모세보다 못나서가 아닙니다. 나를 통해 일하실 주님을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이나 모세도 그렇게 생각했다면 성경의 아브라함이나 모세는 없었을 겁니다. 모두가 비난할 것이라고 생각해서 지레 겁을 먹었다면 마리아도 없었겠죠.

 

Why not me? 

 

왜 나는 안 됩니까? 왜 나는 기적의 사람이 될 수 없습니까? 왜 나는 주님의 역사를 쓸 수 없나요? 왜 나는 새로운 길을 만들 수 없죠? 왜 나는 비난을 환호로, 손가락질을 부러움으로 바꿀 수 없습니까? 왜 나는 힘센 주님의 도우심을 받을 수 없나요? 왜?

 

당연히 나도 할 수 있습니다. 내가 창조주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시고 그분의 거룩과 자비가 나를 감싸면 나도 무엇이든지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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