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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하는말씀/누가복음서묵상일기

누가복음서묵상일기 25 - 남의 일을 내 일처럼 기뻐하면 그 일이 바로 나의 일이 됩니다.

누가복음서 1:57~58   엘리사벳은 해산할 달이 차서, 아들을 낳았다. 이웃 사람들과 친척들은, 주님께서 큰 자비를 그에게 베푸셨다는 말을 듣고서, 그와 함께 기뻐하였다.


좋은 아침입니다. 오늘도 복된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오늘 다시금 어제의 본문으로 묵상을 합니다. 어제는 '달이 찼다'라는 말씀을 가지고 묵상을 나눴죠. 오늘은 '함께 기뻐하였다'가 주제입니다. 우리들에게는 일정한 문화가 있죠. 가령, 아이를 낳으면 금줄이라고 하나요? 새끼를 꼬아서 대문에 걸어놓고는 했죠. 물론 미신적인 요소들이 다분하지만 대대로 전해진 풍속 같은 것이죠. 지금은 사라진 것 같아도 또 나름대로의 문화들이 알게 모르게 자리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나라마다 민족마다 각기 흐르는 문화가 다르죠.

 

이처럼 당시 유대의 문화 가운데는 좀 특별한 것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데요. 8일 만에 할례를 받는 것이나 아버지의 이름을 따라 이름을 짓는 일들이 그렇습니다. 이 부분은 오늘 본문 이후에 등장하죠. 그런데 사소하지만 눈에 띄는 특별한 것이 있는데 그것은 아이의 이름을 지을 때 이웃들이 함께 했다는 점입니다. 보통 우리는 자녀의 이름을 부모가 짓죠. 물론 유대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그 이름을 지을 때 이웃들과 함께 상의하거나 혹은 이웃이 이름을 지어줄 때가 있다는 것이 좀 특이합니다. 특별히 룻기에 보면 룻이 보아스와 결혼하고 아이를 낳았는데 이웃들이 그 아이의 이름을 지어주는 장면이 나옵니다. 아마도 그런 일들이 빈번했던 것으로 보이죠. 

 

이 부분은 이후 구절들을 묵상하면서 다시금 확인해 보겠습니다. 다만 제가 오늘 묵상의 주제로 삼은 것은 그렇게 이웃들이 내 일처럼 엘리사벳의 일을 생각했다는 점입니다. 유대인들에게 아름다운 문화가 여기 있죠. 함께 울고 함께 웃는 모습들이 유대인에게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이웃들이 기뻐하는 장면이 나오는데요. 그들은 엘리사벳의 가정에 주님의 큰 자비가 임하신 것을 보고 함께 기뻐했다고 했습니다. 조금 전에 제가 인용했던 룻기에도 그런 대목이 나오죠. 룻이 아이를 낳았는데 이웃들이 이렇게 외치죠.

 

룻기 4:14~15   "주님께 찬양을 드립니다. 주님께서는 오늘 이 집에 자손을 주셔서, 대가 끊어지지 않게 하셨습니다. 그의 이름이 이스라엘에서 늘 기리어지기를 바랍니다. 시어머니를 사랑하는 며느리, 아들 일곱보다도 더 나은 며느리가 아기를 낳아 주었으니, 그 아기가 그대에게 생기를 되찾아 줄 것이며, 늘그막에 그대를 돌보아 줄 것입니다."

 

이게 참 신기합니다. 내 일도 아닌데 내 일처럼 기뻐합니다. 내가 받은 복이 아닌데 내가 받은 것처럼 기뻐하죠. 내 자식 낳은 것도 아닌데 내 자식처럼 기뻐합니다. 이게 놀라운 축복의 비결입니다. 왜냐하면 남의 일을 내 일처럼 기뻐하면 그 일이 바로 나의 일이 되기 때문입니다. 남의 복을 내 복처럼 기뻐하면 그 복이 나의 것이 되기 때문이죠. 주님의 하신 일을 찬양하는 이유가 이것입니다. 우리의 찬양이 없어도 주님은 주님의 일을 하시죠. 우리가 주님을 높이지 않아도 주님은 스스로 높으신 분입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찬양하고 경배하는 이유는 바로 우리가 찬양하는 주님의 그 아름다운 일이 나의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높이는 주님의 능력이 곧 우리에게 베푸시는 능력이 되기 때문이죠.

 

오늘도 남의 기쁜 일에 나의 일처럼 기뻐하세요. 그러면 그 기뻐한 일이 나의 것이 됩니다. 남이 잘 되는 것을 내가 잘 된 것처럼 기뻐하세요. 그러면 그 잘 됨이 나의 것이 됩니다. 나도 잘 되죠. 남을 축복하면 그 축복이 내게로 돌아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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