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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하는말씀/누가복음서묵상일기

누가복음서묵상일기 27 - 내가 고통 속에 있을 때에도 주님은 일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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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서 1:64~66   그런데 그의 입이 곧 열리고 혀가 풀려서, 말을 하며 하나님을 찬양하였다. 이웃 사람들은 모두 두려워하였다. 이 모든 이야기는 유대 온 산골에 두루 퍼졌다. 이 말을 들은 사람들은 모두 이 사실을 그들의 마음에 두고 "이 아기가 대체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 하고 말하였다. 주님의 보살피는 손길이 그 아기와 함께 하시는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좋은 아침입니다. 요 며칠 흐린 날씨가 계속되네요. 그래도 기온은 점점 높아가는 듯합니다. 어제도 후텁지근하더라고요. 기온차가 심한 계절입니다. 외부의 환경이 널을 뛰고, 상황이 변죽 끓어도 우리의 마음은 늘 평안하기를, 그것이 믿음의 실력임을 기억하고 오늘을 살아내는 우리 되길 빕니다.

 

우리가 까맣게 잊고 있었던 사실이 있었네요. 그것은 사가랴가 말을 못 하는 처지에 빠진 일입니다. 벌써 아이가 태어났으니 거반 10개월을 말을 못 하는 처지로 지냈을 사가랴가 측은해 보입니다. 남 일이라 그리 체감은 되지 않지만 축복과 기도의 통로로 살아야 하는 제사장 사가랴의 입장에서는 죽을 맛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오늘 그의 입이 풀리죠. 이 말은 그가 말을 못 하게 된 이유와 또한 그 문제가 해결되는 과정을 명확히 보여준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기억을 떠올려 보죠. 그는 왜 벙어리가 되었을까요? 주의 천사를 만나 세례 요한의 탄생 예언을 들었던 사가랴는 그 말을 믿지 않았습니다. 마치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아들 이삭을 예언할 때 자신들의 나이를 생각하며 그 예언을 비웃었던 것처럼 사가랴는 주님의 예언을 자신의 상식적인 선에서 들었죠. 그때 주의 천사가 말하죠.

 

누가복음서 1:20   보아라, 그때가 되면 다 이루어질 내 말을 네가 믿지 않았으므로, 이 일이 이루어지는 날까지, 너는 벙어리가 되어서 말을 못 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그는 말을 못 하게 되고, 그리고 아이가 태어날 때까지 말을 못 하는 처지가 되어 버리죠. 

 

저는 여기서 조금 이상한 점을 느낍니다. 한번 생각해 보자고요. 지금껏 아이가 없었고, 이제 아이를 가질 나이를 넘어서 포기하기에 이른 사가랴에게 주님의 천사가 예언을 합니다. 아마도 그는 자신들에게 가능성이 있다고 여겼다면 그 말을 믿었겠죠? 그러나 하나님의 능력이 자신의 상식을 뛰어넘어 일하실 수 있음은 알지 못했습니다. 그런 일을 겪어 보지 못했기 때문이죠. 아무리 어려서부터 믿음에 대해 배웠어도 우리의 믿음은 늘 우리가 경험한 상식을 넘어서지 못하는 오류가 있습니다. 주님이 천사를 보내시는 이유, 이렇게 특별한 사건을 만드시는 이유는 다 그 믿음의 오류를 뛰어넘는 새로운 믿음을 세우시기 위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아무튼 그렇게 벙어리가 되었어요. 그런데 엘리사벳이 아이를 갖습니다. 그렇다면 사가랴는 그 주의 천사의 말을 믿었을까요? 안 믿었을까요? 당연히 이제 눈에 보이고 확증되었으니 믿지 않았겠습니까? 또한 자신의 부족한 믿음을 회개했을까요? 안 했을까요? 당연히 회개하지 않았겠어요? 자신의 생각이 틀렸음이 드러났으니까요. 그런데도 벙어리가 된 그 문제가 풀리지 않습니다. 저는 이 부분이 좀 이상해요. 주의 천사가 뱉어놓은 말 때문일까요? 아이가 태어날 때까지 벙어리로 살아야 할 기간을 정해놓은 때문일까요? 아니면 믿지 못한 불신의 벌 때문일까요? 그렇다면 회개해도 벌은 계속되는 것일까요?

 

사실 잘 모르겠습니다. 모르는 것이 당연하죠. 그게 다 주님의 마음이니까요. 그럼에도 저는 이 본문에서 하나님께서 저에게 주시는 메시지를 듣습니다. 그것은 이것입니다.

 

'우리가 고통 속에 있을 때에도 주님은 일하신다.'

 

사가랴가 벙어리로 있을 때에도 주님의 계획은 멈추지 않습니다. 그가 고통 속에 있을 때에도 주님이 하신 예언은 멈추지 않아요. 끝내 그 결과를 보게 되죠. 이는 고통의 결과가 늘 나쁜 것이 아님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어쩌면 인내가 연단을 만들고 연단이 정금을 만드는 것과도 같죠. 

 

어떤 의사분이 그러시더라고요. 고통은 우리가 살아 있다는 기쁨의 신호라고요. 아프다는 것은 '나를 조금만 도와줘, 그러면 내가 이길 수 있어!'라고 말하는 세포들의 소리라고 말이죠. 희망을 잃은 세포는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고 말입니다. 

 

고난 속에도 주님은 일하십니다. 아픔 속에도 주님은 멈추지 않으시죠. 내가 고통 가운데 있을 때도 주님께서 이루시고자 하는 일들은 차곡차곡 쌓입니다. 그리고 반드시 그 일을 이루어지죠. 그때 우리의 고통이 감격으로 바뀔 거예요. 그러니 아픔 때  기억하세요. 지금도 주님이 나를 위해 일하신다고요. 고난을 당할 때 생각하세요. 지금도 나를 향한 주님의 계획은 멈추지 않고 진행된다고요. 그렇게 주님은 내가 아플 때도, 슬플 때도 나와 함께 하신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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