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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하는말씀/누가복음서묵상일기

누가복음서묵상일기 32 - 쉽게 결론짓지 마세요.

누가복음서 2:1~7   그때에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칙령을 내려 온 세계가 호적 등록을 하게 되었는데, 이 첫 번째 호적 등록은 구레뇨가 시리아의 총독으로 있을 때에 시행한 것이다. 모든 사람이 호적 등록을 하러 저마다 자기 고향으로 갔다. 요셉은 다윗 가문의 자손이므로, 갈릴리의 나사렛 동네에서 유대에 있는 베들레헴이라는 다윗의 동네로, 자기의 약혼자인 마리아와 함께 등록하러 올라갔다. 그때에 마리아는 임신 중이었는데, 그들이 거기에 머물러 있는 동안에, 마리아가 해산할 날이 되었다. 마리아가 첫아들을 낳아서, 포대기에 싸서 구유에 눕혀 두었다. 여관에는 그들이 들어갈 방이 없었기 때문이다.


좋은 아침입니다. 다들 평안하신가요? 오늘도 맑고 밝은 얼굴로 주님이 주신 이 하루를 맞이하는 여러분 되시길 빕니다. 

 

오늘은 말씀 묵상이라기보다 말씀 해석에 가까운 묵상을 나누고자 합니다. 이제 본격적인 예수 탄생의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때는 아우구스투스 황제 시대라고 하죠. 아우구스투스 황제는 BC27년에서 AD14년까지 로마를 통치했던 인물입니다. '아우구스투스'란 명칭은 [존엄자]라는 뜻을 가진 칭호이고, 그의 본래 이름은 옥타비아누스입니다. 로마의 평화시대, 그러니까 팍스 로마나(Pax Romana)로 불리는 로마의 태평성대를 이루었던 인물이기도 하죠. 아마도 정치력과 행정력이 뛰어난 인물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인지 그는 아주 기초적인 조사들을 시행했는데요. 그것이 바로 인구조사였습니다. 로마뿐 아니라 각종 식민지의 현황을 파악할 필요가 있었던 것으로 보이죠. 이 때문에 요셉의 가족은 호적 등록을 위해 고향으로 가야만 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오늘 본문에는 아우구스투스 이외의 또 다른 인물이 등장하네요. 바로 '구레뇨'입니다. 서양식 이름으로는 '퀴리니우스'죠. 그가 시리아 총독으로 있을 때 인구조사가 이루어졌다고 본문은 기록하고 있죠. 그런데 이게 좀 논란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당시 유명한 역사학자였던 요세푸스에 의하면 구레뇨는 시리아의 총독이 된 것이 AD 7년이라고 주장했기 때문이죠. 이는 연대기적으로 맞지 않는 부분입니다. 예수님께서 태어나신 것이 대략 BC 3년쯤으로 추정하는데 당시 시리아 총독이 구레뇨라면 문제가 되죠. 게다가 인구조사 또한 AD 7년 경이라는 기록이 있습니다. 그럼 뭔가 이상하죠? 

 

좀 복잡한 내용이지만 그래도 말씀을 묵상하는데 필요한 상식적 차원에서 조금 설명을 드리고자 합니다. 아마도 이런 어긋남이 왜 나왔을까를 추측한다면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겠죠. 저자 누가가 착각을 했거나 혹은 다른 우리가 알지 못하는 것이 있거나 일지도 모르죠. 일단 누가가 착각했다는 것은 사도행전을 통해 탄핵이 됩니다. 역시 누가가 기록한 사도행전 5장을 보면 누가는 인구조사가 AD 7년에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죠. 그렇다면 착각이 아닐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오죠. 그러면 우리가 모르는 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가정 하에 본문을 분석해 볼 필요가 있겠죠? 조금 복잡하더라도 오늘은 우리가 마치 신학자가 된 것처럼 생각을 따라와 보시면 좋겠습니다. 

 

단서가 있는데요. 오늘 본문에 보면 인구 조사가 한 차례가 아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호적 등록에 '첫 번째'라는 단서를 달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또 있었다는 것을 암시하는 내용이죠. 아까 사도행전에서 인구조사가 AD 7년에 있었다는 사실을 누가가 알고 있다고 말씀드렸죠? 만약 그것이 첫 번째가 아니라 두 번째라면, 그러면 그 이전에 또 다른 인구조사가 있었을 수도 있다는 의미가 되지 않을까요? 그런 의미로 다시 원문을 보면 재미있는 것이, 이 '첫 번째'라고 번역된 헬라어 [프로토스]는 첫째라는 의미와 함께 중요한, 혹은 앞선, 이전의, 등의 뜻을 가지고 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다르게 해석하면 이전의 인구조사가 있었다는 뜻이 되죠. 만약 저라면 이렇게 번역했을지도 모릅니다.

 

"이 인구조사는 구레뇨가 시리아의 총독이었을 때 했던 인구조사 이전의 것이었다."

 

오늘은 묵상이라기보다 말씀 해석 방법론에 가까웠죠? 그래도 함께 이것은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것이 훨씬 많다는 것을 말이죠. 우리가 모르는 이면의 세계가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러니 함부로 재단하지 마세요. 쉽게 결론짓지 마세요. 특별히 아니라고, 틀렸다고, 잘못이라고 미리 가능성을 차단하지 마세요. 주님의 약속은 안 지켜진 것이 아니라 아직 모르는 것이고, 내가 알지 못하는 것이고, 내 눈에 보이지 않는 것뿐임을 기억하세요. 지금도 내가 모르는 어딘가에서 일하시는 주님이 계심을 믿고 희망의 끈을 놓치지 않는 여러분 되시기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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