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수아서묵상일기 46 - 주님의 은혜는 가꾸는 자에게 더욱 풍성해지는 법입니다.

2023. 11. 2. 06:50묵상하는말씀/여호수아서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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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수아서 7:2~5   여호수아가 여리고에서 베델 동쪽 벳아웬 곁에 있는 아이 성으로 사람들을 보내면서, 그들에게 올라가서 그 땅을 정탐하라고 지시하니, 그 사람들이 올라가서 아이 성을 정탐하였다. 그들이 여호수아에게 돌아와서 이렇게 말하였다. "모든 백성을 다 올라가게 할 필요가 없을 것 같습니다. 이천 명이나 삼천 명만 올라가도 아이 성을 칠 수 있습니다. 모든 백성이 그 성을 치느라고 다 수고할 필요가 없을 것 같습니다. 성 안에 있는 사람들의 수가 얼마 되지 않습니다." 백성 가운데서 약 삼천 명이 그리로 올라갔다. 그러나 그들은 도리어 아이 성 사람에게 패하여 도망쳐 왔다. 아이 성 사람은 이스라엘 사람을 서른여섯 명쯤 죽이고, 성문 앞에서부터 스바림까지 추격하여 비탈길에서 그들을 쳤으므로, 백성의 간담이 서늘해졌다.


좋은 아침입니다. 새벽 공기가 좋습니다. 이제 추위에 조금씩 적응이 되는지 오히려 찬 바람이 상쾌하네요. 겨울에 더 거센 찬 바람이 우리의 옷깃을 여미게 하겠죠? 그때도 '겨울은 찬 바람이 제맛이지.'라며 여유롭게 이겨나가는 우리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은 여리고 성에 이은 아이 성 전투에 대한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갑자기 드는 생각인데요. 우리가 성경을 묵상할 때 주의해야 할 점이 있어요. 그것은 어떤 선입견을 버리는 것입니다. 여리고 성이나 아이 성과 같은 전투 장면은 우리가 비교적 많이 들어서 알고 있죠. 그런데 어떤 경우는 이미 특정한 방향의 해석을 근거로 각색이 되어 전해진 경우들이 많습니다. 여리고 성과 같은 경우에는 난공불락이니 천혜의 요새니 하는 이야기로 그 성이 무너뜨리기 어려운 지형지물을 하나님이 무너뜨렸다는 식으로 받아들입니다. 제가 이 부분이 과장이라고 굳이 말씀드리는 이유는 하나님의 능력을 부정하거나 폄훼할 의도가 전혀 아닙니다. 오히려 이런 해석이 하나님의 능력을 과소평가한다고 믿기 때문이죠. 
 
하나님은 강하든 약하든, 쉽든 어렵든, 그 어떤 것도 다 하실 수 있는 창조주이십니다. 그분 앞에는 불가능이 없어요. 그런데 굳이 어떤 강한 상대를 대상으로 승리하시는 주님을 강조하는 것은 마치 하나님을 어떤 기적의 논리로 편향된 인식을 갖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가만히 계셔도 하나님이시죠. 아무 일 하지 않으셔도 하나님이십니다. 심지어 우리의 뜻대로 이루시지 않아도, 싸움에 져도 하나님이시죠. 그분이 하시는 일은 승리도 기적이고, 패배도 기적입니다. 모든 것에 의미가 있고, 모든 결과는 우리를 위한 것이기 때문이죠. 
 
아이 성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이 성이 작은 성이라서 얕보았다는 의미로만 이 말씀을 해석하는 시선이 많습니다. 물론 그렇습니다. 그런데 그런 선입견을 일단 내려놓고 오늘 나에게 주시는 말씀으로 이 말씀을 새롭게 보는 시선이 필요하다는 거죠. 그래서 아는 말씀일수록 조금 더 정확히 정독을 하며 성경을 읽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어쩌면 전혀 새롭게 말씀이 우리 안에 다가올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내용은 단순합니다. 여호수아는 여리고 성 때나 다르지 않은 작전을 펼치죠. 정탐꾼을 보내고 보고를 받습니다. 그 보고는 아이 성이 그리 크지 않다고 말하죠. 그리고 2~3,000명만 가지고도 이길 수 있다고 말합니다. 이 보고를 들었을 때 여러분은 어떤 생각을 하시나요? 아마도 정탐꾼의 보고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을 하실지도 모릅니다. 사자가 토끼 한 마리를 사냥해도 최선을 다하는데 아이 성이 작고 초라하다고 대충 전쟁을 치르자는 보고서는 교만하다고 말이죠. 아마도 많은 분들은 이런 해석에 익숙하실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저는 생각이 다릅니다. 그들의 보고서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봐요. 어쩌면 오히려 훨씬 정확한 보고서일지도 모릅니다. 사실 아이 성은 실제로 작은 성이고 그다지 강한 의지도 없는 성이 맞습니다. 그런 성에 많은 힘을 쏟을 필요가 없는 것이 합리적이고요. 또 불필요한 희생을 최소화하는 방법일 수도 있죠. 
 
그런데 졌습니다. 왜 졌을까요? 이스라엘이 교만해서요? 아니면 예상외로 아이 성이 크고 강한 성이어서요? 천만에요. 이스라엘이 진 이유는 보고서의 잘못도, 작은 인원이 싸움에 참여해서도 아닙니다. 아이 성은 3,000명을 가지고 충분히 이길 수 있는 성이었어요. 싸움에 진 이유는 다른 데 있습니다.
 
어제 우리가 묵상한 내용은 아간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여호수아 7장은 아간의 이야기로 시작되죠. 그런데 그 이야기가 1절에서 끝납니다. 아니 이야기가 잘린 거죠. 그리고 등장하는 것이 오늘 본문입니다. 그리고 후에 다시 아간의 이야기가 전개되죠. 그 이야기인즉슨 이 아이성 전투와 아간의 이야기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다는 뜻입니다. 아시다시피 아이성의 패배는 아간 때문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게 되죠. 그렇다면 아간의 죄를 다시금 상기해 봐야 합니다. 그는 하나님께 바쳐야 할 전쟁의 전리품을 훔친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그가 훔친 물품이나 혹은 도둑질에 가는 관심을 잠시 멈춰야 합니다. 이것은 무슨 공과를 다투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로지 관심사는 '이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어떤 자리에 오르면 그것이 자신이 잘 나서 된 줄 알죠. 열심히 공부하고 일해서 얻은 자리임에 틀림없습니다. 수고를 다한 거죠. 그런데 그 이면에는 하나님께서 그를 쓰시고자 그 자리로 인도하신 섭리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자리의 권리가 공적인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나에게 재능을 주신 것도 모든 사람들과 더불어 함께 기쁨과 감사를 누리는 하나님의 나라를 위함이죠. 그것을 잃는 순간 우리는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승리도 주시지만 패배도 주신다고요. 어떤 승패도 하나님의 손에 달렸다고 말입니다.
 
죄송한 말씀이지만 아이성은 우리에게 큰 경고를 주시는 메시지입니다. 여리고성의 승리를 주님이 주신 은혜로 기뻐하지 못하면 그 은혜는 곧 우리 곁에서 사라지고 말 것이라고요. 우리에게는 주신 것들이 많습니다. 가까이는 배우자, 자녀, 가족들, 그리고 삶의 자리의 식구들, 재능이나 꿈, 알맞은 신체나 환경 등등 주님께서 허락하신 것들이 많아요. 때론 여리고와 같은 어려움을 극복하며 이 자리에 왔고, 걸림돌을 때문에 눈물로 기도하며 돌파해 왔죠. 그 결과가 마음에 들던 들지 않던 분명히 하나님이 주신 은혜입니다. 그런데 그 은혜들을 잊으면 나에게 있는 은혜들은 씨가 마릅니다. 주님의 은혜는 가꾸는 자에게 더욱 풍성해지는 법이니까요. 주님의 인도하심은 따르는 자에게 더욱 구체적입니다. 주님의 기적은 믿는 자에게만 일어나는 특권입니다. 그런데 은혜를 은혜로 여기지 않으면 있던 은혜로 사라집니다. 주님의 인도하심을 믿지 않으면 길을 비추던 불빛마저 희미해지죠. 
 
잊지 마세요. 사랑하는 이에게 사랑이 옵니다. 주님을 믿는 자에게 그분의 도우심이 있고요. 꿈을 꾸는 자에게 기회가 오고, 찾고 구하는 자에게 길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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