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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하는말씀/고린도전서묵상

고린도전서 47 - 끈질기게 끌어안고 있는 불평과 부정의 우상을 끊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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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10:7   그들 가운데 얼마는 우상을 숭배했습니다. 성경에 기록하기를 "백성들이 앉아서 먹고 마셨으며, 일어서서 춤을 추었다" 하였습니다. 여러분은 그들과 같이 우상 숭배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하나하나 집어나가며 그 은혜와 손길을 잊지 말라고 당부하는 바울은, 과거 조상들의 우상숭배 기록을 꺼내죠. 오늘 본문에 인용된 구약성경은 출애굽기 32장의 말씀입니다. 금송아지 사건이 기록된 말씀이죠. 다 아시겠지만 금송아지 사건은 모세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시내산으로 올라갔을 때 남아있던 백성들이 기다리지 못하고 금으로 송아지 모형을 만들어 하나님이라고 경배했던 사건이죠. 

 

바울이 이 사건을 떠올리는 이유는 단순한 우상숭배의 문제를 거론하려는 것은 아닌 듯 보입니다. 금송아지 사건이라는 것이 단순한 우상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이죠. 우리가 쉽게 느끼는 우상이란 하나님과 전혀 관계없는 잘못된 힘에 가치를 두는 것을 말하죠. 그러나 금송아지 사건은 좀 다릅니다. 그들이 만든 금송아지가 무엇을 상징하는 것인지 아십니까? 이는 당시 이스라엘 백성이 아론을 향해 주문한 내용에서 쉽게 알 수 있는데요. 자신들의 지도자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간 후 감감무소식이자 그들은 초조했던 것 같아요. 아마도 모세가 죽었다고 생각했던 모양입니다. 하나님을 만나면 죽는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일까요? 그래서 그들은 아론을 쫓아가 이렇게 말하죠.

 

출 32:1   "일어나서, 우리를 인도할 신을 만들어 주십시오. 우리를 이집트 땅에서 올라오게 한 모세라는 사람은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들이 만든 금송아지는 하나님을 의미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죠. 또 있습니다. 금송아지를 만든 이후 아론도 이렇게 외칩니다.

 

출 32:4   아론이 그들에게서 그것들을 받아 녹여서, 그 녹인 금을 거푸집에 부어 송아지 상을 만드니, 그들이 외쳤다. "이스라엘아! 이 신이 너희를 이집트 땅에서 이끌어 낸 너희의 신이다."

 

금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그들은 하나님이라고 말한 것이죠. 그리고 그 하나님을 예배한다고 하면서 축제를 벌였습니다. 한마디로 예배를 한 것이죠. 

 

바울은 이 과거의 장면을 왜 떠올리며 상기시키고 있을까요? 지금 고린도 교회에 그런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겠죠. 똑같이 예배하고, 똑같이 하나님 말씀이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자기 편한 대로, 자기 입맛대로, 때론 자기 초조감에 자기를 위한 우상을 만들어 놓고는 그것이 하나님이라고 우기며 예배하고 사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이죠. 그래서 교회에는 열심이고, 하나님 말씀이라고 목놓아 떠들지만 정작 이웃에게는 관심도 없고, 은혜의 통로는커녕 남을 비판하고 시기하고 갈등하는데 열을 올리는 사람이 있었다는 겁니다. 바울은 그것을 우상숭배로 말하고 있는 것이죠.

 

우리는 어떨까요? 분명 그리스도인이면서, 분명 하나님의 사람이면서, 그분의 말씀을 듣고 읽고 묵상하며 내 삶에 적용하기보다 그저 내 편한 대로 생각하는 것이 신앙처럼, 내 뜻대로 풀려야 축복처럼 생각하는 우상이 우리 안에 자리 잡고 있지는 않나요? 내 몸을 쳐서 감사와 기쁨으로 채우고 좋은 생각과 좋은 뜻으로 세상을 바라보라는 말씀보다 여전히 해왔던 패턴대로 의심하고 경계하고 부정적인 생각에 가득하면서도, 그래서 저주와 불만을 터뜨리는 것이 기도인 줄 아는, 예배는 나를 높이기 위해 누군가는 땅에 떨어져야 하는 게임처럼 하고 있지는 않나요? 이름만 하나님이고, 정작 내 마음의 금송아지를 예배하고 있지는 않나요? 겉옷만 그리스도인이고 기실 속 사람은 하나도 거듭나지 않은 채 옛사람의 잿빛 허무의 그림자를 그리워하며 섬기고 있지는 않나요?

 

우리가 바라볼 것은 아직도 뒤에서 나를 애잔하게 부르며 돌아보기를 바라는 과거의 광야가 아니라, 눈앞에 새롭게 펼쳐지는 약속의 땅임을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바라고 기도하는 바도 그렇죠? 돌아보기도 싫은 지난 시간이 아니라 모든 가능성을 품은 다가올 그리움의 시간 아닙니까? 우울과 찌그러진 표정이 아니라 웃음과 행복의 여유를 바라시지 않나요? 심판과 정죄가 아니라 용서와 긍휼이고, 어둔 죄가 아니라 밝은 은혜일 거예요. 그렇다면 지금 그 우울의 우상을 버리세요. 그렇게 끈질기게 끌어안고 있는 불평과 부정의 우상을 끊으세요. 주님의 은혜를 기억하는 방법의 시작은, 내 안에 끓어 넘치는 우울과 걱정, 부정과 불만, 낙심과 절망의 우상을 끊어 내는 것부터입니다.

 

오늘도 웃으며 하루를 보내세요. 그러려면 지금, 마치 나의 본질인 듯 자리하고 있는 우울과 부정적인 사고의 우상을 끊으세요. '나는 본래 이렇다'라고 단정하는 우상을 버리세요. 본래 그런 게 어딨어요? 우리가 우상처럼 받들기 때문에 그런 거죠. 그러니 오늘은 내가 아닌 나처럼 새롭게 시작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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