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10:12 그러므로 서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넘어지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오늘 본문도 유명하죠. 가끔 누군가 경고하고자 할 때 주로 사용하는 본문이죠. 바울은 이스라엘의 과거 죄들을 고발하고 마지막으로 이 말로 권면을 하는데요. 한 마디로 말하면 하나님께 선택받은 민족,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민족이라고 자만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기 원하고, 축복이 임하길 원하죠. 이는 우리의 바람만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도 우리에게 사랑과 은혜, 축복과 부를 주시길 바라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그런 마음이시죠. 그러나 문제는 그 사랑과 은혜, 축복과 부가 하나님께서 나오지 않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것을 받을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데 있습니다.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를 전전했던 이유는 하나님의 계획이 아니라 우리의 준비가 미흡했기 때문이라면 어떨까요?
그리스 고전에 나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기원전 4세기경 시칠리아의 디오니시오스 2세라는 왕이 있었는데요. 그는 멋진 궁전에, 화려한 의복과 호사스런 생활을 누렸습니다. 그의 친구이자 신하 가운데 한 사람인 다모클레스는 그런 왕이 늘 부러웠어요. 그래서 어느 날 왕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하죠.
"왕이여, 얼마나 행복하십니까? 왕의 이 권력과 부를 단 하루라도 누려보는 것이 제 평생의 소원입니다."
그러자 디오니시오스 2세는 친구의 평생소원이라는 말에 흔쾌히 하루 동안 다모클레스에게 왕의 자리를 내어주었다고 하죠. 다음날 다모클레스는 화려한 의복을 입고 멋진 궁전의 제일 높은 자리에 앉았습니다. 시중을 드는 아름다운 여인들로 둘러싸였고, 진수성찬에 멋진 음악이 울려 퍼졌죠. 이제 남부러울 것 없는 행복감에 젖어들 무렵, 우연히 천장을 보게 되었다죠. 그런데 웬일입니까? 자신의 머리 위에는 말총 한 가닥에 매달린 서슬 퍼런 칼이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것 아닙니까? 갑자기 다모클레스의 표정은 잿빛으로 바뀌었고, 맛나던 음식도 아무 맛이 나지 않았습니다. 들리는 음악은 결코 경쾌하지 않았고, 자랑스럽던 왕의 자리는 가시방석이 되어버렸습니다. 이때 디오니시오스 2세가 이런 말을 해 줬다고 해요.
"이 화려한 모습은 언제 떨어질지 모르는 저 칼 앞에 놓인 마음으로 사는 자에게 주어지는 축복이라네"
대문호 셰익스피어의 연극 [헨리 4세]에 나오는 유명한 구절이 있죠.
[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즐겨라]
권력을 가진 자들의 책임 있는 행동에 관한 관용구로 자주 사용되기도 하죠.
하나님의 사랑에는 아무 조건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 사랑을 받아들이는 이들에게는 조건이 있죠. 그분의 사랑을 받아야 하고, 인정해야 하고, 알아야 합니다. 아무리 기적적인 일들이 벌어져도 그 기적을 기적으로 느끼지 못하면 그것이 그 사람에게 기적이 되지 못하죠.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는 매일 같은 시간, 같은 방법으로 출근을 하죠. 하등 이상할 것이 없어요. 그런데 나를 위해 그 시간에 버스가 오고, 신호등이 바뀐다면요? 차들끼리 부딪칠 상황이 몇 초 차이로 비껴 나고 수많은 상황을 질서 있게 배분하는 손길이 있다면요? 단적인 예지만 그런 세밀한 손길을 느낀다면 우리가 어찌 감사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우리는 그 손길이 있어도 잘 모르죠. 그저 어제나 오늘이나 당연한 듯, 어쩜 제시간에 딱 도착하는 것이 정상인 듯 우리는 평범하게 그냥 넘어가죠. 그들에게는 기적이 기적이 아니게 되고, 감사도 감사가 아닌 것이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격은 그 사랑을 아는 자에게만 있습니다. 은혜를 받은 자격은 그 은혜를 은혜로 여기는 자에게만 있어요. 그 수많은 기적을 경험하고도 이스라엘은 광야에서 망했잖아요? 어제의 기적을 잊고 오늘을 불평했기 때문입니다. 오늘 받은 사랑을 원망으로 바꿔버렸기 때문이죠. 은혜의 단비는 누구나에게 내립니다. 죄인이든 의인이든 상관을 하지 않죠. 그러나 그 은혜를 맛보는 사람은 정해져 있습니다. 그 은혜를 은혜로 고백하는 사람들이죠. 구원 또한 모든 이들에게 열려있습니다. 그러나 그 구원이 구원되려면 영접하고 시인하는 이들이어야 하죠. 그만큼 우리가 준비되어야 합니다.
축복도 그렇습니다. 모든 이들에게 부어지는 축복이지만 그것을 축복으로 여기는 이들만이 축복을 누리죠.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 자에게 주어진 축복은 열매로 핍니다. 구하고 찾는 자에게 은혜의 꽃이 피죠. 가난에 대해 많은 이들이 어려워합니다. 저는 모든 이들이, 아니 우리 공동체 가족들만이라도 풍요롭고 부유했으면 좋겠어요. 그런데 하나님이 돈을 주시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돈을 받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어떨까요? 돈을 잘 쓸 준비, 돈을 잘 다룰 준비가 되어있지 않아서 돈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면요? 사실 그런 책임감, 준비성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오로지 돈이라는 목표에만 집중했던 것은 아닐까요? 그래서 주시지 않는 것에 불평하고, 없어서 돈을 죄악시한 것은 아닐까요?
사랑받을 준비가 되셨습니까? 은혜받을 마음은 있으신가요? 복을 누릴 자격은 갖추셨나요? 그 사랑의 무게, 은혜와 축복의 무게를 즐길 준비는요? 그렇게 믿음의 그릇을 키우는 우리에게 더 많은 것이 담깁니다. 이미 사랑과 은혜, 축복과 용서는 차고 넘칩니다. 이미 주셨어요. 이제 그것을 담을 그릇을 준비하면 됩니다. 내가 그 그릇을 넓히는 만큼 담길 것입니다.
신명기 11:24 당신들의 발바닥이 닿는 곳은 어디든지 다 당신들의 소유가 될 것입니다.
여호수아 1:3 너희 발바닥이 닿는 곳은 어디든지 내가 너희에게 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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