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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하는말씀/고린도전서묵상

고린도전서 52 - 시련은 싸워 이기는 것이 아니라 내 편으로 만들어 이기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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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10:13   여러분은 사람이 흔히 겪는 시련 밖에 다른 시련을 당한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십니다. 여러분이 감당할 수 있는 능력 이상으로 시련을 겪는 것을 하나님은 허락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시련과 함께 그것을 벗어날 길도 마련해 주셔서, 여러분이 그 시련을 견디어 낼 수 있게 해 주십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인이라 할지라도 피하지 못하는 것들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죽음을 피하지 못하고, 인생의 쓴맛을 피하지 못합니다. 모두 다 겪는 아픔들도 우리에게 있고, 땀을 흘리고 고군분투해야 하는 일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를 믿는다고 해서 뜨거운 불에 손을 넣으면 화상을 입는 것은 마찬가지고, 기도한다고 해서 모든 이들이 속절없이 걸리는 코로나 오미크론에 걸리지 않은 것도 아니죠. 우리의 현실은 똑같습니다.

 

그러나 다른 것이 있다면 괴로움이 없고, 고난이 없으며, 모든 것일 꽃길일 것이라는 사실이 아니라, 그런 고난을 이길 힘을 주시고, 괴로움과 아픔을 뚫고 나갈 길을 여신다는 것이죠. 그것이 예수를 믿는 그리스도인의 능력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절망하는 이유는, 예수를 믿는 나에게 고난이나 어려움 따위가 근처에 얼씬 거리지도 못할 것이라는 허망한 상상 때문입니다. 전염병은 종교가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을 알아보지 못하죠. 특별히 사탄의 시련은 오히려 그리스도인들을 노립니다. 욥기에서 본 바로는 심지어 하나님께서 그 사탄의 시련을 허락하시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우리에게는 그렇게 어려움이 찾아옵니다. 예수 믿는다고 어려움이 없어지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오히려 더 많은 어려움이 찾아올지도 몰라요. 그런 아픔 속에서 우리는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에 대한 불평에 머물러 있을 때가 많습니다. 마치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처럼 말이죠. 그들은 하나님이 이끄시고 계획하신 길이기에 아무 일이 없을 줄 알았을지도 모릅니다. 전쟁만 했다 하면 다 이기고, 모든 민족들이 자신들 앞에 무릎 꿇을 줄 알았겠죠.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배고픔과 병마에 시달려야 했고, 갖은 이방 민족의 저항에 부딪쳐야 했습니다. 시간은 자신들의 상상보다 허무하게 길어졌고, 가나안을 보지도 못하고 죽어가는 신세가 되었죠. 그들은 그런 모습에서 배신감을 느꼈을지도 모릅니다. 자신들에게는 꽃길만 있을 줄 알았으니까요. 자신들은 선민이라 믿었으니까요. 그런데 세계사적으로 유대인만큼 고난이 많고 역경이 넘치는 민족은 없었을 겁니다. 

 

그렇게 뒤만 쳐다보면 해답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현실 세계에서 특별 대우하지 않으시니까요. 우리를 탈지구화 인간으로 만드시지도 않죠. 그럴 거라면 창조된 인류에서 우리가 살 이유도 없을 겁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특별한 권세는 시련을 주시지 않는 것이 아니라 시련을 이길 힘을 주시는 것입니다. 마치 힘든 운동을 하지 않게 하시는 것이 아니라 운동을 해서 근육을 키울 능력을 주신 것처럼 말이죠. 그래서 우리 앞에 놓인 시련은 내가 감당할 만한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 깨달음 속에서 이 시련은 나를 괴롭히는 것이 아닌 나를 자라게 하는 것이 되니까요. 

 

오늘도 우리에게는 여전히 어려움들이 찾아올 거예요. 그러나 당황하지 마세요. 그 어려움들은 내가 능히 감당하고도 남을 것들입니다. 아니, 오히려 나의 능력을 증명하고, 나를 더욱 강하게 만들 일들이 될 것입니다. 전화위복의 기회가 될 테죠. 그러니 즐거운 마음으로 기다리고 맞이 하세요. 반겨주세요. 환영하시고 기뻐하세요. 그러면 그 어려움이 귀여워 보일 것입니다. 사랑스러워 보일 거예요. 시련은 싸워 이기는 것이 아니라 내 편으로 만들어 이기는 겁니다. 아픔은 대적해서 이기는 것이 아니라 쓰다듬고 달래서 이기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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