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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하는말씀/고린도전서묵상

고린도전서 57 - 죽고 사는 일이 아니라면 목숨 걸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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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10:28~30 그러나 어떤 사람이 "이것은 제사에 올린 음식입니다" 하고 여러분에게 말해 주거든, 그렇게 알려 준 사람과 그 양심을 위해서, 먹지 마십시오. 내가 여기에서 양심이라고 말하는 것은, 내 양심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양심입니다. 어찌하여 내 자유가 남의 양심의 비판을 받아야 하겠습니까? 내가 감사하는 마음으로 참여하면, 내가 감사하는 그 음식 때문에 비방을 받을 까닭이 어디에 있습니까?



오늘도 바울은 우리에게 삶의 지혜 하나를 알려줍니다. 어제 시장에서 파는 고기에 대해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그냥 먹으라고 말했죠? 이것저것 따지며 하나하나 까탈스럽게 굴지 말라고 했습니다. 이는 남들을 불편하게 만들거나 혹은 유별난 사람처럼 보이게 만들지 말라는 의미도 담겼죠. 유독 그리스도인 척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보통은 서로 사랑하는 것으로 주님의 제자임을 알리는 것이 수순인데 그들은 까탈스러움으로 드러내죠. 이것저것 트집을 잡고, 어떤 특정한 행동으로 남과 구분을 짓죠. 마치 차별이 구별인 줄 알고 나와 다른 이들을 무시하는 처사로 자신이 빛나도록 만드는 일도 있습니다. 심지어 남을 비방하고 짓밟는 것으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기도 하죠.

그리스도인으로서 삶의 기준을 세우는 일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나를 온전히 이끄는 도구가 아니라 남을 무시하는 데 목적이 있다면 그것은 삶의 가이드라인이 아니라 판단과 심판의 도구입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은 자유죠. 누구도 막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일이 남을 깎아내리는 편견과 차별이라면 그것은 자유가 아니라 오히려 억압의 도구가 되죠. 주위를 보면 별의별 사람이 다 있죠. 별 일 아닌데 꼭 다른 사람들의 기분을 상하게 만드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 중에도 분명 말씀을 전하고 복음을 전하는 데도 마음이 따뜻해지기보다는 기분을 나쁘게 만드는 사람이 있어요. 말은 조근조근 다 옳은 말을 하는데 듣는 가운데 마치 내가 나쁜 사람 같고 죄인같이 여겨져 불편감을 주는 이들이 있죠. 자기 생각과 삶을 이야기하는 간증을 할 때도 그래요. 참 좋은 이야기고 감동적인 이야기인데 왠지 듣다 보면 나는 잘못하는 것 같고 다 틀린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해서 찜찜하게 만드는 사람이 있어요. 도움을 받아도 감사하다는 생각보다는 마치 생색을 내는 모습에 인상이 찡그려지기도 하죠. 물론 그리스도인들만 그런 것은 아니죠. 별 것 아닌 일에 유독 날카롭고 그냥 웃으며 넘어갈 수 있는 일에 날선 반응을 보이는 사람이 꼭 있죠. 그러면 삽시간에 분위기는 뻘쭘해지고 어색해지기 일쑤입니다. 그건 내 자유가 아니라 칼입니다. 남의 마음을 해치는 칼 말이죠. 내 마음 내 자유라고 외칠지도 모르죠. 내 말 내가 하는데 무슨 상관이냐고 말할지도 모릅니다. 맞습니다. 나에게는 말도 생각도 행동도 할 수 있는 자유가 있죠. 그러나 그것이 남을 상하게 만든다면 그것은 그저 개인의 자유에 그치지 않습니다. 바울은 그 부분을 언급했죠. 그리고 오늘 삶의 지혜 하나를 제시하죠.

시장에서 고기를 사는 데 누군가 이렇게 말하는 거죠. "그것은 제사에 쓰인 고기인데요?" 그 사람은 그것이 마음에 쓰인 거죠. 그 사람은 그 고기가 제사에 쓰인 것을 알았고, 그것이 마음에 걸렸던 상황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내가 선택했죠. 나는 그것이 하등 문제가 되지 않아요. 제사에 쓰였든 그렇지 않든 나에게는 그저 고기일 뿐이죠. 게다가 이미 그런 하찮은 문제가 나의 신앙을 흔들 수 없다는 사실도 잘 압니다. 그런데 그때, 아무리 나는 상관없고 문제없다고 하더라도 그 사람을 위해서 그 고기를 취하지 말라고 권면합니다. 그 사람을 위해서요. 그 사람이 시험 들지 않도록 도우라는 것이죠. 아마도 이런 상황에서 백이면 백 이렇게 행동할지도 모릅니다. 보통의 경우 아무런 거리낌이 없는 사람이 더 깊은 양심을 가진 사람일 거예요. 문제를 제기하는 쪽은 초신자일지도 모르죠. 그렇다면 아마 많은 것을 아는 사람이 그렇지 못한 사람을 가르치려고 들지도 모릅니다. '네가 뭘 모르는 모양인데.. 제사에 쓰였다고 다 나쁜 건 아냐. 너의 생각에 달렸고, 너의 의지에 달렸을 뿐이야'라고 가르쳤을 거예요. 그렇게 알려줘야 된다고 느낄지도 모르죠. 모른다고 힐난하거나 무시하지는 않더라도 마치 사명처럼 알려줘야 한다고 느끼는 이들이 대부분일 겁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러지 말라고 말하죠. 이유는 간단합니다. 죽고 사는 일이 아니라면 목숨 걸지 말라는 의미죠. 이것이 목숨을 걸만한 중요한 일이 아니라면 웃으며 넘기라는 것입니다.

웃으며 넘긴다는 말이 너무 가볍게 들리실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가장 안 되는 일 중의 하나가 웃으며 넘기는 일인지도 몰라요. 내가 아는 일을 접어두고 그저 웃으며 넘기는 일을 못해요. 누군가 했던 이야기를 또 하면 어떤 반응을 보이시나요? 아마 '그거 지난번에 했던 말이다'라고 콕 집어서 지적해 줄지도 모릅니다. 그냥 들어주고 웃으며 넘기는 것이 힘들죠. 내가 아는 일이라면 더욱 그렇습니다. 어른들이 꼰대 소리를 듣는 이유 중 하나가 그래요. 꼭 자기가 아는 것은 말하고 마는 습관 때문입니다. 누군가 아는 이야기를 하면 꼭 아는 척을 하죠. 그냥 웃으며 그것을 들어줄 마음이 없어요.

이는 진짜 큰 사람이 아니어서 그럴지도 모릅니다. 진짜 아는 사람이 아니어서 그럴지도 몰라요. 이제 막 말을 시작한 어린아이들을 상대하는 엄마를 보면 신기합니다. 어린아이가 따박따박 말대답을 하고 뭔가 자기가 아는 이야기를 늘어놓으면 그 말을 들으면서 대꾸를 해 주죠. 고개를 끄덕이며 '그랬어요? 그랬구나! 그렇네~' 인정을 해 줍니다. 마치 처음 듣는 말처럼, 마치 하나를 배웠다는 듯이 말이죠. 설마 그럴까요? 그런데 그렇게 웃어넘기죠. 왜냐하면 엄마니까요. 그리고 이 아이가 자라서 더 많은 것을 알아갈 것을 믿으니까요. 그것이 어른이고 큰 사람의 모습일지도 모르죠.

거리에 많은 사람들 어딘가로 향하는
빠른 발걸음 모두 그렇게 살아가지
가슴속 깊은 사연들 저마다 아픈 구석
하나쯤은 있네 그렇게 모두 살아가지
가끔은 뭐 하나 되는 일이 없고
한없이 작아지고 주저앉고 싶어도
하지만 단 한 가지 나에게 꿈이 있다네
힘들다 뭐래도 난 그냥 웃으며 넘길래
(제이레빗 - 웃으며 넘길래)

죽고 사는 일이 아니라면 목숨 걸지 마세요. 목숨처럼 중요한 일이 아니라면 웃으며 넘기세요. 괜한 일에 힘 빼지 마세요. 어지간한 일들은 놔두세요. 내 자유를 위해서라도 적들을 만들지 마세요. 사소한 일도 이리저리 힘을 빼다 정작 제대로 싸워야 할 일에 맥을 못 추는 사람 되지 않도록 하세요. 그렇게 오늘도 넉넉한 마음으로 웃으며 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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