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10:31~33 그러므로 여러분은 먹든지 마시든지, 무슨 일을 하든지, 모든 것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십시오. 여러분은 유대 사람에게도, 그리스 사람에게도, 하나님의 교회에도, 걸림돌이 되지 마십시오. 나도 모든 일을 모든 사람의 마음에 들게 하려고 애씁니다. 그것은, 내가 내 이로움을 구하지 않고, 많은 사람의 이로움을 추구하여, 그들이 구원을 받게 하려는 것입니다.
좋은 아침입니다. 아직 창 너머 밖은 캄캄하지만 흐린 날씨처럼 보입니다. 미세먼지도 많고 일교차도 큽니다. 그래도 봄이 오는 소리가 곳곳에서 들리네요. 오늘도 나쁜 소식보다 좋은 소식으로 더 가슴을 채우는 하루 되길 빕니다.
바로 이전 구절인 30절에서 바울은 이런 말을 하죠. 내가 감사하는 마음으로 먹으면 그 음식으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말이죠. 무엇이든 감사로, 은혜로, 사랑으로, 기쁨으로 받으면 그것은 축복으로 변하는 능력이 우리에게 있다는 말씀이죠. 그 능력의 구체적인 방법이 오늘 본문에 있습니다. 무엇을 하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하라는 말씀이 그 말씀입니다.
그리스도인에게 능력이 되는 것은 다름이 아니에요. 우리의 삶의 목적이 하나님의 영광에 맞춰져 있을 때 우리는 모든 일에서 보호를 받습니다. 내가 원하는 일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데 있을 때 악이 선으로 변하고, 죄가 의로 변하는 기적을 맛보죠. 나의 연약함도, 우리의 실수도 용서받는 방법입니다.
저는 곧잘 착각을 했어요. 남을 위해 사는 삶이 그리스도인의 삶이라고 여겼죠.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나보다 남을 더 배려하며 사는 것이 착한 삶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이 말이 틀린 말은 아니죠. 그런데 그것이 참 어려웠어요. 사실 정작 내가 잘 되기를 바라고 원하는 것이 인지상정인데 남을 위해 살라니 참 어렵고 힘들더라고요. 그래서 가식도 많고 억지로 하는 경우들도 있었죠. 남을 위한 삶이라는 것이 단지 잠시 눈을 가린 도구처럼 느껴졌습니다. 오늘 본문에도 나의 의로움보다 다른 이들의 의로움을 추구하라는 말씀이 그런 생각에 더욱 불을 지폈던 거죠. 그런데 이 말씀이 착각입니다. 우리는 남을 위해 사는 사람들이 아니에요. 누구를 도우며 살아야 복 받는 것도 아니고, 나보다 남을 더 위하며 살아야 하나님의 인정을 받는 것도 아닙니다. 이웃사랑은 우리가 복 받는 도구가 아니죠. 단지 하나님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자연스레 주어지는 감정일 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 하나인 거죠.
우리의 삶은 온전하지 않습니다. 언제 실수를 할지 모르는 불완전한 삶이죠. 무엇이 옳은 길인지 알지 못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잘하고 싶지만 무엇이 잘하는 것인지도 잘 모릅니다. 때론 누군가를 도우려다 오히려 분란이 일어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나 스스로도 나를 잘 모르는데 어찌 남들의 마음을 알 수 있겠습니까? 누구도 남들과 관계를 무너뜨리고자 하는 사람은 없을 거예요. 다 잘하고 싶죠. 그런데 잘 안 되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런 와중에서 누구를 어떻게 돕고 잘 지낸단 말인가요? 아무리 이웃 사랑의 마음이 차고 넘쳐도 그 마음이 곧 이웃을 좋게 만드는 것은 아닙니다. 어쩌면 더 부담스럽고, 어쩌면 더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행동이 될지도 모르죠. 그렇다고 그런 것 생각하지 않고 내 마음만 표현하며 사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 폭력이 될 수도 있죠. 이런 것이 참 어렵죠.
그런데 오늘 본문이 우리를 명쾌하게 해 줍니다. 바울은 유대인도 이방인도, 교회를 다니는 사람이건 그렇지 않은 사람이건, 그것을 구분할 필요는 없다고 말합니다. 내게 좋은 사람, 싫은 사람,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 이런 것을 구분하지 말라는 말씀이죠. 그래서 이런 사람은 이렇게 저런 사람은 저렇게 그런 복잡한 관계들을 만들 필요가 없다고 말합니다. 단지 우리가 사람들을 대하는 한 가지 태도만 있으면 된다는 거죠. 그것은 나의 모든 일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초점이 맞춰져 있으면 된다는 것이죠.
문제는 하나님의 영광이 뭐냐? 하는 데 있는데요. 이런 말이 어렵죠. 하나님의 영광이 뭘까요? 어려운 단어들을 늘어놓는 것은 이 아침에 불필요해 보입니다. 그동안 말씀을 삶에 적용하기 위해 쉬운 말로 표현했던 패턴을 따라 말하자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이고, 그분을 춤추게 하는 일이 아닐까요? 이것도 어렵죠? 그렇다면 그분이 기뻐하실 일은 무엇일까요? 단적인 예로 그분 앞에 각종 귀한 음식과 제물로 제사드리는 일일까요? 아니면 당신의 백성들이 편안하고 기쁘게 사는 일일까요? 너무 극단적이지만 이 이지선다의 질문에는 별 이견 없이 답이 분명할지도 모릅니다. 하나님은 그런 분이시니까요. 더 들어가 볼까요? 그러면 그분의 백성들이 편안하고 기쁘고 행복하게 사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서로 좋은 관계들이 맺어지는 것 아닐까요? 그래서 지난주일 저는 그리스도인에게 가장 중요하고 최우선 되는 사역이 자신의 감정조절이라는 말씀을 드린 것이죠. 우리가 감정 컨트롤만 잘해도 그것이 가장 강력한 믿음 생활이라는 말씀을 전했죠.
어려울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목표로 산다는 것은 우리가 언제나 좋은 감정과 좋은 기분을 유지하겠다는 선언이니까요. 놀라운 것은 아침마다 일어날 때 좋은 기분을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하루를 복되게 살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 가정의 분위기가 달라지겠죠. 굿모닝 한 마디로도 얼굴에 미소가 지어질 거예요. 거창한 예배, 거창한 믿음 생활 필요 없습니다. 오늘 아침, 주님 앞에 많이 웃는 하루를 달라고 기도만 해도 우리의 하루에는 놀라운 일들이 벌어질 거예요. 아침에 여유를 갖고 좋은 마음으로, 열린 마음으로 주님의 말씀을 묵상하는 것만으로도 당신의 하루는 복될 것입니다. 얼굴에 미소 하나가 신앙이고, 내 마음, 내 기분, 내 감정 하나가 사역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내 기분과 감정을 하나님께로 열면 그 수많은 삶의 변수들은 하나님이 컨트롤해 주실 거예요. 이게 복이죠.
그저 웃기만 하세요. 그저 감정만 잘 다스리세요. 그저 좋은 생각만 하세요. 다른 갖가지 상황들은 하나님의 일하심이 드러날 것이고,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적절하고 아름답게 조정될 거예요. 그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초점을 맞추세요. 그러면 나의 미숙함도, 나의 연약함도, 심지어 나의 게으름과 문제도 선용하셔서 아름답게 만들어지는 기적이 일어날 겁니다. 그만큼 나의 첫 마음이 중요합니다. 나의 첫 사역이 중요해요. 이 묵상을 읽는 분들, 지금 바로 얼굴에 미소를 지으세요. 그리고 이 글을 다 읽고 이렇게 기도하세요. "오늘도 많이 웃게 해 주세요." 그리고 일어나면서 가장 밝은 얼굴로 곁에 있는 사람에게 인사를 나누세요.
'안녕!'
낯간지러운 인사일지 모르지만 제자들의 작은 발걸음이 세계 선교의 기틀이 되듯, 작은 미소와 인사 하나가 오늘 하루를 복되게 만들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그저 내 기분에만 집중하세요. 내 감정으로 주님께 영광을 돌리는 하루 되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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