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10:14~15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여러분, 우상 숭배를 멀리하십시오. 나는 지각 있는 사람들에게 말하듯이 말합니다. 내가 하는 말을 판단하십시오.
우상 숭배에 대해 경고하는 것으로 시작했던 고린도전서 10장이기에 바울은 다시 강조하죠. 우상 숭배에서 멀리 떨어지라고 말이죠. 이미 고린도 지역에 우상의 문화가 팽배했다는 사실을 언급한 바 있습니다. 곳곳에 이방 신전들이 있었고, 그곳에서 낯 뜨겁고 상식 이하의 행위들이 일어났죠. 미신이라는 것이 그렇습니다. 다 상식적이지 않죠. 그럼에도 그것을 믿어요. 마치 무엇엔가 홀린 듯이 말이죠. 우리도 그런 경우들이 있죠. 교회를 다니고 예수를 믿지만 예부터 전해져 온 각종 미신적 행위들이 몸에 밴 경우가 많죠. 운동선수들의 징크스라는 말이 대표적입니다. 수염을 안 깎는다든지 목욕을 안 한다든지 갖가지 자신들이 믿는 어떤 행위들이 있죠. 남들이 보면 정말 말도 안 되는 것들인데 자신들은 사뭇 진지합니다. 그저 심리적인 문제라고 말하기에는 그 깊이가 깊은 영적인 문제로 발전하는 경우들이 있죠. 아마도 고린도 교회에 있는 이들에게도 이런 문제들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바울이 말하는 우상은 이런 문화적인 문제보다 조금 더 심각한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특별히 고린도 교회 내부의 문제를 다루죠. 이것을 현대적인 의미로 성경을 재해석한 더 메시지 성경으로 보면 이렇게 적어 놓았더라고요.
고전 10:14, 그러니 사랑하는 친구 여러분, 사람들이 하나님을 어떤 대상으로 전락시켜 이용하거나 통제하려는 모습이 보이거든, 할 수 있는 한 속히 그 모임에서 빠져나오십시오.(더 메시지 성경)
이미 지난주일, 이 우상의 문제에 대해 금송아지 사건을 예로 들어 말씀드린 바 있어요. 하나님을 자신들의 철학에 맞춰 규정하거나 율법화시키는 경향에 대해서 말이죠. 고린도 교회 내에서도 그런 메시지들로 현혹되는 이들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분이시다'라는 말로 다른 사람들을 폄훼하고 이방인들에 대해 차별하며 어떤 문화나 사회적 지역적 편차들에 대해 노골적인 적대감을 드러내는 식의 복음 전파들이 있었던 것이죠. 어쩌면 한국교회의 성장에도 이런 면들이 한몫했을지도 모릅니다. 타 종교에 대한 적대감을 통해 일치를 이루고, 갈등과 대결을 통해 하나의 세력으로 성장하는 길을 걸었던 측면이 있을지도 모르죠. 포용과 용납, 긍휼과 자비보다는 심판과 경고, 차별과 터부를 통해 얻은 성과 말이죠. 그래서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교회의 높은 담은 자신들만의 철옹성이 되어 버렸는지도 모릅니다.
우리나라처럼 정치문제에 민감한 이들도 없죠. 다른 것은 다 달라도 정치관이 다르면 함께 할 수 없다는 말이 나올 정도입니다. 이 심각성이 어느 정도냐하면 정치적 견해가 다르면 꼭 싸웁니다. 서로를 미워해요. 심지어 상종 못할 사람 취급을 합니다. 상대방을 적대시하는 것은 물론 죄악시까지 하죠. 이는 '내가 옳다'라는 주장을 넘어 정치관이 진리의 문제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복음보다 강한 것이 정치관일지도 모른다고 말한다면 허황될까요? 동서로 나뉘고, 좌우로 나뉘고, 나이별로 나뉜 정치적 견해로 갈라진 지 오래입니다.
무엇이든 자신들의 주장과 견해는 존중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서로를 갈라놓고 서로를 헐뜯는 것이라면 그것은 주장도 견해도 아닙니다. 그것은 우상입니다. 지금 전 세계가 전쟁에 반대를 하죠. 어떤 명분이든 전쟁은 살육이고 처참한 것이기에 반대합니다. 이와 같이 자신의 주장이 누군가를 미워하고 해치는 일로 발전한다면 그것은 단순한 이념이나 사상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상입니다. 그러니 그 우상에서 멀어지세요. 내가 하고 있는 생각이 누군가를 죄인으로 만들고, 쓰레기 취급을 한다면 그 생각은 생각이 아닌 우상일 지도 모릅니다. 내가 추구하는 목표가 누군가를 짓밟고 악마 화해야 한다면 그 목표는 인생의 목표가 아니라 인생의 우상일지도 몰라요. 그 자리에서 지금 벗어나야 합니다.
무슨 생각을 해도 괜찮습니다. 어떤 행동을 해도 괜찮아요. 어떤 음식을 먹든, 어떤 자리에 있든 우리에게는 그 모든 것을 누릴 자유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생각이, 그 행동이 누군가를 피 말리게 하고, 저주하고, 죽이는 일이라면 그것은 더 이상 나의 생각이나 주장, 신념이나 견해가 아닙니다. 거기서부터는 우상이기 때문이죠. 미워하고 갈라서고 깨지고 헐뜯고 싸우고 죽이며 서로의 관계에 금이 가게 하는 모든 것은 우상이 될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그 우상에서만은 멀어지세요. 같이하고 서로 힘이 되고 함께 세워가는 일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가 꽃 핍니다. 성령의 9가지 열매를 아시잖아요? 사랑과 기쁨과 평화와 인내, 친절과 선함과 신실과 온유와 절제, 모두가 관계 속에서 피어나는 것들입니다. 공동체 안에서 이루어지는 일들이죠. 전쟁이나 다툼, 차별과 갈등에서는 맺을 수 없는 열매입니다.
하나님을 어떤 편협함으로 규정짓지 마세요. '저 사람은 하나님께서 싫어하실 거야' 이런 규정으로 인해 일어나는 미움과 차별을 멀리하세요. 그런 일은 없으니까요. 예수님은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은 이들까지 용서하셨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이런 마음에서도 멀어지세요. '나는 안 될 거야' 이 또한 하나님이 나를 포기하셨다고 규정하는 것과 같죠. 그렇게 하나님을 틀에 맞춰 규정하고 정해버리는 것이 우상입니다. 거기서 벗어나세요.
오늘도 하나님은 새로운 하루를 주십니다. 그분의 마음에는 어제의 나를 잊으시고 오늘의 나를 다시 쓰시죠. 그분의 어제의 죄를 기억하지 않으시고 오늘의 의를 꿈꾸십니다. 그분의 어제의 실패를 지우시고 오늘의 가능성을 다시 카운트하십니다. 그 어제에 머물러 하나님도 나와 같이 실패를 기억하실 것을 생각하는 것이 우상입니다. 내가 만든 법칙이고요. 하나님은 한 번도 그렇게 실패하면 다시는 용서하지 않겠다고, 평생 기억하겠다고 말씀하신 적 없으시죠. 나만 그러죠. 그게 우상인지도 모르고 말입니다.
자! 더 이상 하나님을 오해하지 맙시다. 그분을 금송아지로 만들지 맙시다. 하나님에게는 이방인도 유대인도 없습니다. 죄인도 의인도 없어요. 그저 다 자녀들뿐입니다. 하나님께는 성공한 이도, 실패한 이도 없습니다. 다 자녀일 뿐이죠. 그런 하나님을 믿는 우리도 하나님을 핑계 삼아 누군가를 미워하고 다투고 싸우는 일을 멈추길 바랍니다. 스스로 자괴감에 빠지고 먼저 포기하는 일을 멈추었으면 해요. 하나님은 한 번도 나를 포기한 적 없으시고, 하나님은 한 번도 나를 떠나신 적 없으시며, 하나님은 한 번도 나를 잊으신 적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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