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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하는말씀/고린도전서묵상

고린도전서 10 - 좋은 것을 볼 줄 아는 것, 그것이 성령의 역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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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2:10~16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통하여 이런 일들을 우리에게 계시해 주셨습니다. 성령은 모든 것을 살피시니, 곧 하나님의 깊은 경륜까지도 살피십니다. 사람 속에 있는 그 사람의 영이 아니고서야, 누가 그 사람의 생각을 알 수 있겠습니까? 이와 같이, 하나님의 영이 아니고서는, 아무도 하나님의 생각을 깨닫지 못합니다. 우리는 세상의 영을 받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서 오신 영을 받았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선물들을 우리로 하여금 깨달아 알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선물들을 말하되, 사람의 지혜에서 배운 말로 하지 아니하고, 성령께서 가르쳐 주시는 말로 합니다. 다시 말하면, 신령한 것을 가지고 신령한 것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연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영에 속한 일들을 받아들이지 아니합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이런 일들이 어리석은 일이며, 그는 이런 일들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런 일들은 영적으로만 분별되기 때문입니다. 신령한 사람은 모든 것을 판단하나, 자기는 아무에게서도 판단을 받지 않습니다. "누가 주님의 마음을 알았습니까? 누가 그분을 가르치겠습니까?" 그러나 우리는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바울은 십자가를 말하면서 그것이 우리의 기존 상식으로 깨달을 수 없는 것임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보편적 지식으로는 줄 수도, 알 수도 없는 가치라는 사실을 설명하죠. 그래서 세상의 지혜로는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이죠. 이는 오직 새로운 지식과 지혜가 필요하다고 말하죠. 그것이 바로 성령이라고 우리에게 가르칩니다. 성령으로 인해 우리에게 주어진 새로운 지혜로 말미암아 깨닫고 알 수 있는 것이라는 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에서 이런 말씀을 제자들에게 하십니다.

 

요 14:27   나는 평화를 너희에게 남겨 준다. 나는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내가 너희에게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않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아라.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공생애의 마지막 부분에 하신 말씀이죠.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새 계명을 선포하신 후 자신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임을 말씀합니다. 그러신 뒤 성령에 대해 말씀하시죠. 보혜사 성령께서 우리에게 진리의 영으로 오셔서 우리를 지켜 주실 것임을 말씀하죠. 그 가운데 위의 구절이 등장합니다. 그러니까 평화는 성령께서 주시는 선물인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성령을 '은혜로 주신 선물'이라고 말하죠. 선물이라는 뜻의 헬라어를 기억하시나요? [카리스마]입니다. 바로 우리가 은사라고 말하는 그 단어입니다. 은사라는 것은 개인에게 주어진 능력을 말합니다. 영적인 능력뿐만 아니라 자신이 지닌 달란트도 포함된 말이죠. 다른 이들보다 유독 돋보이는 재주들이 각자에게는 있습니다. 그것들이 주님이 주신 은사들이죠. 많은 사람들이 자신만의 은사를 바라고 재주, 달란트가 있기를 바라죠. 어떤 이는 뛰어난 운동신경을, 어떤 이는 공부의 머리를 가졌죠. 다 은사입니다. 어떤 이는 많은 사람들의 위로가 되어주고 어떤 이는 가는 곳마다 하나가 되는 능력이 있습니다. 일치와 화평의 은사죠. 그런데 바울은 그런 은사의 중심이 바로 성령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성령의 은사가 주는 가장 핵심적인 것이 바로 십자가를 볼 수 있는 능력이라고 말하죠. 여기에 요한복음 기자는 성령이 임하면 세상이 줄 수도 없고 알 수도 없는 평화가 우리 안에 깃들 것이라고 말합니다. 성령이 계신 곳에는 그분의 마음과 생각을 아는 역사가 일어난다는 것이죠. 그래서 우리는 평안할 수 있는 것입니다. 

 

좋은 것을 볼 줄 아는 것, 그것이 성령의 역사입니다. 나쁜 환경 속에서도 좋은 것을 찾아낼 줄 아는 것, 어지러운 상황 속에서도 길을 찾을 줄 아는 능력, 이것이 성령의 역사입니다. 십자가의 죽음에서도 부활을 읽을 줄 알고, 참혹한 전쟁 한가운데서도 평화의 그날을 소망할 줄 아는 것, 그것이 성령의 능력입니다. 성령의 은사가 뭐냐고요? 하루 종일 기도하고, 방언하고, 예언을 하는 것보다 지금 내 앞에 있는 사람을 좋게 보는 것, 지금 내 앞의 상황에서 밝은 미래를 볼 줄 아는 것, 그것이 성령의 은사입니다. 그래서 걱정과 근심보다 평안과 위로가, 분노와 화보다 미소와 여유를 가질 수 있는 것, 그것이 성령이 충만한 사람의 모습입니다. 백날 걱정해도 그것은 해답을 주지 못합니다. 마음을 다잡고 침착하고 편안해질 때, 그때 우리는 다시 시작할 수 있기 때문이죠. 분노가 해결해 주는 법은 없습니다. 분노를 가라앉히고 새로운 길을 모색할 때만이 우리는 해결의 길을 걷습니다. 좋게 보는 사람만이 그 길을 찾고요. 좋은 꿈을 꾸는 사람만이 그 길을 걷습니다. 좋은 예단을 하고, 좋은 결말을 꿈꾸며, 좋은 생각으로 다가서는 사람에게만 좋은 역사가 있어요. 그것이 성령의 역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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