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묵상하는말씀/고린도전서묵상

고린도전서 05 - 내가 알고 있는 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반응형

고린도전서 1:18~21   십자가의 말씀이 멸망할 자들에게는 어리석은 것이지만, 구원을 받는 사람인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성경에 기록하기를 "내가 지혜로운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할 것이다" 하였습니다. 현자가 어디에 있습니까? 학자가 어디에 있습니까? 이 세상의 변론가가 어디에 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의 지혜를 어리석게 하신 것이 아닙니까? 이 세상은 그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지혜가 그렇게 되도록 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리석게 들리는 설교를 통하여 믿는 사람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신 것입니다.


칭찬으로 시작한 바울의 서신은 이제 고린도 교회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것으로 이어졌죠. 그리고 그 이야기는 십자가를 설명하는 데까지 이릅니다. 바울은 몇 가지 대비적 수사를 사용하는데요. 그 첫 번째는 분열과 십자가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분열을 멈추고 하나 되는 하나님의 방법임을 분명히 하죠. 그 십자가는 하나님과의 깨진 관계를 회복하는 다리이자 통로로 사용되었고, 경쟁과 경계, 반목과 다툼의 관계 속에 사랑과 이해와 평화를 심는 도구로 세워진 것입니다. 그러니까 고린도 교회의 분열은 십자가와 다른 철학임을 강조한 것이죠. 또한 바울은 우리의 지혜와 십자가를 대비시키기도 합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 우리가 확신하는 것과 다른 하나님의 생각과 계획이 십자가에 담겨 있다는 뜻을 밝히는 것이죠.

 

제자들은 예수님께 바라던 방식이 있었습니다. 그가 나라를 일으키고 민족적 독립과 해방을 가져다줄 것이라고 믿었죠. 그것은 그들이 자신의 재산과 기존의 삶을 다 버리고 선택한 길이었습니다. 그 길은 그들에게 결단이었고 인생을 건 승부였죠. 그 승부가 성공을 거둔다면 그들은 지혜로운 선택을 한 셈이 되는 것이죠.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의 생각과는 전혀 다른 길을 걸으셨습니다. 그들의 선택은 일순간 잘못된 선택처럼 보일만큼 허무하게 깨져버렸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지혜와는 다른 새롭고 산길을 걸으셨죠. 그리고 그 길에서 하나님의 구원과 회복이 시작됩니다. 우리의 생각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말이죠. 이를 두고 하나님은 이미 이사야 55장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죠.

 

사 55:8~9   "나의 생각은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너희의 길은 나의 길과 다르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다. "하늘이 땅보다 높듯이, 나의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나의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다."

 

가끔 제가 정신이 번쩍 들 때가 있습니다. 이런 때죠. 보통 집에서 대화를 하다 보면 제가 뭔가 확신에 차서 우기는 경우들이 종종 있습니다. 어떤 사실에 대해 내가 아는 사실과 상충될 경우 주로 제게서 그런 태도들이 나오죠. '그런 게 아니라 이렇다고..' 내 생각에 확신이 강할수록 나의 주장은 더욱 강해지죠. 그런데 그렇게 우기고 나서 드는 생각이 있어요.

 

'과연 내가 그 사실에 대해 다 알고 있는 것이 맞을까?''혹시 내가 단편적으로만 아는 것은 아닐까?''내가 모르는 다른 사실도 존재하는 것은 아닐까?'

 

이런 생각이 들면 머리가 쭈뼛 섭니다. 혹여라도 내가 모르는 어떤 사실에 편협한 결론을 내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기 때문입니다. 주로 연예인들의 가십거리 뒷담화가 그렇습니다. 누군가 댓글로 '이 사람 이렇데...'라고 하면 그 사실을 마치 진실처럼 우리는 믿어버리죠. 그리고 한술 더 떠서 다른 사람에게 또 전파합니다. 이번에는 '내가 확실히 봤어'라는 가당치도 않는 살을 보태 전하기 십상이죠.

 

지금 내가 알고 있는 것이 전부일까요?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이 전부일까요? 내가 판단한 것이 전부일까요? 보통 지혜라는 말을 쓰며 나의 생각을 고정 관념화하는 것이 맞을까요? 내가 평가한 나, 이웃, 사회, 더 나아가 미래가 과연 맞을까요? 비록 지금 그 사실이 맞다 하더라도 그것이 변화 없이 끝까지 예상대로 흘러갈까요?

 

현자가 어딨고 지혜자가 어딨습니까? 우리의 생각과 예측은 그저 단기적일 뿐입니다. 어느 학자가 그러더군요. 세계적인 석학을 만나 이런 질문을 했다고 해요. "지금 코로나 시대 앞으로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그랬더니 그 석학이 그러더래요. "나도 코로나가 처음인데 어떻게 알겠습니까? 그저 예측일 뿐이죠." 

 

내가 알고 있는 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그저 예측일 뿐이죠. 그렇다면 가능한 한 좋은 예측을 하면 어떨까요? 오늘 춥습니다. 현재 기온이 영하 11도네요. 그래서 오늘 우리의 하루는 꽁꽁 얼어붙을까요? 이 추위에 아무도 거리로 나오지 않을까요? 내가 아무리 예측을 한들, 아무리 추위를 한탄한들, 이 땅은 돌아갈 것입니다. 매 계절이 화사한 봄날 같기를 우리는 바라겠지만 하나님의 시간에는 추위도, 더위도, 시련도 고난도 다 알맞고 정확하게 쓰임 받는 하나님의 계절이 있습니다. 내가 아는 너머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그리스도인에게는 있죠. 그러니 오늘 하루도 내가 알고 있는 것이 다가 아님을 알고 사세요. 내가 알고 있는 것이 전부가 아니기에 우기며 살지 마시고요. 내가 산 시간이 전부가 아니고, 내가 한 경험이 전부가 아니기에 남의 행동이나 삶도 비난하지 마세요. 설혹 가망이 없어 보이는 삶일지라도 그것은 나의 판단일 뿐 하나님의 손에서는 어떤 변화와 다룸이 있는지 기대하는 것이 우리가 갖는 기도가 되길 빕니다. 그렇게 사는 것이 믿음이고요. 용서와 이해입니다.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