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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하는말씀/고린도전서묵상

고린도전서 02 - 좋은 것을 먼저 생각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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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1:3~6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려주시는 은혜와 평화가 여러분에게 있기를 빕니다. 나는 여러분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받은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고, 여러분의 일로 언제나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면에 풍족하게 되었습니다. 곧 온갖 언변과 온갖 지식이 늘었습니다. 그리스도에 관한 증언이 여러분 가운데서 이렇게도 튼튼하게 자리 잡았습니다.


우리 교회는 올해 평안을 기도하고 묵상하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축복하며 인사를 드립니다.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에게 주님이 주시는 은혜와 평화가 충만히 흐르는 올해 되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정말 평안으로 영혼이 채워지기를 원하고 바랍니다. 그런데 그 평안의 단초가 외부에 있지 않습니다. 상황이나 환경이 좋아진다고 평안할 수 있는 것도, 반대로 외부의 공격으로 깨지는 것도 아니라는 거죠. 평안은 나에게 달렸습니다. 마치 내 마음에서 자라나는 나무처럼 관심과 사랑을 먹으며 열매를 맺는 생명입니다. 그것을 바울은 이렇게 설명하죠. 주님이 주신 은혜를 생각하고, 언제나 감사하는 사람이 되라고 말이죠. 이는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과도 연결됩니다. 그것이 평안의 기초입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고린도 교회 사람들을 칭찬합니다. 온갖 언변과 지식이 늘었다고 말이죠. 그리스도에 관한 증언, 그러니까 그리스도를 선포하고 그분의 생각과 철학을 알리는 일이 훌륭하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것이 좀 이상합니다. 바울이 이 편지를 쓰게 된 동기를 보면 그래요. 그는 지금 다급하게 고린도 교회에 편지를 합니다. 고린도 교회가 어려움을 겪고 있었기 때문이죠. 그 어려움이라는 것이 뭘까요? 아직 체계화되지 못한 교회의 질서들이 흔들렸기 때문입니다. 각종 이단 사설들이 등장하고, 고린도 지역의 특성상 부정과 부패, 궤변에 가까운 철학과 도덕적인 무질서가 삶에서 충돌을 일으킨 것입니다. 잘못된 가르침도 있고, 그릇된 삶의 전통과 타협하는 이들도 생겼습니다. 이것이 고린도 교인들을 헛갈리게 만들어 버린 거죠. 그 때문에 바울이 이 편지를 쓰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들의 언변도, 지식도 지금 잘못되고 있는 것이죠. 그런데 그것을 먼저 칭찬을 합니다. 물론 이후 바울은 잘못된 지점들을 지적하지만 그 지적질 이전에 칭찬부터 한다는 사실이 눈에 띄죠.

 

여기서 한 가지,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혼내려거나 책망하는 마음으로 이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느끼게 됩니다. 자신이 세운 교회가 흔들리고 초심을 잃었다면 화가 날만도 한데요. 게다가 각종 잘못된 생각들을 정설로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되어 버린 것이 안타깝기도 했을 거예요. 그럼에도 바울은 그들에게 칭찬부터 합니다. 이것은 그가 분노나 화, 혹은 걱정과 근심으로 인해 이 글을 쓰는 것이 애정을 가지고 편안한 마음에서 침착하게 쓰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 이유는 그가 마음의 평안을 놓치지 않고 있다는 생각에서 입니다.

 

바울은 어렵고 힘든 고린도 교회의 소식을 들었을 거예요. 심각하다는 소식을 들었겠죠. 자신이 편지를 써서라도 뭔가 해보려는 마음이 들 정도로 어렵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겁니다. 그럴 때 우리의 마음은 어떨까요? 저 같으면 다급하고 조바심이 났을 거예요. 그리고 뭐가 잘못인지를 찾았을 겁니다. 누가 나쁜 놈인지, 어떤 문제를 잘라버려야 하는지, 괘씸한 사람은 누군지 분석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 소식 앞에서 제일 먼저 감사할 일을 찾았습니다. 내가 말해야 할 상대방의 좋은 점부터 생각했어요. 좋은 눈으로 이웃을 바라보고, 좋은 생각으로 그들을 먼저 바라본 거죠. 그것이 바울에게 조바심보다는 안정을, 분노보다는 평안을 가져다주었는지도 모릅니다. 아무리 잘못되었어도 그중에 잘한 것이 분명히 있고, 아무리 지금 문제였어도 처음에는 다 잘해 보려고 했을 거예요. 바울은 그중에 잘하고 좋은 점을 먼저 생각했습니다. 그것이 자신 스스로 평안을 놓치지 않는 방법이었기 때문이죠.

 

좋은 눈으로 바라보라는 말씀을 많이 드리죠? 좋은 생각, 좋은 느낌을 유지하라고 말이죠. 그 이유는 남을 위한 것도, 무슨 착한 사람이 되라는 것도 아닙니다. 그것이 내 마음의 평안을 지키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에요.

 

괴로울 때 주님의 얼굴 보라평화의 주님 바라보아라

 

평안은 능력입니다. 괴로울 때 주님을 바라볼 수 있는 능력, 흥분되고 주체할 수 없는 분노가 치밀 때 그중에서도 감사함을 찾을 수 있는 능력 말이죠. 그 능력의 시작은 좋게 보는 겁니다. 그것은 속는 것이 아니에요. 세상에 100% 악은 없습니다. 완벽한 잘못도 없어요. 그중에 시작은 선했을지도 모르고, 단 하나라도 칭찬할 일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다른 사람들이 다 욕을 해도 내가 좋은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이 있다면 내 눈에 여전히 좋아질 가능성이 생기는 것입니다. 거기서 여유가 생기고 안심이 되죠. 그렇게 평안은 새로운 출발의 가능성을 만듭니다.

 

 좋은 것을 먼저 생각하세요. 나에게도 쓸모 있는 것이 있고, 그 누군가에게도 좋은 구석이 있습니다. 정신없는 어려움 속에도 감사할 일이 있고, 막막한 삶에도 솟아날 구멍이 있습니다. 누구나 하는 절망보다 좋은 것을 보는 능력을 키우세요. 그것이 진짜 언변이고 지식인지도 모릅니다. 좋은 눈이 열린 길을 봅니다. 좋은 생각이 기대를 낳죠. 좋은 느낌은 돕는 손길을 끌어당깁니다. 좋은 것부터 보세요. 좋은 것부터 생각하고 말하세요. 그 속에 나의 평안이 자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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