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3:16~23 여러분은 하나님의 성전이며, 하나님의 성령이 여러분 안에 거하신다는 것을 알지 못합니까?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파괴하면, 하나님께서도 그 사람을 멸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아무도 자기를 속이지 말아야 합니다. 여러분 가운데서 누구든지 이 세상에서 지혜 있는 사람이라고 스스로 생각하거든, 정말로 지혜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하여 어리석은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 세상의 지혜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어리석은 것입니다. 성경에 기록하기를 "하나님께서는 지혜로운 자들을 자기 꾀에 빠지게 하신다" 하였습니다. 또 기록하기를 "주님께서 지혜로운 자들의 생각을 헛된 것으로 아신다"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아무도 사람을 자랑하지 말아야 합니다. 모든 것이 다 여러분의 것입니다. 바울이나, 아볼로나, 게바나, 세상이나, 삶이나, 죽음이나, 현재 것이나, 장래 것이나, 모든 것이 다 여러분의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것이요,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것입니다.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우리의 정체성이 무엇인지를 정의합니다. 그는 우리가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말하죠. 그러면서 그 성전을 파괴하지 말하고 권면합니다. 나를 파괴하는 것이 곧 하나님의 성전을 파괴하는 일이라고 말하는 것이죠. 그러면서 세상에서 지혜롭다고 하는 것은 헛된 것이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의 연관관계를 찾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성전을 무너뜨리고 공동체를 깨뜨리는 가장 큰 중심에는 나 스스로 자신을 파괴하는 것이 있습니다. 내가 바로 성전이기 때문이죠. 그렇다면 나 스스로 파괴한다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지금까지 우리가 누누이 묵상했던 것이 다시 등장합니다. 내 안에 분란과 시기, 다툼과 미움 등 갖가지 부정적인 생각이 자리 잡는 것 자체가 나를 파괴하는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잘못될까 걱정하고, 안 될 것을 예상하는 모든 생각들이 나에게서 기쁨도 감사도 평안도 빼앗죠. 그 자체가 성전을 파괴하는 일일지도 모릅니다. 거기에 세상의 지혜가 한몫하죠. 지혜라는 말로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들은 걱정 투성이입니다. 이러면 어쩌지? 저러면 어쩌지? 수많은 걱정들을 미리 하죠. 세상의 뉴스들은 우리에게 수많은 정보를 제공합니다. 그런데 그 정보들의 대부분은 우리에게 선입견을 주죠. 뉴스의 대부분은 우리 속에 경계심을 각인시킵니다. 사고를 낸 이들은 끔찍해서 욕을 하고, 각종 예측들은 음모론으로 변질되어 반감에 사로잡히게 만들죠. 교리들, 철학, 지식, 심지어 부모가 자식에게 해 주는 교훈까지도 마음이 훈훈하고 따뜻해지는 말은 없습니다. 온통 조심해라, 그러다 탈 난다, 실패한다, 후회한다의 연속입니다.
바울은 사람을 자랑하지 말라고 하죠. 이는 설명이 좀 필요합니다. 사람을 자랑하지 말라는 말과 동시에 그는 모든 것이 여러분의 것이라는 약간 생뚱맞은 이야기를 합니다. 이것은 사람들이 하는 말, 어떤 훌륭하고 유명한 말들, 어떤 결과물들 자체가 중요하지 않다는 말입니다. 그 말들이나 이론들, 결과들로 인해 내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해 그것들이 있다는 말이죠. 이 말은 정말 중요합니다. 저는 오늘 본문에서 바울이 우리에게 준 가장 중요한 메시지가 담겨있다고 생각해요. 그것은 모든 만물이 우리를 위해 존재한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만물을 주셨습니다. 심지어 우리를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기도 하셨죠. 그러나 우리는 어느 순간부터 만물이 우리를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만물을 위해 있는 존재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것을 성경은 죄라고 말하죠. 그런데 이 죄 아래에서 교회가 있고, 신앙이 존재하는 경우들이 있어요. 마치 우리는 버러지 같아서 아주 비천한 존재로, 쓸모없는 존재로, 그것이 마치 신앙 인양, 겸손 인양 그렇게 살아가야 하는 모습이 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그 반대의 이야기를 들려주죠. 어떤 훌륭한 것도, 아름다운 것도, 모두 나를 위해 있는 것이라고요. 나를 평안케 하지 않는 것들은 제 아무리 훌륭해도 소용없는 것이라고요.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이 뭘까요? 돈일까요? 돈이 아무리 좋아도 나를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아무리 좋은 충고여도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면 무슨 필요가 있나요? 나의 평안을 깨는 말이라면, 나에게서 기쁨과 감사를 주지 못하는 말이라면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제가 목사여서 주로 조언들을 자주 합니다. 예전에는 충고들을 많이 했어요. 옳은 말을 전하는 것이 제 일인 줄 알았죠. 그런데 그 말을 알아듣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오해하는 사람도 있더라고요. 그런 일이 있을 때 당혹스러웠습니다. 좋은 마음으로 옳은 이야기를 하면 다 통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었으니까요. 그러면 이렇게 생각했었습니다. 들을 귀 있는 자들만 들을 수 있는 거라고 말이죠. 결과를 듣는 자에게 떠 넘겼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생각이 바뀌었어요. 아무리 좋은 말이라도 그를 위한 말이 아니라면 무슨 소용일까 싶었습니다. 아직 들을 수 없는 상황이라면 아무리 좋은 말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었어요. 그러고 보니 바울 사도도 어린아이에게는 소화할 수 없는 음식을 주지 않는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바꿨습니다. 가장 좋은 말은 그가 듣고 싶은 말이라고요. 그렇게 마음이 평안하고 열려야 듣고 싶지 않은 말들에 귀도 열린다고 말이죠. 그래서 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말이 아니라 상대방입니다. 좋은 교리나 메시지가 아니라 그 사람의 상황과 상태, 그분에 대한 이해와 사랑이라고요.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도 이 하루는 나를 위해 있습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하루에 내가 덤으로 있는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해 하나님이 하루를 만드신 겁니다. 그래서 오늘 벌어지는 모든 일은 나를 위해 있는 일들이에요. 너무 생경하신가요? 그런데 진짜입니다. 지금까지 나를 위해 만들어진 하루를 내가 내 것이 아닌 것처럼 살았을 뿐이에요. 이제 모든 것이 다 나를 위해 있음을 알고 오늘을 열어보세요. 버스도, 지하철도 나를 위해 빨리 오기도 늦게 오기도 하죠. 누군가 잔소리도 나를 위해 있고, 시간 맞춰 열리는 신호등도 나를 위해 있습니다. 그렇게 내가 나를 위해 살아가면 그곳에 나를 만드신 하나님이 계십니다. 하나님이 나를 위해 일하시니 세상도 나를 위해 존재하게 만드세요. 그때 나의 성전이 온전히 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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