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4:7~8 누가 그대를 별다르게 보아줍니까? 그대가 가지고 있는 것 가운데서 받아서 가지지 않은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모두가 받은 것이라면, 왜 받지 않은 것처럼 자랑합니까? 여러분은 벌써 배가 불렀습니다. 벌써 부자가 되었습니다. 우리를 제쳐놓고 왕이나 된 듯이 행세하였습니다. 여러분이 진정 왕처럼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하여 우리도 여러분과 함께 왕 노릇 하게 되면, 좋겠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세 가지 질문이 나옵니다.
'누가 그대를 별다르게 보아줍니까?'
'그대가 가지고 있는 것 가운데 받아서 가지지 않은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모두가 받은 것이라면 왜 받지 않은 것처럼 자랑합니까?"
이 질문은 바울이 이 고린도 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 하고자 하는 말이었을 거예요. 그 고린도 교회에는 이런 류의 사람들이 많았다는 것을 반증하죠. 그렇다면 어떤 사람들이었을까요? 아마도 그리스도의 복음을 소유했다고 말하는 사람들 중에는 자신을 특별한 존재로 취급하는 이들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특별한 존재라는 말을 저는 좋아합니다. 우리는 모두 특별한 존재들이니까요. 세상에서 나 하나밖에 없는 그런 존재죠. 누구와 비교할 수 없는 하나님이 만드신 특별한 존재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특별함이란 다른 사람과 비교하는 특별함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니까 나 혼자 잘났다는 특권의식이었던 거죠. 요즘도 가끔 우리는 그리스도인이라는, 혹은 교회라는 특권의식을 가진 경우들을 봅니다. 구원받은 것을 대단한 지위를 얻은 양 자랑하는 사람들이 있죠. 물론 구원받는 일은 칭찬하고 존중받을만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나만의 특권은 아니죠. 모든 사람에게 열려있는 특권이고, 또한 그 모든 이들이 걸어야 할 길입니다. 이는 그저 조금 먼저 걸어갔을 뿐이고, 이제 다른 이들에게 조금 더 용기를 줄 수 있는 자리에 있을 뿐이죠.
타 종교를 바라보는 종교인들의 의식도 그렇습니다. 마치 심하게 말하면 타 종교인 들을 무슨 벌레 보듯 하는 경향이 있죠. 하나님 앞에는 의인도 죄인도 없습니다. 그분은 그저 생명으로, 그리고 자녀로 우리를 보시죠. 때론 죄로 고달파하는 우리를 보시며 안쓰러워하시고, 때론 의로운 길을 걸으며 행복해하는 우리로 인해 기뻐하실 뿐입니다. 그분의 생각은 우리가 잘되기를 바라실 뿐, 죄인과 의인을 구분하여 차별하는 경우는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런 구분을 짓는 경우들이 너무 많죠. 그것이 고린도 교회에도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 차별은 서로 간의 다툼과 분열로 이어졌을 뿐만 아니라 복음의 진짜 의미를 잃게 만들었던 것 같아요.
두 번째 질문은 더욱 강력합니다. 우리에게 받은 것 말고 가진 것이 무엇인가를 묻죠. 우리는 창조주 하나님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드셨음을 고백하죠. 다시 말해,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왔음을 인정합니다. 그것이 우리 신앙의 기초죠. 내 마음에 들건 안 들건 나에게 있는 모든 것은 주님이 나를 위해 주신 것임을 인정할 때 비로소 하나님이 나의 창조주가 되십니다. 원하고 바라는 것은 물론, 원치도 바라지도 않은 일조차도 하나님의 섭리로 여기며 헤쳐나가는 것이 우리의 신앙이죠. 모든 일이 나를 위한 일임을 고백하고, 모든 순간이 나로 인해 있는 시간임을 믿는 것이 믿음입니다. 내가 다 이해하든, 그렇지 않든, 다 알든 모르든, 나에게 주어진 현실에 주님의 손길이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 은혜죠. 그러니 자랑할 것이 없는 것입니다. 잘 나간다고 자랑할 것도, 쓰러졌다고 낙심할 것도 없는 거죠. 그 모든 것이 나를 위한 일임을 안다면 부러워할 것도, 시기할 것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비교하며 경쟁하며 살 이유도 없습니다. 이것이 세 번째 질문이죠.
이어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분란을 일으키는 이들을 향해 배가 불렀다고 말합니다. 저는 이 의미를 정확히는 잘 모르겠어요. 먼저 든 생각은 약간의 비유적 표현일까 싶었습니다. '배가 불렀구나?'라는 풍자적 표현으로 말이죠. 그런데 그다음에 나오는 '벌써 부자가 되었다'는 말에서 이것이 풍자라기보다 사실에 더 가까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니까 고린도 교회 교인들이 실제로 잘 살고, 풍요로운 삶을 누렸다는 것이죠. 사실 고린도 지역은 당시 무역 도시로 풍요로웠습니다. 전체적으로 잘 사는 도시였던 거죠. 그러나 저는 그보다 신앙적인 면에서도 고린도 교회 사람들의 풍요도 있었을 것이라는 추측을 합니다. 초창기 고린도 교회는 복음을 가지고 서로를 위하고 돕는 그런 공동체였습니다. 여느 초대교회처럼 서로 가진 것을 나누고 사랑의 교제를 하는 공동체였죠. 그러다 보니 많은 사람들로부터 평판이 좋았고, 이는 그들이 하는 일에도 영향을 미쳤을 것입니다. 그 영향은 실질적으로 사업이나 일에까지 이어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진정한 평안을 소유한 그리스도인들의 삶이 실제적으로 형통할 수 있음을 믿습니다. 좋은 생각을 하고 좋은 시선을 지니며 늘 잔잔한 평안으로 온유와 절제, 기쁨과 감사를 이어가는 삶이라면 이웃과의 관계도 좋을 것이고, 그를 좋게 보는 사람들도 늘 것이며, 또한 함께 하고픈 이들이나 같이 일하고자 하는 사람들까지 주위에 생길 것이라는 데 이견이 없습니다. 실질적 신앙이 우리 삶의 형통에 미치는 영향이 분명히 있다고 저는 믿습니다. 평안한 이들이 형통하는 비결이죠. 초대교회, 특별히 고린도 교회 교인들이 그랬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들에게 그 평안이 깨졌다는 것이죠. 어느 순간부터 서로 분쟁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차별과 다툼, 시기와 질투들이 일어나고 비교의식들이 퍼지며 대립하게 된 것이죠. 그 순간, 자신에게 주어진 은혜와 사랑, 용서와 기적이 모두 자신의 능력에서 온 것처럼 여겼던 것 같아요. 심지어 구원까지도 자신들이 잘나서, 자신들이 똑똑해서, 자신들만의 특권으로 얻은 것처럼 행세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자신의 생각이 다 옳고, 자신이 모든 결정의 주인인 것처럼 여겼던 거죠. 부유한 것도 하나님의 축복을 많이 받아서 그런 것이라고 하지 않았을까요? 물론 주님의 은혜로 우리가 부유해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들이 주장하는 것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지 못한 이들과의 비교의식에서 나오는 것이었으니, 이른 축복의 고백이 아니라 차별의 고백이 되는 셈이죠.
간혹 이런 교회 관련 뉴스를 접할 때가 있습니다. 쓰나미로 수많은 사람들이 재난에 빠진 것을 두고, 그 나라는 예수를 믿지 않아서 저주를 받은 것이라는 설교가 선포되었다는 기사입니다. 어떤 이들은 가난한 이유를 예수를 몰라서 그렇다고도 하죠. 앞뒤 문맥을 자르고 어떤 메시지를 평가할 수는 없습니다. 또한 이런 류의 메시지에도 의미를 부여할 수 있겠죠. 다만 기본적으로 남과 나를 구분하거나 특권의식에 빠진 생각이라면 그것은 그리스도의 복음과는 거리가 먼 것이라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그분은 의인을 사랑하시는 것이 아니라 생명을 사랑하시고, 교회만 사랑하시는 것이 아니라 세상까지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눈에는 아직 죄인이어도 여전히 가능성 있는 자녀들이고, 그분의 생각에는 영과 속, 죄와 의, 광야와 가나안의 구분이 없으시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이 다 아름다운 성숙의 과정에 필요한 것들일 뿐이기 때문이죠.
우리가 은혜를 받은 것은 특별한 것이 아닙니다. 다 제 자리로 돌아가는 것뿐이에요. 우리의 일이 형통하게 되는 것도, 우리의 마음에 평안이 찾아오고, 기쁨과 감사로 채워지는 것도 무슨 대단한 일이 아닙니다. 그저 나의 제 자리로 돌아가는 것뿐입니다. 우리는 본래 행복하고 평안하며 늘 웃음이 있는 자리에 있어야 합니다. 다만 그 자리에서 잠깐 벗어나 있었을 뿐이죠. 우리의 제 자리는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그분의 손길에 움직이며, 늘 그분과 동행하는 삶입니다. 우리의 제 자리는 하는 일마다 잘 되고, 늘 풍성한 것으로 채워지며, 매일매일 기적 같은 주님의 인도하심에 이끌린 삶입니다. 그것이 제자리예요. 모든 것이 제 자리로 돌아가는 것, 우리가 가려는 신앙의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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