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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하는말씀/고린도전서묵상

고린도전서 18 - 교리가 일하는 법은 없습니다. 오직 사람이 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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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4:14~16   내가 이런 말을 쓰는 것은 여러분을 부끄럽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나의 사랑하는 자녀들같이 훈계하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에게는 일만 명의 스승이 있을지 몰라도, 아버지는 여럿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복음으로 내가 여러분을 낳았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여러분에게 권합니다. 여러분은 나를 본받는 사람이 되십시오.


나를 본받으라는 말은 쉽게 할 수 있는 말이 아닙니다. 어쩌면 이 말을 우리는 교만으로 받아들일지도 모릅니다. 또한 어느 경우에는 자신만이 옳다고 주장하는 자만처럼 보이기도 하죠. 저 같으면 이런 표현 절대 못쓰죠. 부끄럽기도 하고, 자신이 없기도 해서 그렇습니다. 그러면 바울이 자신감이 넘쳐서 이런 말을 하는 것일까요? 오히려 저는 오늘 본문에서 바울의 부끄러움을 읽습니다.

 

바울은 아시다시피 유대교 종교지도자였습니다. 학자였죠. 많은 이들에게 종교적 법전을 가르치는 사람이었습니다. 유대교의 우월의식은 정평이 나있죠. 그래서 그는 가르칠 때 매우 도전적이었습니다. 다른 것들은 무시하고 저주하며 자신의 것들을 주장했었죠. 남의 것은 부정하며 자신의 것을 정당화했습니다. 그래서 늘 유대교는 지역사회의 분란을 가져왔어요. 그런데 그가 유대교를 떠나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자신의 학문적 세계관이 얼마나 짧고 작았는지를 깨달았고, 새로운 세계관으로 진입했던 것이죠. 가장 달라진 점은 그가 중요하게 생각한 최고의 가치가 자신의 가르침이 아니라는 것이었습니다. 자신이 믿고 따르는 철학이 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되지 않았어요. 이제 그에게 중요한 것은 사람이었습니다. 이웃이었고, 생명이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렇게 소중히 생각하는 것이 바로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생명을 위해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일하실 하나님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그 인간을 위해 인간으로 오셔서 십자가를 지시기까지 하셨음을 알았기 때문이죠. 다시 말해 바울은 지금까지는 자신이 발견한 지식, 자신의 논리가 사람보다 중요했었던 거죠. 그래서 그 논리를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은 죽이기까지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를 알고부터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논리까지 꺾으시며 사람을 사랑하시는 것을 본 것입니다. 인자가 무엇이관데 주께서 저를 생각하시는지를 깨달은 것이죠. 학자로서 완전히 달라진 가치관을 갖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고린도 교회에서 잊었던 자신의 옛 모습을 발견했습니다. 바로 고린도 교회를 분란으로 이끄는 이들을 통해서죠. 그들은 사람이 아니라 교리가 더 중요했고, 그들은 사랑이 아니라 철학이 더 중요했습니다. 그래서 자신들의 논리를 주장하고 그것을 따르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구분했죠. 이에 그치지 않고 서로가 싸웠습니다. 철학이 없는 이들을 매도하고 저주했죠. 그렇게 차별을 두었습니다. 그들에게는 사람보다 논리가 더 중요했던 것이죠. 이를 보며 바울은 자신의 옛 모습이 떠올랐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안타까웠을지도 모르죠. 그래서 이런 말을 하죠.

 

"일만 명의 스승이 있을지 몰라도, 아버지는 여럿이 있을 수 없습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논리로 우리를 다스리셨다면 우리는 지금 씨가 말라 있을지도 모릅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당신의 철학을 우리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셨다면 이 인류는 사라졌을지도 몰라요. 그 철학과 논리에 정확히 들어맞는 인간은 없었을 테니까요. 조금의 실수로도 우리는 용서받지 못했을 것이고, 조금의 실패로도 우리는 돌이킬 수 없었을 테죠.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스승이 되기를 원치 않으시고 우리의 아버지가 되셨습니다. 교리를 목적하지 않으시고 사랑을 선택하셨죠. 그것이 바로 복음의 원리입니다. 바울이 자신을 본받으라고 한 것은 바로 이 부분입니다. 

 

가르침은 누구를 위한 것입니까? 훈계를 누구를 위한 것이죠? 잔소리와 시험은 누구를 위한 것입니까? 어느 순간 그 누구를 위한 것이 바로 가르침, 훈계나 잔소리에 있다면, 그것들은 누군가를 해하고 공격하는 화살이 될지도 모릅니다. 아니 찌르고 죽이는 칼이 될 수도 있어요. 그래서 남는 것이 무엇일까요? 교리만 남을까요? 철학만 남나요? 그 교리와 철학은 스스로 존재할까요?

 

교리가 일하는 법은 없습니다. 오직 사람이 일합니다. 말씀이 일하는 법은 없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를 통해 일하는 것입니다. 내가 아무리 옳은 말을 해도 그 말로 세상이 바뀌지 않습니다. 그 말이 내가 되고, 남이 되고, 사람이 되어서 표현되어야 세상이 바뀌죠. 내 가르침이 아무리 뛰어나도 사람을 살리는 가르침, 사람에게 심기는 가르침이 아니라면 허공에서 울리는 꽹과리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니 말보다 사람입니다. 옳은 주장보다 사랑이 더 중합니다. 누군가를 부끄럽게 만들고, 코를 납작하게 만드는 주장과 철학은 잠시 우리를 우쭐하게 만들지는 몰라도 사람은 잃습니다. 아무것도 안 남아요. 오히려 사람에게 희망을 주고, 용기를 주는 말과 철학, 생명에게 기운을 불어넣는 주장만이 영원히 남습니다. 우리의 말이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희망을 주는 말, 용기를 주고 힘이 되는 말, 지적질보다 기회를 주는 말, 웃을 수 있고, 마음이 따뜻해지는 말, 그렇게 생명에게 전달되어서 더 커질 수 있는 말을 하는 우리이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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