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5:1~5 여러분 가운데 음행이 있다는 소문이 들립니다. 자기 아버지의 아내를 데리고 사는 일까지 있다고 하니, 그러한 음행은 이방 사람들 가운데서도 볼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여러분은 교만해져 있습니다. 오히려 여러분은 그러한 현상을 통탄하고, 그러한 일을 저지른 자를 여러분 가운데서 제거했어야 하지 않았겠습니까? 나로 말하면, 비록 몸으로는 떠나 있으나, 영으로는 함께 있습니다. 마치 여러분과 함께 있듯이, 그러한 일을 저지른 자를 이미 심판하였습니다. [우리] 주 예수의 이름으로 여러분이 모여 있을 때에, 나의 영이 우리 주 예수의 권능과 더불어 여러분과 함께 있으니, 여러분은 그러한 자를 당장 사탄에게 넘겨주어서, 그 육체는 망하게 하고 그의 영은 주님의 날에 구원을 얻게 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묵상은 오래 걸렸습니다. 난감함이 밀려왔기 때문입니다. 이는 글로 표현하기조차 어려운 음행의 문제 때문만은 아닙니다. 어떤 잘못에 대해 사람을 처리하는 방식에 대한 문제 때문입니다. 본문의 내용은 간단합니다. 고린도 교회의 구성원 가운데 어머니와 결혼 생활을 하는 이가 있었던 모양입니다. 상상하기 힘든 일이죠. 바울은 이와 같은 일은 이방인들조차 하지 않는 일이라고 못을 박으면서 그 행위가 불손한 것임을 분명히 합니다. 그리고 그런 이들을 공동체가 치리 할 수 있어야 한다고 하죠. 그 방법으로 공동체에서 쫓아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아마도 고린도 교회는 이런 문제를 알면서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고린도 지역이 당시 성적인 개방성이 컸던 탓에 어물쩍 넘어가는 경향이 있었겠지만 바울이 고린도 교회를 향해 교만하다고 하는 것으로 보아 공동체의 정이나 사랑이라는 미명 하에 이런 문제들을 그저 덮어주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 문제를 바울은 정면으로 지적하고 있는 것이죠.
그런데 저는 이 부분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과연 쫓아내는 것이 정답일까 싶은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말씀을 적용하며 묵상하길 바라는 이 시간, 내 공동체에서 잘못한 사람은 쫓아내고 상종하지 말라고 결론을 내리기에는 아쉬움이 있었기 때문이죠. 게다가 오늘 본문과 같은 음행의 문제는 지금 현실에서는 당시보다는 가능성이 현저히 낮은 것도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고대에 형사취수라는 제도가 있었죠. 형이 죽으면 그 아내를 동생이 이어 대를 잇는 그런 제도였습니다. 유대인들에게도 있었던 제도죠. 오늘날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그때는 있었습니다. 아버지의 아내를 취하는 행동은 구약에서도 버젓이 등장하기도 합니다. 오늘 본문의 예에도 어머니라고 하지 않고 아버지의 아내라고 한 것으로 보아 친모는 아닐 것으로 추측이 되고, 데리고 살았다는 것으로 보아 이는 아버지가 없는 경우에 속하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물론 그런 행동을 정당화하고자 하는 뜻으로 드리는 말씀은 아닙니다. 오늘 묵상하는 우리에게는 조금 먼 이야기라는 사실을 말씀드리고자 할 뿐이죠. 그래서 오늘 본문을 우리 삶에 적용하려는 묵상이 어렵다는 이야기를 드리는 것입니다.
다만 저에게 중요한 묵상의 키가 되는 말씀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고린도 교회의 상황들도, 어떤 음행의 문제도 아니었어요. 다른 사람의 일도 아니고, 누군가를 정죄하는 일도 아니었어요. 오로지 나의 일, 내 안의 문제들을 보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안에 나쁜 생각들이 자리하죠. 불안과 염려들도 있고, 걱정거리들도 많습니다. 누군가를 경계와 시기로 바라볼 때도 있고, 좋은 것보다는 나쁜 점들을 유독 더 잘 보기도 합니다. 상상도 좋은 상상보다는 나쁜 상상을 더 많이 할 때가 있어요. 안 좋은 결론이 이미 머리에 들어와 있고, 잘못될 것 같은 상상에 잠을 못 이루는 경우도 많죠. 누군가를 미워하거나 복수하고픈 마음들이 한편에 있고, 비교하며 부족한 처지를 한탄할 때도 많습니다. 그런 나쁜 생각들에는 어둡고 음란한 생각들도 자리하죠. 그런데 그런 생각들을 우리는 내버려 둡니다.
'그냥 생각인데 뭘~'
이런 태도로 생각은 아무 제지를 받지 않아요. 행동하지 않은 상상은 아무 죄가 없다는 듯 우리의 머리에서 활개를 치죠. 그래도 제지하거나 잘라내는 행동을 하지 않습니다. 드러나지 않았기에 문제도 없다는 식이죠. 그것을 바울은 교만이라고 칭합니다. 그리고 온전한 평안을 위해 그 생각을 잘라내야 한다고 말하죠.
생각이 나를 결정합니다. 내가 괜찮다고 허용한 생각이 나의 미래가 되죠. 오늘 내 머리에 있는 생각이 내일의 내가 됩니다. 나쁜 결과를 오늘 상상하면 내일은 그 나쁜 결과 가운데 내가 있습니다. 생각이 현실이 아니라고 쉽게 놔두면 그 생각대로 현실이 만들어집니다. 그러니 내 생각에 함부로 아무거나 설치게 놔두지 마세요. 내 생각에 오물들이 떨어져 지저분하게 만들지 않도록 하세요. 하루가 가기 전에 꼭 청소를 하세요. 찜찜한 것들을 내 생각에 두지 마시고, 불편한 마음들은 남겨두지 마세요. 현실은 어려워도 내 생각만큼은 깔끔하고 맑게 하세요. 그 생각대로 현실이 이루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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