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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하는말씀/고린도전서묵상

고린도전서 22 - 나만 잘하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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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5:9~13   내 편지에서, 음행 하는 사람들과 사귀지 말라고 여러분에게 썼습니다. 그 말은, 이 세상에 음행 하는 사람들이나, 탐욕을 부리는 사람들이나, 약탈하는 사람들이나, 우상을 숭배하는 사람들과, 전혀 사귀지 말라는 뜻이 아닙니다. 그러려면, 여러분은 이 세상 밖으로 나가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내가 여러분에게 사귀지 말라고 쓰는 것은, 신도라 하는 어떤 사람이 음행 하는 사람이거나, 탐욕을 부리는 사람이거나, 우상을 숭배하는 사람이거나, 사람을 중상하는 사람이거나, 술 취하는 사람이거나, 약탈하는 사람이면, 그런 사람과는 함께 먹지도 말라는 말입니다. 밖에 있는 사람들을 심판하는 것이, 나에게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여러분이 심판해야 할 사람들은 안에 있는 사람들이 아니겠습니까? 밖에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 악한 사람을 여러분 가운데서 내쫓으십시오.


오늘 본문을 보면 이해가 필요한 부분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미 바울이 음행 하는 사람들과는 사귀지 말라고 고린도 교회에 편지를 보냈다는 표현입니다. 이로 인해 고린도 교회는 또 다른 문제가 있었던 것으로 보이죠. 정죄하는 문제였습니다. 더 나아가 세상 사람들과 구별하면서 자신들만의 그룹을 만들려고 하지 않았나 싶어요. 일단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이미 그런 문제들이 발생했다는 점입니다. 이는 오늘의 서신보다 먼저 보낸 서신이 있었다는 말이죠. 그 서신이 어떤 책인지, 혹은 언제 보내진 것인지 밝혀진 바는 없습니다. 다만 이 글로 보아서는 고린도전서 이전의 서신이 있었다고 추측할 수는 있을 것 같아요.

 

이런 상황을 종합해서 오늘 본문을 읽으면 바울이 전하고자 하는 내용은 간단히 이렇습니다. 잘못된 것에 동조하지 않는 것이 좋지만 그렇다고 사람과의 관계를 완전히 끊을 수는 없다는 뜻이죠. 이게 참 어렵습니다. 잘못된 길을 가고, 나쁜 영향에서 벗어나려면 우리는 관계를 끊어야 합니다. 그것이 가장 쉬운 방법이죠. 이미 고린도 교회가 그런 방법을 택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우리가 그렇게 살 수 없다고 말하죠. 우리는 세상을 떠나 살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라는 말까지 합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떻게 하라는 말일까요?

 

일단 고린도전서 5장을 읽으면서 우리는 공동체의 문제를 내면의 문제로 국한해서 묵상해 왔습니다. 오늘 본문도 그런 관점에서 묵상하기를 저는 원합니다. 다만 공동체 내의 사람 관계는 우리의 삶에 중요한 문제이기에 이 부분을 관계적인 측면에서 잠시 생각하고 넘어갔으면 합니다. 우리에게도 이 문제는 현실적인 문제가 되기 때문이죠. 공동체 안에, 혹은 내 삶의 자리 안에 나와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다른 생각을 넘어 안 좋은 영향을 주는 이들이 있죠. 특별히 매우 부정적이고 극단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들은 또 소리도 크죠. 소수이지만 영향력은 큽니다. 이미 그런 사람들을 내쫓으라고 바울이 말한 것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게는 못 살죠. 왜냐하면 나와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단절하면서만은 살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관계를 쳐내다 보면 우리는 혼자가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죠. 그렇다고 가만히 놔두라는 말씀도 아닙니다. 정말 어렵죠? 일단은 우리가 관계 속에서 해야 할 첫 번째 과제는 정죄하지 않는 것입니다. 나와 다른 생각을 해도 사람은 정죄해서는 안 됩니다. 사람이 좋아서도, 혹은 훗날을 기대해서도 아닙니다. 아직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포기하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그를 판단하시고 심판하시기 전에 내가 먼저 심판할 수 없기 때문이죠. 그렇다면 그의 생각에 동조하라는 말일까요? 이도 아닙니다.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사랑이지만 그 사랑이 그의 생각까지 동조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사랑하나 그의 생각에는 거부할 수 있는 권리가 있습니다. 가령 이런 예를 들어보죠. 공부를 하지 않으려는 아이가 있는데 나는 그를 성장시킬 선생이라고 치자고요. 아이는 공부하지 않을 수만 가지 이유를 듭니다. 그런 이유 가운데는 합리적이고 타당한 이유들도 있죠. 그러나 선생인 나는 그 아이를 정죄하지 않습니다. 관계를 끊지도 않죠. 그렇다고 혼내거나 화내지도 않습니다. 그 이유를 넘어 나는 나의 할 일을 할 뿐이죠. 

 

많은 사람들이 관계 속에서 어려워하는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내가 가르치려고 하는 것이죠. 내가 옳고 상대방이 틀리다면 내가 가르쳐서 상대방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합니다. 그러다 보니 싸우고 관계가 끊어지기도 하죠. 우리의 생각과 뜻을 전하는 방법은 상대방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그들이 어떻건 나의 일을 할 뿐입니다. 나만 잘하면 된다는 설교 제목을 기억하시나요? 그런 말입니다. 남을 탓하고, 그들 꺾고, 잘못을 밝혀내면서 내가 옳음을 증명하려는 것은 상대방을 사랑하는 방법이 아닙니다. 그들에게 동조하지 않는 것만으로 경고는 충분합니다. 직접 '너는 잘못하고 있어!'라고 말하지 않아도 그 생각을 따라가지 않는 것만으로도 지적은 충분해요. 그의 이야기를 다 들어주고, 다 이해해 주는 이유는 그들의 생각을 굴복시키려는 뜻이 아니라 나의 일을 그저 묵묵히 해 낼 기회를 잃지 않기 위해서죠. 

 

나쁜 이야기를 들었나요? 누군가 쑥덕거리는 소리를 들었습니까? 안 좋은 이야기를 퍼 나르는 이들을 보았어요? 그래서 기분이 안 좋으신가요? 그런 이야기 하면 안 되는데... 이런 생각을 하시죠? 누군가 잘못된 길을 가는 것을 보면 불안하시죠? 저 사람 구해줘야 하는데... 이런 마음 들죠? 참 선한 마음입니다. 그런데 할 수 있는 일이 있으신가요? 그런 말 하지 말라고 내가 말하면 그 사람이 순순히 '내가 잘못했어요'하고 돌아설까요? 잘못된 길을 가던 사람이 내가 붙잡으면 돌이킬까요? 내가 그런 능력자일까요? 진짜 능력은 상대방을 돌이켜 세우는 것이 아닙니다. 진짜 능력은 그런 나쁜 말, 나쁜 생각, 나와 다른 마음과 뜻을 확인하고도 내가 좋게 봐주고, 내 안에 평안을 유지하는 것이에요. 다른 사람은 나의 지적이나 말의 능력에 변하는 것이 아니라 늘 좋은 마음과 기분을 유지하고 늘 언제나 한결같이 그 자리에서 나와 함께 하는 평안의 능력에 굴복합니다.

 

또 이런 제목을 달아야겠네요. 나만 잘하면 됩니다. 내 것만 잘 챙기면 돼요. 다른 사람이 잘못하는 것에 열 내지 마세요. 다른 사람들이 나쁜 말하는 데 속상해하지 마세요. 그건 그들의 문제일 뿐입니다. 내가 고치려고도 하지 마세요. 그저 우리는 나만 잘하면 됩니다. 내 안에 있는 것만 잘 가꾸면 됩니다. 좋은 생각하기로 했으면 그 생각 지키면 되고, 좋게 보기로 했으면 어떤 일이 있어도 좋게 보면 됩니다. 세상이 어지럽지 않은 때가 있었습니까? 세상이 주는 평안이 있었나요? 힘들고 어렵지 않은 때가 있었어요? 그런 나 밖의 문제로 신음하지 마세요. 다른 이들의 문제로 내 평안을 잃지 마세요. 그저 내 안의 평안을 지키고, 내가 할 수 있는 일만 잘하세요.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능력이 됨을 곧 알게 될 거예요. 말하지 않아도 세상은 알고, 주장하지 않아도 이웃들이 따라올 능력, 내 안에 늘 좋은 것을 품고, 좋은 마음을 유지하는 것, 평안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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