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하 13:15~19 그렇게 욕을 보이고 나니, 암논은 갑자기 다말이 몹시도 미워졌다. 이제 미워하는 마음이 기왕에 사랑하던 사랑보다 더하였다. 암논이 그에게, 당장 일어나 나가라고, 소리를 버럭 질렀다. 그러자 다말이 암논에게 말하였다. "그렇게 하시면 안 됩니다. 이제 나를 쫓아내시면, 이 악은 방금 나에게 저지른 악보다 더 큽니다." 그런데도 암논은 다말의 말을 들으려고 하지도 않고, 오히려 자기의 시중을 드는 하인을 불러다가 명령하였다. "어서 이 여자를 내 앞에서 내쫓고, 대문을 닫고서 빗장을 질러라." 암논의 하인은 공주를 바깥으로 끌어내고, 대문을 닫고서, 빗장을 질렀다. 그때에 다말은 소매에 색동으로 수를 놓은 긴 옷을 입고 있었다. 공주들은 시집가기 전에는 옷을 그렇게 입었다. 이제 다말은 머리에 재를 끼얹고, 입고 있는 색동 소매 긴 옷도 찢고, 손으로 얼굴을 감싼 채로, 목을 놓아 울면서 떠나갔다.
오늘 본문을 가지고 지난주, 부모의 책임감에 대해 묵상했는데요. 다른 시선으로 오늘 본문을 다시 묵상하려고 합니다. 오늘 본문은 참 황당한 상황이죠. 암논은 기필코 다말을 욕보였어요. 그런데 갑자기 마음이 돌변합니다. 아니 무슨 이런 경우가 있습니까? 들어갈 때 다르고 나올 때 다르다더니 그의 행동은 마치 정복자의 전형과 같은 모습이죠. 오로지 정복하는 데만 가치를 둔 사람처럼 정복을 위한 집착이 이루어지면 이제는 또 다른 정복을 위해 뒤도 안 돌아보는 심리일까요? 더 기막힌 것은 그가 다말에 대해 집착했던 마음, 이를 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는지 모르겠지만 그 불타는 욕망보다 이제 미워하는 마음이 더 커져버렸다고 본문은 기록하고 있죠. 이해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이를 싫증이라고 하죠.
보통 싫증을 잘 내는 사람은 감정의 기복이 심한 편입니다. 갖고 싶은 욕망이 일어나면 물불을 가리지 않다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으면 언제 그랬냐는 듯 그 욕망과 열정은 삽시간에 사라지죠. 그런데 이 싫증이 좋게 사용될 때도 있어요. 그 싫증이 다른 말로 변화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하고 있는 것을 또 다른 목표점으로 이동하는 행동이 그 안에 담겨있기 때문입니다. 미술이라는 것이 탄생하게 된 배경이 그렇다죠. 새로운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강박에서 만들어진 산물이라고 해요. 늘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싫증을 잘 냅니다. 이것은 좋은 의미의 싫증이죠.
그런데 보통의 경우는 이렇습니다.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태도로 싫증이 동원돼요. '이루고 나니 재미없다는 표현은 내가 몰랐는데 알고 보니 그 대상이 별로다'라는 의미가 들어있죠. 그러니까 자신이 집착했던 대상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것입니다. 똑 그러죠.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꼭 남 탓을 합니다. 희생양이라고 할까요? 자신의 책임을 남에게 전가하며 누군가를 희생시켜야 자신이 책임에서 자유롭다고 느끼는 것이죠. 싫증이 변화가 아니라 죄가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대체적으로 우리는 사람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욕망을 사랑합니다. 어떤 것을 집착하는 것도, 그 대상에 대한 관심보다 자신의 욕구를 채우기 위한 경우가 많죠. 사람을 만나고 결혼을 하는 사람들에게서도 이런 경우들을 봅니다. 상대방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정작 모든 관심은 자신의 원함이 이루어져야 하고 자신이 추구하는 방식이 만들어져야 하는 데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그 자신의 욕망이 채워지지 않으면 상대방을 미워하고 싫어하게 되죠. 사랑하는 것보다 더 심하게 말이죠.
나의 행동은 누군가에게 전가한다고 정당화되지 않습니다. 나의 잘못된 행동은 숨긴다고 사라지지 않아요. 오로지 잘못을 인정하고 고백할 때만 그 행동이 새로운 모습으로 변합니다. 그것을 회개라고 하고, 또한 용서를 받는 비결이기 때문이죠. 나의 행동에 책임을 지는 것은 어깨에 짐을 짊어지라는 말이 아닙니다. 그 행동을 인정하라는 의미입니다. 잘못을 인정할 때 새로운 창조가 시작되기 때문이죠.
행동에는 책임을 지세요. 책임을 지는 방법, 회개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우리의 잘못된 행동을 용서하시고 새롭게 길을 여실 거예요. 그것 밖에는 새롭고 산길을 가는 방법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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