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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하는말씀/사무엘서묵상일기

사무엘서묵상일기175 - 내 상처는 용서의 표시일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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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하 12:13b~15   나단이 다윗에게 말하였다. "주님께서 임금님의 죄를 용서해 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임금님은 죽지는 않으실 것입니다. 그러나 임금님은 이번 일로 주님의 원수들에게 우리를 비방할 빌미를 주셨으므로, 밧세바와 임금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은 죽을 것입니다." 나단은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주님께서, 우리야의 아내와 다윗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를 치시니, 그 아이가 몹시 앓았다.


다윗은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엎드렸습니다. 저는 그에게 나단이 찾아와 말하기 전까지 그 스스로 자신의 잘못이 무엇인지 깨닫지 못했다는 데에 한 표를 던집니다. 죄가 무서운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남이 하면 그리도 잘 보이던 것이 내가 하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만드는 마술이 거기 숨어있기 때문이죠. 말해주기 전까지는 모릅니다. 그래서 죄를 스스로 깨닫는 법이 없어요. 

 

몸에 이상이 생겨 몸져누웠을 때 어떤 의사분이 그러더군요. 우리가 아픈 것은 몸을 보호하려는 우리 몸의 동작이라고요. 그렇게 조심할 수 있도록, 혹은 몸을 회복시키도록 우리에게 사인을 주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이 말이 참 인상적이었어요. 아픈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간혹 길이 막히고 일이 꼬일 때를 바라는 사람도 없죠. 그런데 그것이 우리에게 길을 돌아보고 재정비하는 기회를 제공한다면 이야기는 다릅니다. 어쩌면 그것은 축복일지도 몰라요. 가장 무서운 것은 아무런 증상이 없는 것입니다. 아프지도 않고, 느낌도 없죠. 모든 것이 다 잘 되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집니다. 그러나 속으로는 썩고 있다면 어떨까요? 그만큼 위험한 것이 없는데요. 그게 죄의 특징이기도 합니다. 

 

다윗의 엎드림에 하나님의 반응이 오늘 본문에 이어집니다. 죄를 짓는 것보다 회개하고 돌아서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씀드린 적 있죠?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믿음의 반응이 그것입니다. 다윗은 자신의 죄를 돌아보고 인정했습니다. 그리고 용서를 구합니다. 그 용서는 회개죠. 자신의 삶의 태도를 바꾸는 것이 회개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응당히 그 회개를 받으시고 용서하십니다. 하나님이 바라시는 것은 우리의  회개니까요. 자신의 묵은 태도를 바꾸고 조금씩 새롭고 산 길을 걷는 우리가 되기를 원하시죠.

 

그런데 여기에 한 가지 주의할 점이 있습니다. 아니, 우리가 기억해야 할 점이죠. 하나님은 나단을 통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용서는 하지만 용서에는 대가가 필요하다고 말입니다. 우리는 용서가 공짜인 줄 압니다. 그러나 세상에는 공짜가 없어요. 하나님의 은혜가 값없는 은혜라고 우리는 부르죠.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아무 조건 없이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기 때문입니다. 모든 이들에게 자신을 주시기 때문이죠. 그렇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공짜는 아닙니다. 우리가 그 은혜를 은혜로 여겨야 그 은혜는 진짜 은혜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은혜를 은혜로 여기는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구원은 아무 공로 없이 주어졌습니다. 마치 구원의 문이 열린 것이죠. 누구가 그 문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다 들어갈 수는 없어요. 그 문을 향해 걸어 들어가는 사람만이 들어갑니다. 문은 열렸지만 그 문을 들어가는 수고와 의지를 갖지 않는다면 그에게는 그저 그림의 떡일 뿐이죠. 그것이 대가입니다.

 

용서에도 대가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친절하게도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해 주셨습니다.

 

삼하 12:14   그러나 임금님은 이번 일로 주님의 원수들에게 우리를 비방할 빌미를 주셨으므로,

 

누군가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면 그 상대방에게 용서를 구해야 하죠. 그리고 상대방이 용서합니다. 그렇게 회개와 용서가 상대적으로 이루어지죠. 그러나 그것이 끝이 아닙니다. 상대방의 용서에는 큰 대가가 있습니다. 지켜지지 않은 약속으로 인해 허비한 물리적 시간과 수고, 그리고 상한 감정까지 그는 고스란히 감당해야 합니다. 그것을 다 해결해야 하는 대가를 지불해야 용서할 수 있는 것이죠. 그 대가를 지불할 마음이 없이는 용서가 되지 않는 법입니다. 하나님에게는 그 대가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그런데 그렇다고 그 대가는 하나님만 지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도 그 대가가 있습니다. 약속을 지키지 못한 용서를 구했다면 다음에는 약속을 어기지 않을 만반의 태도변화를 가져야 합니다. 약속을 쉽게 생각하는 습관도 버려야 하고, 남의 시간이 나의 시간만큼 소중하고, 남의 생각 또한 나의 생각 이상으로 중요하다는 점을 인식해야 합니다. 그런 변화와 수고 없이는 그 용서는 오래가지 않습니다. 그것이 우리의 대가입니다. 

 

하나님은 다윗에게 그 대가를 말씀하고 계시죠. 손바닥에 새겨진 못 자국만큼 큰 상처, 그것은 아픔이기도 하지만 하나님의 용서의 상징이기도 하죠. 나를 살리신 대가이기도 합니다. 제가 아는 어떤 분에게는 큰 흉터가 있습니다. 삶의 현장에서 폭탄이 터져 생긴 상처죠. 그 상처를 보는 순간 눈살이 찌푸려질 만큼 깊은 상처였습니다. 그런데 그분은 이렇게 말하더라고요. 이 상처는 나를 살려주신 표시라고요. 이 상처가 없었다면 나는 죽었을 거라고 말이죠. 순간, 그렇게도 생각할 수 있겠구나 싶었습니다. 상처가 나를 용서해주신 분의 표시요, 상처가 나를 살리신 그분의 표증이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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