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하 12:7b~10 '내가 너에게 기름을 부어서,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았고, 또 내가 사울의 손에서 너를 구하여 주었다. 나는 네 상전의 왕궁을 너에게 넘겨주고, 네 상전의 아내들도 네 품에 안겨 주었고, 이스라엘 사람들과 유다 나라도 너에게 맡겼다. 그것으로도 부족하다면, 내가 네게 무엇이든지 더 주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너는, 어찌하여 나 주의 말을 가볍게 여기고, 내가 악하게 여기는 일을 하였느냐? 너는 헷 사람 우리야를 전쟁터에서 죽이고 그의 아내를 빼앗아 네 아내로 삼았다. 너는 그를 암몬 사람의 칼에 맞아서 죽게 하였다. 너는 이렇게 나를 무시하여 헷 사람 우리야의 아내를 빼앗아다가 네 아내로 삼았으므로, 이제부터는 영영 네 집안에서 칼부림이 떠나지 않을 것이다.'
이제 나단을 통한 하나님의 말씀이 들립니다. 예상했던 대로 하나님은 다 알고 계셨죠. 완벽한 속임이란 없습니다. 자신과 주위 사람들을 속일 수는 있어도 하나님까지 속일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나의 생각은 나만이 알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나 혼자의 생각이라고 느끼죠. 오래전 본 영화 중에 [사토라레]라는 영화가 있었습니다. 엄청난 천재로 태어났지만 자신이 생각하는 속마음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모두 다른 사람에게 다 전달되는 특이한 형태의 사람들을 사토라레라고 부른다는 만화 같은 일본 영화였어요. 자신의 생각이 다른 이들에게 다 들린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사토라레는 심한 스트레스로 삶을 이어나가지 못하죠. 그래서 정부는 그 대단한 천재들인 사토라레를 보호하기 위해 자신의 생각이 타인에게 전달된다는 사실을 숨깁니다. 모든 사람들에게 법으로 비밀보장이 되도록 하죠. 그런 상황을 재미있게 묘사한 영화입니다. 그런데 저는 그 영화를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우리의 생각도 나만의 것이 아니라는 생각 말이죠. 하나님이 나의 생각을 아시고 들으시며 보신다고 말입니다. 입으로 말하지 않아도 내 생각을 아신다고요.
우리도 알죠. 하나님은 우리가 말하지 않아도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아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말이죠. 우리보다 우리를 더 잘 아셔서 우리가 원하는 것보다 더 필요한 것을 주시는 분이라는 것을 압니다. 그런데 그것은 우리의 기도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에요. 하나님은 우리의 바람도 아시지만 우리의 불평도 아닙니다. 우리의 긍정적인 마음도 들으시지만 우리의 부정적인 마음도 들으시죠. 홀로 생각하는 것조차 하나님은 아시고, 아무 말하지 않은 생각조차 주님은 들으십니다. 그래서 우리의 기분, 우리의 생각, 우리의 마음을 잘 다루어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그런 마음의 말들, 내적 속임수에 관한 이야기보다 더 많이 묵상되는 것이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을 읽는 내내 떠오르는 장면이 있었어요. 그것은 에덴동산에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열매를 탐했던 그 장면입니다. 죄의 시작이 되었던 이 장면에서 하나님은 별반 말씀이 없으셨어요. 창세기 3장에는 그저 행동에 대한 결과만이 등장할 뿐입니다. 그런데 그때 하시고자 했던 말씀이 마치 오늘 본문이 아니었을까 하는 착각에 빠질 만큼 오늘 본문은 하나님의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아마도 하나님께서 창세기 3장에서 말씀하셨다면 이런 말씀이었을지도 모릅니다.
"내가 너에게 이 땅을 주었고, 이 땅을 정복하고 다스릴 권한을 주었다. 모든 짐승과 자연이 네게 굴복하며 복종하게 하였고, 모든 땅이 너의 차지였다. 이외 더 필요한 것이 있다면 다 주었을 것이다. 그런데 너는 어찌하여 있는 것보다 없는 것에 더 목숨을 거느냐? 어찌하여 감사한 일보다 불평할 일에 더 집중하느냐? 어찌하여 은혜보다 불행을 더 묵상하느냐?"
우리 죄의 시작은 은혜보다 불행을 더 묵상하기 때문입니다. 감사한 일보다 불평할 일에 더 집중하고, 주어진 것보다 없는 것에 더 목을 매기 때문이죠. 감사보다 불평이 더 많아지면 죄의 싹이 자랍니다. 은혜를 묵상하기보다 원한과 원망을 더 묵상하면 거기서 어둠의 싹이 터요. 나를 망하게 하는 것은 그 작은 생각에서 시작됩니다.
오늘 이 아침, 감사로 시작하는 우리들 되길 빕니다. 그 작은 마음이 오늘을 채울 것이고, 그 작은 생각이 주님의 도우심을 이끌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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