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하 11:19~27 요압은 전령에게 이렇게 지시하였다. "네가 이번 전쟁의 상황을 모두 임금님께 말씀드리고 났을 때에, 임금님이 화를 내시며 네게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왜 그토록 성에 가까이 가서 싸웠느냐? 적의 성벽 위에서 적병들이 활을 쏠 줄도 몰랐단 말이냐? 여룹베셋의 아들 아비멜렉을 누가 쳐서 죽였느냐? 어떤 여자가 성벽 위에서 그의 머리 위로 맷돌 위짝을 던져서, 그가 데벳스에서 죽지 않았느냐? 그런 것을 알면서, 너희가 무엇 때문에 그토록 성벽에 가까이 갔느냐?' 하시면, 너는 '임금님의 부하 헷 사람 우리야도 죽었습니다' 하고 대답하여라." 전령이 떠나, 다윗에게 이르러서, 요압이 심부름을 보내면서 일러준 말을 모두 전하였다. 전령은 다윗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우리의 적은 우리보다 강하였습니다. 적이 우리와 싸우려고 평지로 나왔으므로, 우리는 적들을 성 안으로 밀어 넣으려고, 성문 가까이까지 적들을 밀어붙였습니다. 그때에 성벽 위에 있는 적들이 임금님의 부하들에게 활을 쏘았습니다. 그래서 임금님의 부하들 가운데서 몇 사람이 죽었고, 임금님의 부하인 헷 사람 우리야도 죽었습니다." 그러자 다윗이 전령에게 말하였다. "너는 요압에게, 칼은 이 편도 죽이고 저 편도 죽이기 마련이니, 이번 일로 조금도 걱정하지 말라고 전하여라. 오히려 그 성을 계속 맹렬히 공격하여서 무너뜨리라고 전하여, 요압이 용기를 잃지 않도록 하여라." 우리야의 아내는, 우리야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자, 자기의 남편을 생각하여 슬피 울었다. 애도하는 기간이 지나니, 다윗이 사람을 보내어서, 그 여인을 왕궁으로 데려왔다. 그 여인은 이렇게 하여서 다윗의 아내가 되었고, 그들 사이에서 아들이 태어났다. 그러나 주님께서 보시기에 다윗이 한 이번 일은 아주 악하였다.
오늘 본문은 모략의 냄새가 풀풀 납니다. 요압은 다윗의 명령을 충실히 시행하고 보고를 하죠. 그런데 이 보고가 묘한 느낌을 자아냅니다. 그는 전쟁에서 패했습니다. 사실 저는 늘 이 구절을 읽을 때마다 전쟁에서 패배했다는 사실을 간과했었는데요. 우리야를 죽이는 목적의 전쟁이라는 생각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전쟁에서 지는 것이 잘 보이지 않았어요. 그런데 가만히 보니까 전쟁에서 패배한 것은 의도된 것이 아니었던 것 같아요. 우리야의 죽음과 전쟁의 승패와는 상관이 없지 않을까 싶어요. 최전방의 병사들은 승리하건 패배하건 늘 희생의 선봉장들이니까요. 그러니까 요압은 이 전쟁에서 승리하고 싶었지만 패배를 한 것입니다. 어찌 장수로서 패배를 바라겠어요?
이런 사실을 뒷받침하는 내용이 전령을 통해 전해지는 요압의 말에 담겨 있습니다. 요압은 패전에 대한 다윗의 질책이 있을 것을 예견했던 것 같아요. 아마도 이런 사실은 총사령관인 자신의 책임으로 돌려질 가능성이 크죠. 그래서였을까요? 요압은 전령에게 꼭 전해야 할 한 가지 사실을 덧붙입니다. 우리야가 죽었다고 말이죠. 이 대목에서 저는 오싹했습니다. 요압이란 인물의 단면을 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자신의 책임을 다윗에게 돌리고 있는 듯 보입니다. 심지어는 은근한 협박으로까지 들려요. 참 무서운 사람들입니다. 조금만 틈이 있으면 나의 책임을 남에게 전가하는 버릇이 있는 우리들 또한 이런 요압과 다르지 않다는 사실이 서글픕니다.
더 서글픈 것은 이 말을 들은 다윗의 태도입니다. 요압의 예측처럼 다윗은 패전에 대한 아쉬움을 드러냈던 것 같아요. 자신의 병사들의 희생에 대한 아쉬움이었는지, 자신의 위신에 대한 상처 때문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그가 패전에 대해 아쉬움을 토로한 것을 저는 전자의 마음 때문이라고 좋게 봐주려 합니다. 지금까지 그런 마음을 다윗이 유지해 왔기 때문이죠. 그런데 그다음 장면이 소름입니다. 우리야의 죽음 소식을 듣자 그의 태도는 돌변합니다. 패전에 대한 아쉬움, 수많은 희생에 대한 안타까움은 삽시간에 사라지고, 그의 견해는 그럴 수도 있다는 것으로 변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하죠.
사무엘하 11:25 "너는 요압에게, 칼은 이 편도 죽이고 저 편도 죽이기 마련이니, 이번 일로 조금도 걱정하지 말라고 전하여라. 오히려 그 성을 계속 맹렬히 공격하여서 무너뜨리라고 전하여, 요압이 용기를 잃지 않도록 하여라."
만약 이 장면을 드라마로 보았다면 그의 표정은 비열함 그 자체였을 것이라는 상상이 그려집니다. 자신이 원하던 일이 이루어지자 그는 이전의 원칙들조차 깡그리 무시해 버리죠. 마치 나만 괜찮으면 된다는 식입니다. 내가 원하는 일들이 이루어지면 남은 어찌 되었든 상관없다는 식이죠. 이 비열함이 바로 죄의 소산입니다.
죄를 수만 가지로 설명할 수 있지만 단 한 마디로 표현한다면 저는 '나를 나답게 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죄는 내가 아닌 다른 나를 만들어 버리죠. 지금까지 행했던 행동, 생각, 가치, 판단들을 완전히 무시하고 전혀 다른 내가 되어 버리게 만드는 것이 죄의 능력입니다. 마치 다른 인격이 나를 주장하듯이 말이죠. 그렇게 기준이 달라지고, 잣대가 흔들이죠.
내 안에 평안이 있어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죄로부터의 해방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일을 하더라도 평안하다면 그것은 '나의 일'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원하는 일이라 하더라도 내 안에 평안을 잃으면 그것은 '남의 일'이 되어 버리죠. '죄의 일'이 될지도 모릅니다. 죄는 마치 다른 인격이 나를 지배하는 것처럼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그래서 전혀 다른 사람이 되죠. 불안, 나를 다른 사람으로 만듭니다. 초조, 나의 심박수를 더 뛰게 하죠. 조바심, 자꾸 서두르게 합니다. 마치 다른 기회는 없다는 듯이 말이죠.
죄를 멀리 하는 방법, 평안을 구하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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