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하 11:14~18 다음날 아침에 다윗은 요압에게 편지를 써서, 우리야의 편에 보냈다. 다윗은 그 편지에 다음과 같이 썼다. "너희는 우리야를, 전투가 가장 치열한 전선으로 앞세우고 나아갔다가, 너희만 그의 뒤로 물러나서, 그가 맞아서 죽게 하여라." 요압은 적의 성을 포위하고 있다가, 자기가 알고 있는 대로 적의 저항 세력이 가장 강한 곳에 우리야를 배치하였다. 그 성의 사람들이 나가서 요압의 군인들과 싸우는 동안에, 다윗의 부하들 쪽에서 군인 몇 사람이 쓰러져서 죽었고, 그때에 헷 사람 우리야도 전사하였다. 요압이 다윗에게 사람을 보내서 전쟁의 상황을 모두 전하였다.
기어코는 죽입니다. 자신의 죄를 덮으려고 남을 죽입니다. 남 일 같지 않은 이유는 정도의 차이만 존재할 뿐, 이런 일들이 우리 가운데 비일비재하기 때문이죠. 자신의 이익을 위해 남에게 잘못을 덮어 씌우는 경우가 그렇습니다. 나의 잘못을 모면하려고 남의 잘못을 부각하고, 나의 죄를 합리화하기 위해 남까지 끌어드리는 수작들이 우리의 일상에 널려 있습니다. 거짓말이라는 것이 이런 마음에서 시작되죠. 나를 가리려고 무엇인가 희생양을 찾아 세우는 작업을 합니다.
문제는 이 죄가 자란다는 거죠. 참 신기한 것은 그리도 용기 없고 겁이 많은 사람도 죄 앞에서는 무서우리만큼 용감해진다는 것입니다. 과감해지고 대범해집니다. 선한데 그리 용감해지면 참 좋으련만 우리는 악한데 훨씬 용감합니다. 더 놀라운 사실은 용감해지는 것으로만 끝나지 않고 지혜롭기까지 하다는 것이죠. 지혜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는 단어이긴 합니다만 신기하리만큼 죄에는 기발해지는 것이 우리입니다. 기막힌 아이디어들이 떠오르죠. 머리로는 모든 완전범죄가 형성이 됩니다. 다윗과 요압이 그렇듯 죽이 척척 맞습니다. 한마디를 하면 열 마디를 알아듣는 기막힌 콤비네이션으로 죄가 완성이 되죠.
다윗은 우리야를 전쟁터로 보내며 요압에게 편지를 쓰죠. 우리야를 위험한 전선에 배치하라는 명령이었습니다. 이 편지의 의미를 요압은 알아차렸어요. 엄청난 일인데도 이유조차 묻지 않습니다. 다윗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 것일까요? 아마 이 은밀한 내통은 다윗의 전후 사정을 알고 이루어지는 일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다만 요압은 그저 충성할 뿐이죠. 맹목적인 충성이 얼마나 헛된 것인지를 알려주는 대목일지도 모릅니다. 아무튼 그렇게 우리야는 전쟁의 최선봉에 섰고, 우연히도 그 전투에서 대패를 합니다. 당연히 우리야는 전사를 하죠.
자! 이 대목에서 우리는 한 가지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것은 아무도 우리야를 죽이지 않았다는 거죠. 다윗도, 요압도 우리야를 죽이지 않았습니다. 우리야는 그저 전쟁에서 싸우다 죽었을 뿐이라는 거죠. 전쟁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습니다. 어쩌면 목숨을 담보한 것이 전쟁이죠. 그러니 그것만 보면 그리 큰 일도 아닙니다. 전쟁이라면 늘 일어나는 일입니다. 이런 사실만 보면 과연 누가 우리야를 죽인 것일까요?
진짜 있었던 일이라고 하더군요. 우리나라 전직 대통령 가운데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이가 있었죠. 이 정부를 우리는 권위적인 군사 정부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그 대통령인 스포츠를 좋아했나 봅니다. 차를 타고 가는 도중 스포츠 중계를 라디오로 들었나 봐요. 그런데 그 중계방송을 전하는 아나운서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듣다가 한 마디를 했데요.
"이 스포츠 캐스터 잘 못하네~"
그다음 날 그 아나운서를 방송국에서 잘렸답니다. 영문도 모른 채 말이죠.
행동하지 않았다고 죄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의도, 우리의 생각, 우리의 가치관에서 죄는 이미 시작되기 때문이죠. 우리의 중심에서 모든 것이 시작됩니다. 우리가 서 있는 자리, 우리가 꿈꾸는 꿈, 우리가 제일 많이 생각하는 그것, 거기에서 우리의 행동이 나오니까요. 저주, 그게 행동으로 일어나는 일은 아니잖아요? 사랑, 그게 무슨 위대한 일로 드러나는 것도 아니잖아요. 내 작은 마음의 샘물일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썩은 샘물은 마시는 이들을 상하게 하고 맑은 샘물은 모든 이들의 목마름을 채우죠.
우리가 지금 아침묵상을 하는 이유도 마찬가지입니다. 무슨 거대한 일을 꾸미는 것은 아니잖아요? 그저 나의 오늘 하루를 맑은 샘물로부터 시작하려는 마음이죠. 그저 내 중심을 주님의 자리에서 하고픈 생각뿐 아닙니까? 거기서 내 말이 나오고, 행동이 나오고, 태도가 나오기 때문이죠. 그렇게 내 중심을 맑은 샘물로 채워나가면 좋겠습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려요. 나는 단지 내 마음을 기쁨으로 채웠을 뿐인데 나의 삶이 기쁨의 방향으로 걷게 되고, 나는 단지 내 마음을 감사로 채웠을 뿐인데 내게 감사의 일들이 찾아옵니다. 그것이 은혜죠. 그렇게 내 중심이 내 인생을 끌어당깁니다. 내 의도가 미래를 끌어당겨요. 내 안에 샘솟는 샘물이 내 앞길을 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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