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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하는말씀/사무엘서묵상일기

사무엘서묵상일기170 - 단점을 고치는 것보다 장점을 키우는 것이 먼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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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하 12:1b~4   "어떤 성읍에 두 사람이 살았습니다. 한 사람은 부유하였고, 한 사람은 가난하였습니다. 그 부자에게는 양과 소가 아주 많았습니다. 그러나 그 가난한 사람에게는, 사다가 키우는 어린 암양 한 마리 밖에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는 이 어린양을 자기 집에서 길렀습니다. 그래서 그 어린양은 그의 아이들과 함께 자라났습니다. 어린양은 주인이 먹는 음식을 함께 먹고, 주인의 잔에 있는 것을 함께 마시고, 주인의 품에 안겨서 함께 잤습니다. 이렇게 그 양은 주인의 딸과 같았습니다. 그런데 그 부자에게 나그네 한 사람이 찾아왔습니다. 그 부자는 자기를 찾아온 손님을 대접하는 데, 자기의 양 떼나 소 떼에서는 한 마리도 잡기가 아까웠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 가난한 사람의 어린 암양을 빼앗아다가, 자기를 찾아온 사람에게 대접하였습니다."


나단의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그의 이야기는 비유였어요. 부자와 가난한 자가 있었는데 부자는 양이 많았지만 가난한 이는 양이 한 마리밖에 없었죠. 그래서 그 양을 무척 애지중지했습니다. 그런데 부자의 집에 손님이 왔나 봐요. 먹을 것을 대접해야 하는데 자신의 소나 양을 잡는 것은 아까웠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가난한 자의 하나밖에 없는 암양을 빼앗아서 손님을 대접했다는 이야기죠. 부자에게는 아마 권력도 있었던 모양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돈과 권력은 한통속이었나 보죠. 아무튼 상식적이지 않은 말도 안 되는 일입니다. 그런데 그런 일이 벌어졌어요.

 

주님께서 이 말씀을 다윗에게 전하시는 이유가 있겠죠. 우리는 간단하게 해석할 수 있습니다. 다윗이 그랬다는 거죠. 힘과 권력으로 남의 것을 빼앗았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다윗이 부자라고 비유되었다는 사실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총애를 받는 인물이었죠. 그는 하나님이 선택한 사람이었고, 그의 기도는 늘 이루어졌습니다. 그가 가진 많은 권력은 주님으로부터 나왔고, 그의 많은 부와 땅들은 하나님이 함께 하신 결과죠. 그런데 그가 남의 아내를 탐했습니다. 하나밖에 없는 귀한 아내를 말이죠. 그리고 죽이기까지 했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의 탐욕에 대해 지적하고 계십니다. 그가 남의 것을 탐한 죄에 대한 지적이죠. 그러나 저는 이 말씀에서 빼앗고 죽이고 탐한 내용보다 더 중요한 것이 눈에 들어옵니다. 그것은 이미 다윗이 부자였다는 사실이에요. 그는 하나님의 통로였고, 그 통로로 하나님은 늘 은혜를 부어주셨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잊어버렸어요. 아니 그 통로가 아닌 다른 통로를 찾았습니다. 그리고 그 통로에서 만족을 추구했다는 것이 핵심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죄'라고 부르기로 하죠. 하나님으로부터가 아닌 다른 통로로 얻는 이득 말입니다. 마치 하나님과 떨어져 에덴동산에서 홀로 사탄과 대면해 그 감언이설로부터 복을 얻으려는 행동처럼 말입니다.

 

이 말씀을 저와 비교해 보았습니다. 다윗이 아니라 내가 그 자리에 섰다면 어떨까요? 물론 저는 왕도 아니고 다윗처럼 믿음도 충만하지 못합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나를 택하셨고 주목하셔요. 그리고 제게도 이렇게 말씀하시죠.

 

"너는 부자다"

 

땅도 없고, 집도 없고, 돈도 없습니다. 그게 늘 불편해요. 그런데 하나님은 나에게 부자라고 하시죠. 적어도 다윗은 왕궁의 옥상에서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을 보았습니다.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자신에게 허락되지 않은 열매나무를 본 것처럼 말이죠. 자신이 가난하다고 느끼는 순간, 불평과 불만이 찾아옵니다. 우리에게도 가시 같은 불만족은 늘 내게 부족한 것, 내게 없는 것을 볼 때이고, 남의 것이 더 커 보일 때입니다. 

 

저에게는 단점이 너무 많습니다. 머리도 좋지 않고 몸도 굼뜨죠. 통찰력은 떨어지고 용감한 믿음 또한 없습니다. 건강하지도 않고 끈기도 없으며 재능도 별로 없어요. 그래서 늘 불만입니다. 가진 것이 별로 없어서, 내세울 변변한 능력도 없어서 늘 주눅들죠. 그런데 날 보고 부자라고 하면 이게 말이야 방귀야 싶어요. 그런데 오늘 이 아침, 주신 말씀에 충실해서 제가 가진 것에 대해 곱씹어 보니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돈을 가지진 못했지만 나에게는 너무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솔직히(?) 보통 목사 교인 관계가 그리 친밀한 것은 아니잖아요? 그런데 제겐 가족 이상의, 생각하면 살이 떨리고 눈물이 나는, 지금 이 글을 쓰는데도 코 끝이 시큰해지는 그런 사랑하는 사람들이, 교인들이, 가족들이 제게 있더라고요. 어디 제가 잘해서 그렇겠어요? 돈보다 값진 귀한 사람들을 주셨더라고요. 재능은 없어도 사랑은 있고, 말씀을 해석할 머리는 없어도 매일 아침마다 말씀으로 가슴을 치는 간절함은 있더라고요. 능력이 없어서 오히려 하나님께 늘 매달릴 수밖에 없는 은혜를 주셨고, 건강이 없어서 오히려 함부로 살지 않게 하시는 보호하심이 있더라고요.

 

단점을 채워가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내가 가진 장점을 먼저 부각시키고 키워내는 것은 어떨까요? 내게 있는 것을 먼저 감사하고 기뻐하고 만족하면 어떨까요? 그것이 또 다른 은혜의 길을 여는 기초가 되게 하면 어떨까요? 남의 것을 탐내지 않는 것 이전에, 나의 것에 감사하는 것이 먼저입니다. 나의 단점을 논하기 이전에 나의 장점이 단점을 커버하게 하는 것이 필요하고요. 없는 것을 말하기 이전에 가진 것을 기뻐할 줄 알아야 합니다. 어쩌면 이것이 이웃 사랑의 출발 인지도 몰라요. 남의 것을 부러워 하기보다 나의 가진 작은 것에 감사하고 나눌 줄 아는 것이 이웃사랑이니까요. 

 

오늘은 내게 주신 복을 세어보는 하루이길 빕니다. 내가 가진 것이 먼저 기뻐하는 하루였음 해요. 나의 단점보다 장점을 더 키우는 하루였으면 좋겠어요. 단점을 고치는 것보다 장점을 키우는 것이 더 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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