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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하는말씀/사무엘서묵상일기

사무엘서묵상일기177 - 우리는 언제나 다시 시작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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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하 12:24~25   그 뒤에 다윗이 자기의 아내 밧세바를 위로하고, 동침하니, 그 여인이 아들을 낳았다. 다윗이 그의 이름을 솔로몬이라고 하였다. 주님께서도 그 아이를 사랑해 주셔서, 예언자 나단을 보내셔서, 주님께서 사랑하신다는 뜻으로, 그의 이름을 여디디야라고 부르게 하셨다.


한바탕 폭풍우가 스쳐 지나갔습니다. 미친 듯 몰아치는 죄의 광풍은 눈 가리고 운전하듯 여기저기에 상처를 내며 내달렸죠. 죄는 자신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내가 품은 죄는 내 주위를 파괴하는 힘을 자랑하죠. 나의 작은 호기심으로 시작한 죄는 삽시간에 스노볼처럼 커지고 맙니다. 그리고 그 죄를 돌이키는 것 또한 많은 아픔을 감당해야 했죠. 그렇게 죄는 내 주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죠. 

 

이제 그 광풍이 가라앉고 평온이 찾아왔습니다. 마치 일상으로 돌아간 듯하죠. 오늘 본문은 짧지만 재미있고 의미 있는 대목들이 등장합니다. 그 첫 번째는 밧세바에 대한 묘사에 있어요. 성경은 밧세바를 다윗의 아내라고 칭하고 있습니다. 지금껏 밧세바는 우리야의 아내였죠. 그런데 어느덧 다윗의 아내가 되었습니다. 이제야 하나님께서 다윗을 인정하신 것을 의미하는 표현이 아닐까 싶어요. 다윗은 밧세바를 자신의 것으로 삼으려 무리한 일들을 벌렸었죠. 하나님은 그것을 죄라고 규정하셨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걸 인정하시죠. 이는 다윗이 졸랐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가 회개하고 제 자리로 돌아왔기 때문이죠. 아들 문제도 그렇습니다. 밧세바와 동침한 후 생긴 아들은 죄의 대가로 목숨을 잃죠. 이를 위해 식음을 전폐하고 다윗은 기도했었죠. 그러나 그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지금 새로운 아들이 생겼어요. 그의 이름은 솔로몬입니다. 풀이를 하면 '평강의 사람'이라는 뜻이죠. 

 

신기하지 않습니까? 가만히 보면 다윗은 원하는 것을 다 가졌습니다. 죄의 씨앗이 되었던 밧세바도 아내로 삼았고, 잃었던 아들도 새로이 얻습니다. 심지어 어차피 이렇게 될 것 왜 그 난리를 피웠을까 싶을 정도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하나님의 패턴을 읽을 수 있어요.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어떤 식의 선택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이것을 가져도 되는지, 저것을 가져야 하는지 그 결과에 대한 결정에 하나님의 마음이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분께는 밧세바가 안 된다거나 아들을 가져가시는 것이 목적이 아니셨어요. 그분이 원하시는 것은 다윗의 마음이었습니다. 똑같은 결과를 가져올지라도 부정한 마음, 악한 마음의 행동이 아니라 선하고 진실된 마음의 행동을 바라셨던 것입니다. 다른 말로 말하면 하나님의 질서와 순리를 따르는 믿음을 보신 것이죠. 이는 이미 다윗에게 하신 말씀에서 드러납니다. 

 

삼하 12:8   그것으로도 부족하다면, 내가 네게 무엇이든지 더 주었을 것이다. 

 

하나님은 늘 충분하게 주십니다. 아니 우리에게 알맞게 주시죠. 그 알맞음을 인정하고 감사할 때 우리에게는 멈추지 않는 풍요가 뒤따르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것을 부족하다 여기기 시작하면 실제로 부족해집니다. 주어도 얻지 못하고 넘쳐도 모자라는 사태가 우리 안에서 벌어지죠. 주님께 목말라하기보다 이제 가진 것이 목말라하는 사태로 진행됩니다. 그렇게 두 가지 신이 내 앞에 놓이게 되는 것이죠. 그것을 하나님은 가장 경계하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 마음을 두면 우리가 잃었던 것은 반드시 돌아옵니다. 내게 정말로 필요한 것이며 반드시 주어집니다. 나의 탐욕과 죄성을 포기하고 회개하니 원했던 것을 다 주시는 하나님이 다윗의 하나님입니다. 그렇게 우리는 다시 시작할 수 있습니다. 주님 앞에 다시 돌아와 주님의 마음을 회복하면 내 원함 또한 이루어집니다. 바울이 그랬습니다. 그는 지식과 학식이 많은 사람이었죠. 그는 그 재능으로 자신이 원하는 것들을 얻으려고 했습니다. 그 지식과 학식으로 당시 그리스도인들을 처벌하고 죽이는데 앞장섰어요. 그것이 진리인 줄 알았고, 그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인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자신의 지식과 학식이 진리가 아님을 깨닫죠. 그리고 자신의 재능을 포기합니다. 하나님은 바울에게 신처럼 여기는 자신의 재능, 지식을 버리길 원하셨죠. 그런데 그가 자신의 재능을 버리고 주님의 마음을 품자 상황이 달라집니다. 그때 다시 주님은 그에게 재능이 쓰임 받도록 하시죠. 그 일로 기독교의 철학이 확립되고 성경이 기록됩니다. 

 

그런 말씀드린 기억이 납니다. 나의 재능도 거듭나야 한다고요. 내가 거듭난다는 의미는 내가 소유한 재능도 거듭난다는 의미입니다. 재능이 불필요한 것이 아니라 거듭나야 한다는 겁니다. 나의 성격도 버려야 할 것이 아니라 거듭나야 하는 겁니다. 급한 성격, 강한 성격이 나쁜 것 아닙니다. 하나님의 것으로 거듭나면 그것은 추진력과 결단력으로 사용되는 거죠. 그렇게 우리는 다시 시작할 수 있습니다. 꿈? 버리지 마세요. 반드시 그 꿈은 다시 이루어집니다. 내가 주님 앞에 거듭나기만 하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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