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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하는말씀/사무엘서묵상일기

사무엘서묵상일기184 - 손 놓고 가만히 있는 것보다 무엇이라도 하는 편이 낫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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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하 13:30~39 그들이 아직도 길에서 달아나는 동안에, 다윗에게는, 압살롬이 왕자들을 모조리 쳐 죽여서, 한 사람도 살아 남지 못하였다는 소식이 들어갔다. 왕은 자리에서 일어나서, 입고 있는 옷을 찢고 땅바닥에 누워 버렸고, 그를 모시고 서 있는 신하들도 다 옷을 찢었다. 그때에 다윗의 형 시므아의 아들인 요나답이 나서서 말하였다. "임금님, 젊은 왕자들이 모두 살해되지는 않았습니다. 암논 한 사람만 죽었습니다. 암논이 압살롬의 누이 다말을 욕보인 날부터, 압살롬은 그런 결심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이제 높으신 임금님께서는, 왕자들이 다 죽었다고 하는 뜬소문을 듣고 상심하지 마십시오. 암논 한 사람만 죽었을 따름입니다." 그 사이에 압살롬은 도망쳐 버렸다. 바로 그때에 예루살렘의 보초병 하나가, 호로나임 쪽에서 많은 사람이 언덕을 타고 내려오는 것을 보고서, 왕에게 알렸다. 그러자 요나답이 왕에게 아뢰었다. "틀림없습니다. 왕자님들이 돌아오시는 것입니다. 이 종이 이미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요나답이 말을 막 마치는데, 왕자들이 들어와서, 목을 놓아 울기 시작하였다. 왕도 통곡하고, 모든 신하도 통곡하였다. 압살롬은 도망하여 그술 왕 암미훗의 아들 달매에게로 갔고, 다윗은 죽은 아들 암논 때문에 슬픈 나날을 보냈다. 압살롬은 도망한 뒤에 그술로 가서, 그곳에 세 해 동안 머물러 있었다. 그러는 사이에 다윗 왕은 암논을 잃었을 때에 받은 충격도 서서히 가라앉았고, 오히려 압살롬을 보고 싶어 하는 마음이 점점 간절해졌다.


오늘은 요나답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야 할 것 같습니다. 이미 한 차례 등장했던 인물이죠. 암논을 부추겨 다말에게 씻지 못할 상처를 안겨주도록 만든 장본인입니다. 이전의 묵상에서 저는 이 인물이 마치 에덴동산에서 인간을 유혹했던 뱀의 속삭임과 같아 보인다고 말씀드린 바가 있죠. 그가 오늘 또 등장합니다. 이번에는 다윗에게 나타납니다. 압살롬이 암몬을 죽였다는 소식이 들렸어요. 게다가 압살롬의 초대를 받고 갔던 모든 왕자들이 다 몰살되었다는 소문이 들렸던 모양입니다. 이에 다윗은 큰 충격에 빠지죠. 자신이 압살롬의 청을 받고 아들을 보냈다는 사실이 마음에 걸렸을까요? 혹은 압살롬의 행동이 의심쩍어 자신은 가지 않았던 그곳에 아들들을 보냈다는 것이 못내 후회스러웠을까요? 그는 큰 상심에 빠졌습니다.

그런데 그의 앞에 요나답이 나타나 이렇게 말합니다. 아들들은 죽지 않았다고요. 오로지 암논만 죽었다고 말이죠. 일면 다윗의 상심에 위로를 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다윗은 그 말을 믿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그랬을까요? 이런 엄청난 일을 저지른 압살롬을 내버려 둡니다. 마치 암논의 있을 수 없는 범죄를 목격하고도 내버려 두었듯이 말이죠. 암논 한 명만 죽었다는 것에 안도했을까요? 그 때문에 압살롬의 살인사건이 작아 보였을까요? 그렇게 압살롬은 도망갈 기회를 얻습니다. 그리고 그 작은 내버려 둠은 후에 엄청난 결과를 가져오죠.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듭니다. 요나답은 어떻게 다른 왕자들이 죽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까요? 압살롬이 암논에 대한 복수심에 불타 그런 살인사건을 벌이게 될지 어찌 알았을까요? 어느 학자는 압살롬이 요나답에게 말했을 것이라고 하기도 하지만 이게 누구에게 말할 사항이 아니잖아요? 정말 아무도 모르게 치러야 하는 거사이기에 압살롬이 요나답에게 말해주었다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는 것 같아요. 그렇다고 요나답과 압살롬이 가까웠다는 증거도 없죠. 아니면 요나답이 압살롬의 동정을 그동안 면밀히 살폈던 것일까요? 정탐이라도 해서 그의 마음을 읽어냈던 것일까요? 이도 설득력이 없어요. 그렇게 정보를 알아냈다면 암논이 그 초대의 자리에 가지 않게 만들어야 했겠죠. 그는 암논의 친구이니까요. 또 이렇게까지 다윗에게 와서 말할 정도이면 미리 그런 음모를 고해야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요나답은 사후에 그런 말을 하죠. 이것은 전형적인 모사꾼의 태도입니다. 마치 자신이 무엇을 안다는 듯 중재하는 척, 알려주는 척, 옳은 길로 인도하는 척 자신의 정보를 흘리며 자기 생각대로 일을 이끄는 방법이죠.

문제는 이런 이들에게는 한 가지 능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요나답이 상황을 몰랐다고 봅니다. 압살롬의 거사 현장에 없었기에, 또한 어떤 정탐도 하지 않았기에 그가 왕자까지 죽였는지 알 수 없었을 겁니다. 그런데도 그는 정확히 상황을 파악하죠. 그런 능력이 모사꾼에게 있어요. 마치 에덴동산에서 뱀이 인간의 나약한 마음, 그러니까 저 밑바닥에 깔린 작은 생각 하나를 알아내 끄집어내듯이 말이죠. 이상하리만큼 나쁜 생각들은 정확해요. 그런 말 있잖아요? 왜 불길한 예측은 틀리는 법이 없을까? 왜 나쁜 생각은 정확할까? 이것이 나쁜 생각의 무기입니다. 직관력이라고 하죠. 신기하리만큼 불길한 직관력은 딱 들어맞을 때가 많아요. 그것이 나쁜 생각의 능력이죠. 요나답은 그 능력을 우리에게 보여주는지도 모릅니다.

어떤 분이 그러더라고요. 자신은 나쁜 예측을 잘한다고요. 자신이 한 예측들은 대부분 맞았다는 거예요. 그것을 자랑스럽게 말씀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그랬습니다.

"그래서 행복하세요?"

여러분은 나쁜 예측을 잘 맞춰서 기분이 좋으신가요? 그렇게 상황 파악 잘하는 내가 자랑스럽습니까? 왕자들이 살았다고 좋아할 일이 아닙니다. 뭔가 잘못된 일들을 바로잡아야 하는 것이 우리의 미래입니다. 나쁜 예측이 들어맞았다고 좋아할 일이 아니라 좋은 일을 꿈꾸고 만들어가야 하는 것이 우리의 일이에요. 우리 속에 속삭이는 어둠의 생각은 우리로 하여금 앞으로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하게 합니다. 그저 안도하고, 그저 기다리고, 그저 내버려 두는 쪽으로 우리를 몰아갑니다. 가만히 있으라고 하고, 어쩔 수 없다고 하며, 때론 이 정도면 괜찮다고 자위하게 만들죠. 안 죽어서 다행이다 정도입니다. 이만해서 괜찮다 정도죠.

불길한 생각, 걱정스러운 예측이 훨씬 똑똑합니다. 그것이 더 잘 맞고 지혜로워 보이죠. 이상하다 생각하면 진짜 이상해지고, 의심스럽게 바라보면 그것이 현실이 될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불안함, 불길함, 나쁜 예측을 버리질 못해요. 그러나 천국은 침노하는 자의 것이라고 했습니다. 걱정과 근심, 불안과 불길함이 아무리 정확하고 확률이 높다고 그것으로는 천국을 이룰 수가 없습니다. 마치 좋지 않은 음식을 먹지 말라는 것으로는 건강을 지킬 수가 없듯이 말이죠. 진짜 건강한 몸은 우리가 좋은 음식을 찾아 먹을 때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많은 '나쁜 것'의 데이터가 많아도 '좋은 것' 하나 보다 값지지 않습니다. 수많은 나쁜 음식을 먹지 않아도, 좋은 음식 하나보다 나를 건강하기 하진 못해요. 그러니 나쁜 속삭임에 너무 귀 기울이지 마세요. 나쁜 능력에 너무 감탄하지 마세요. 아무리 뛰어난 능력이라도 나쁜 능력은 그저 나쁜 것일 뿐입니다. 아무리 하찮아도 좋은 것은 값져요. 그러니 적극적으로 좋은 일을 찾으세요. 옳은 일을 꿈꾸고, 가능성을 쫓으세요. 길을 묻고 행동하세요. 손 놓고 가만히 있는 것보다 무엇이라도 하는 편이 낫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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