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하 13:23~29 두 해가 지난 어느 날, 압살롬은 에브라임 근처의 바알하솔에서 양털을 깎고 있었다. 이때에 압살롬이 왕자들을 모두 초대하였다. 압살롬은 다윗 왕에게도 찾아가서 말하였다. "임금님, 제가 이번에 양털을 깎게 되었으니, 임금님도 신하들을 거느리시고, 이 아들과 함께 내려가셔서, 잔치에 참석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왕이 압살롬에게 말하였다. "아니다, 내 아들아. 우리가 모두 따라가면, 너에게 짐이 될 터이니, 우리는 가지 않으마." 압살롬이 계속하여 간청을 하였지만, 왕은 함께 가고 싶지 않아서, 복을 빌어 주기만 하였다. 그러자 압살롬이 말하였다. "그러면 맏형 암논이라도 우리와 함께 가도록 허락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왕이 그에게 물었다. "암논이 너와 함께 가야 할 이유가 무엇이냐?" 그래도 압살롬이 계속하여 왕에게 간청하니, 왕은 암논과 다른 왕자들이 모두 그와 함께 가도 좋다고 허락하였다. 압살롬은 이미 자기의 부하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암논이 술을 마시고 기분이 좋아질 때를 잘 지켜보아라. 그러다가 내가 너희에게 암논을 쳐 죽이라고 하면, 너희는 겁내지 말고 그를 죽여라. 내가 너희에게 직접 명령하는 것이니, 책임은 내가 진다. 다만, 너희는 용감하게, 주저하지 말고 해치워라!" 마침내 압살롬의 부하들은 압살롬의 명령을 따라서, 하라는 그대로 암논에게 하였다. 그러자 다른 왕자들은 저마다 자기 노새를 타고 달아났다.
어디선가 본 듯한 장면입니다. 권력 다툼과 암투가 난무하는 사극의 한 장면과도 같은 일이 벌어지죠. 누이 다말의 참혹한 사건을 계기로 암논에게 앙심을 품었던 압살롬이 마침내 복수를 행동으로 옮기는 장면입니다. 저는 이 본문에서 눈에 띄는 것이 있는데요. 바로 두 해가 지났다는 시간적 설명입니다. 그러니까 다말 사건이 벌어진 지 2년의 시간이 지났다는 것이죠. 그것은 압살롬이 암논에게 앙심을 품은 지 2년이 지났다는 말입니다. 또한 다른 의미로 보면 암논도 그 2년이라는 시간이 지날 동안 자신의 죄를 깨닫지도, 뉘우치지도, 또한 해결하지도 않았다는 의미죠.
이미 말씀드렸다시피 내 안에 죄가 들어오는 것은 우리가 막기 어렵습니다. 우리는 죄에 대해 완벽한 방어가 불가능한 존재들입니다. 그러니까 죄를 지었다 안 지었다가 우리의 기준이 아니라는 것이죠. 그만큼 죄는 손쉬운 상대가 아닙니다. 우리의 힘으로 막을 방법이 없습니다. 만약 우리가 노력해서, 혹은 영성을 키워서 죄를 막을 수 있고, 죄에서 해방될 수 있다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실 이유도, 또 그분이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를 지실 이유도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만 죄를 해결할 수 있죠. 그렇다는 것은 죄를 해결하는 방법이 오직 용서밖에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압살롬은 2년 동안 자신에게 피어난 분노와 앙심을 해결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그는 적극적으로 그 복수의 칼날, 적개심과 살기를 키웠을 것이 분명합니다. 이 과정에는 혹시 정의감이나 권선징악과 같은 합리화가 숨어 있었을지도 모르죠. 분노에 분노를 더하든, 정의감과 심판의 마음을 품든, 복수는 복수고 살인은 살인입니다. 어떤 방법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는 죄의 결과 들일뿐이죠. 그것이 실현된 이유는 바로 그 2년 동안 그가 죄를 떨쳐 버리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이는 암논도 그렇습니다. 자신의 잘못을 주어진 시간 동안 해결했다면 어땠을까요? 기회로 만들어진 2년 동안, 그가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깨달았다면요? 그리고 용서를 구하고 회개를 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이 장면을 읽는데 문득 떠오른 것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셨을 때 그 초기부터 바리새인들과 유대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경계하고 감시했죠. 그런데 그 장면에서 유독 눈에 띄는 것은 죽이고자 하는 마음이 그들에게 있었다는 기록이었습니다. 공생애를 이제 막 시작했는데 그들은 그런 마음을 가졌다는 것이 신기할 따름입니다. 나에게 해로운 것은 싹부터 잘라야 했을까요? 그리고 그들은 그 마음을 2년이 넘는 기간 동안 꾸준히, 아주 꾸준히 갖고 있습니다. 아니 그 마음은 더 자라고 커졌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 뜻을 이루죠. 압살롬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에는 어쩌면 단순한 분노였을지 몰라요. 형이 그저 미웠을 뿐이죠. 그런데 죄가 해결이 되지 않자 그 분노는 적개심으로, 살의와 정의감으로 자랐습니다. 마침내 그 분노는 암논 한 사람으로 그치지 않고 모든 형제와 그리고 아버지 다윗에까지 미치죠. 오늘 본문에서는 아직 이루어지지 않지만 그의 그런 분노는 광기가 되어서 이스라엘 왕가를 파국으로 몰아넣어 버렸습니다. 단지 2년이라는 기회, 나에게 주어진 시간 동안 죄를 버리지 못해서, 나쁜 생각을 바꾸지 못해서, 회복되고 회개하지 않아서 벌어진 일입니다.
지금이 기회입니다. 아무 일 없는 듯 보이지만 어쩌면 지금 내 안에 들어와 있는 죄를 버릴 기회인지도 몰라요. 내 안에 영적인 나태함, 아무렇지도 않게 하나님과는 멀어진 삶, 예배하지 않아도, 묵상하지 않아도, 기도하지 않아도 아무렇지도 않은 삶, 아직은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지만 그런 마음이 쌓이고 쌓이면 언젠가는 돌이킬 기회를 놓친 대가를 지불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내 안에 나쁜 마음을 가만히 두지 마세요. 혹시라도 들어온 죄, 나쁜 생각을 가볍게 여기지 마세요. 아무리 작은 것이어도 내가 허용하고 내버려 두면 내 안에서 자랍니다. 말씀드렸죠? '오늘 하루 어떨라고?' 하는 생각이 이틀이 되고 사흘이 되어 결국 아침묵상은 나와 상관없는 것이 된다고요. 그뿐일까요? 아침묵상을 하지 않는 것이 아무렇지도 않아지면 우리는 나도 모르게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통로를 잃어버린다는 사실을 잊죠. 그렇게 필터링을 잃어버리니 내 안에는 온갖 잡다한 것들이 들어오고 무엇이 옳은지, 무엇이 선인지 조차 모르는 상태가 되어 버립니다.
매일 아침이 기회입니다. 다시 하나님의 말씀 안에 들어와 내 안에 죄의 찌꺼기를 씻어낼 기회가 바로 지금입니다. 죄를 자라지 않게 할 방법, 지금 하나님의 말씀 앞에 서는 일이고, 지금 주님께 묻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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